조승연 Cho, Seung Yeon | |
| |
<colbgcolor=#5bd><colcolor=#000> 직업 | 대학 교수 |
병역 | 대한민국 석사장교 만기 전역 |
출생 | 1960년 |
학력 | 충암고등학교(졸업) 연세대학교 (화학 /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화학 /석사과정 중퇴)[1] 미 퍼듀 대학교 대학원 (핵화학 / 석사[2]·박사[3]) |
소속 |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과학융합기술대학 환경에너지공학부 (명예교수) |
1. 소개
연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 화학과에 입학 후 약 1년간 과 실험조교를 맡았고 그 뒤 미국의 퍼듀대학교 대학원 화학과에 입학하여 그 곳에서 약 5년 가량 과 연구조교를 맡았다. 그 사이에 석사장교로 병역을 마쳤으며 대학원 졸업 이후 유치과학자로서 1990년 8월 부터 1993년 2월까지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1993년 3월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환경공학부 교수로 임용되었다.한국실내환경학회 이사, 한국환경위생학회 이사, 기술표준원 ISO/TC94 전문위원, 한국원자력연구소 하나로 이용자협의회 위원, 방사화분석이용전문회 회장, 한국법과학회 이사, 원자력중장기사업 기획위원, 국제원자력기구 자문위원, 중소기업산학협력센터장, 대통령실(청와대) 국가위기관리위원회 자문위원, 서울시 교육청 환경보건 자문위원, 한국리모델링협회 자문위원, 서울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환경친화기술센터장,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 환경부 자연방사능 환경보건센터장,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라돈안전센터장, 과학기술융합대학장 등 다수 경력이 존재한다. 현재 한국표준협회 실내환경 및 라돈안전인증 심사위원장과 연세대학교 기술지주회사 자회사인 (주)브라잇홈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현재는 정년퇴임 후 명예교수에 추대되었다.
2. 라돈 연구
국내에서 라돈 연구 관련해서 가장 인지도가 높다. 라돈 관련해서 셀 수 없이 많은 민,관,학 다방면의 이력/업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언론 등지에서 라돈에 대한 소재로 인터뷰 등을 해야할 경우 조 교수를 대상으로 주로 이뤄지고 있다.3. 저서
- 방사화학(역서), 2000, 동화기술
- 라돈, 불편한 진실, 2019, 동화기술
- 당신과 함께 라돈, 2021, 해드림출판사
4. 논문
5. 상훈/업적
- 1998년, 2001년 연세대학교 우수업적 교수
- 2007 ~ 2009년 post BK21 연차평가 1위
- 2010년 환경부 장관 표창(라돈관련 업적)
- 2014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선정과제 위탁참여
- 2015년 환경부 생활공감사업 우수연구자 선정
- 2019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수상
- 2019년 저서 '라돈, 불편한 진실'이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
- 2020년 대한민국 환경대상 수상(교육부문)
6. 관련 문서
7. 여담/기타
- 특허는 약 25개 출원했으며 150여 편의 연구논문 및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 조승연 교수는 풍양 조씨 교리공파 후손인데 2000년 12월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풍양 조씨 교리공파 선산 묘역을 이장하던 중 여러 물건들이 출토되어 이를 조 교수가 수습 후 문중의 소장을 거쳐 2019년 9월 연세대학교 원주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원주박물관에서는 유물감정평가위원회를 구성하여 감정평가를 진행 후 유물에 대한 학술/문화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시/도 문화재 지정신청을 했고 2021년 12월 17일 '조종영[4] 묘 출토유물 일괄(趙鐘永 墓 出土遺物 一括), 강원도 유형 문화재 193호' 로 지정받았다.#
8. 외부 링크
[1] 석사 수료나 학위 취득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임.[2] 석사 학위 논문 : Intermediate Energy 12C Reactions with Natural Cu at 35 MeV/nucleon[3] 박사 학위 논문 : Target Residues from the Interaction of Copper with 15 – 45 MeV/u 12C[4] 1771년 출생, 1829년 사망한 인물로, 세도 가문과도 가까운 친척이다. 아버지 조진택은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으며, 본인은 1799년 과거 급제 후 안주목사로 있으며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며 이후로 황해도 관찰사, 한성부 참판,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이조판서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