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20:29:41

제프리 드 맨더빌

성명 제프리 드 맨더빌
Geoffrey de Mandeville
생몰년도 미상 ~ 1144년 9월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에식스주
사망지 잉글랜드 왕국 버빌
아버지 윌리엄 드 맨더빌
어머니 마거릿 드 리
형제 비티스 드 맨더빌
배우자 로헤사 드 베레
자녀 아르눌프, 제프리, 윌리엄
직위 초대 에식스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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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초대 에식스 백작. 무정부시대스티븐 왕마틸다 사이에서 편을 자주 바꾸면서 대규모 약탈과 습격 작전을 벌여, 무정부시대 잉글랜드 귀족의 전형적인 유형으로 간주되었다.

2. 생애

잉글랜드 왕국 에식스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맨더빌 가문의 일원이다. 조부 제프리 드 맨더빌은 윌리엄 1세의 잉글랜드 정복에 참여했다. 둠스데이 북에 따르면, 조부 제프리는 1086년경에 740파운드의 연간 수입을 올릴 수 있는 토지를 소유했으며, 에식스, 미들식스, 하트퍼트셔 등 7개 주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그는 잉그랜드에서 가장 거대한 영지를 보유한 영주 중 한 사람이었다. 또한 제프리는 런던 탑의 순찰관을 맡았으며, 에식스, 런던, 헤레퍼드셔의 보안관을 역임했다.

아버지 윌리엄 드 맨더빌은 조부의 직위를 물려받았지만, 1101년 중요한 정치범인 라눌프 플램버드가 런던 탑에서 탈출한 뒤 잉글랜드 국왕 헨리 1세의 형제인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2세를 부추겨서 잉글랜드 침공을 단행하도록 했다. 이에 헨리 1세는 윌리엄에게 책임을 물여 1103년 2,200파운드에 달하는 막대한 벌금을 선고했다. 그는 벌금을 납부하기 위해 헤러퍼드셔의 소브릿지워스, 에식스의 왈든 및 그레이트 월섬을 넘겨야 했다. 둠스데이 북에 따르면, 소브릿지워스와 왈든은 연간 수입이 50파운드, 그레이트 월섬은 60파운드를 나라에 납부했다. 그가 빚을 갚을 때까지, 저택은 헨리 1세의 청지기 에도 드 리의 관리를 받았으며, 런던 탑의 순경 직책도 에도 드 리에게 넘어갔다.

제프리의 출생년도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1105년에서 1116년 사이에 사망했을 때 미성년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빚을 물려받았다. 1130년 재무 기록에 따르면, 1129년 부채 금액은 1,300 마르크에 딸했다고 한다. 그는 어떻게든 조부 대에 세웠던 가문의 부와 영광을 되찾기 위해 헨리 1세의 군사 원정에 참여했지만, 1135년 12월 헨리 1세가 사망하고 스티븐 왕이 집권한 후에도 이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무정부시대가 본격적으로 발발하자, 스티븐 왕은 마틸다에 맞설 지원병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백작을 여러 명 임명하기로 했고, 그 백작들에게 국가 통치 권한 일부를 넘겨줬다. 그는 1138년부터 1141년 사이에 18개 이상의 백국을 창설했는데, 제프리는 여기에 편승해 초대 에식스 백작이 되었다. 그의 임명 헌장은 1139년 12월부터 1140년 12월 사이에 웨스트민스터에서 발행되었고, 거의 같은 시기에 가문의 재산과 런던 탑 순경직을 회복했다.

1141년 2월 2일, 스티븐 왕의 군대는 링컨 전투에서 패배했고 스티븐 왕은 생포되었다. 이에 제프리는 마틸다 편으로 넘어갔다. 마틸다는 그를 완전히 회유하기 위해 그가 아버지의 빚을 갚아야 할 의무를 해방하고 에식스와 기타 여러 영지에 있는 에도 드 리의 토지를 그에게 넘겨줬다. 마틸다는 런던에 인접한 윈저 성으로 가서 대관식을 준비했지만, 1141년 6월 28일 런던 주민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도주했다. 이후 스티븐 왕의 왕비인 불로뉴의 마틸다가 케임브리지셔 땅을 저당잡히면서 받은 자금 일부를 그에게 넘겼고, 그는 스티븐 왕에게 다시 한 번 충성을 맹세했다. 곧 마틸다의 군대는 윈체스터 전투에서 패배했고, 스티븐 왕은 마틸다의 군 사령관이었던 글로스터의 로버트와 교환되면서 자유를 얻었다. 그는 이에 도움을 준 대가로 에식스, 하트퍼드셔 및 미들식스의 보안관 및 대법원장으로 임명되었다. 특히 대법원장을 맡으면서, 그는 런던에 대한 행정 및 사법 권한을 그에게 넘겼다.

그러나 제프리는 1142년에 마틸다와 협상을 재개했다. 그해 여름, 그들은 옥스퍼드에서 비밀 동맹 조약에 서명했는데, 특히 런던 시민들이 마틸다의 치명적인 적이라고 명시하면서, 마틸다는 제프리의 동의 없이는 런던 주민들과 평화를 이루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합의는 비밀로 유지되었으며, 제프리는 계속해서 스티븐 왕의 추종자로 간주되어 종종 궁정에 방문했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배신은 곧 널리 알려졌고, 1143년 초 세인트올번스에서 스티븐 왕의 명령으로 체포되었다. 이후 반역죄로 기소된 뒤 교수형에 처하거나 에식스 성과 런던 탑 순경 직을 헌납하는 선택 중 하나를 택하라는 지시를 받고 후자를 택했다.

그렇게 풀려난 제프리는 케임브리지셔로 도주한뒤 엘리 섬에 강도 은신처를 세웠다. 그는 램지 수도원을 점령해 주변 땅을 습격하기 위한 요새 기지로 만들었다. 그가 이끄는 갱단은 들판과 마을을 파괴하고, 도시를 불태우고, 수도원을 파괴했다. 당대 기록에 따르면, 제프리의 추종자들은 렘지 주변 30마일 반경 내에서 모든 사람을 죽이거나 인질로 잡았으며, 농작물은 수확되지 않거나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에 교회 측은 그를 파문했고, 왕실군이 그를 잡으려 했다. 제프리는 군대를 엘리 섬의 늪 깊숙한 곳으로 철수한 뒤 토벌대와 맞서 싸웠지만, 버빌 공방전 도중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사망했다. 그는 교회에서 파문당했기 때문에 시신을 묻을 수 없었지만, 템플 기사단이 유해를 런던으로 가져와서 자기들의 교단 교회에 안장했다.

3. 가족

  • 로헤사 드 베레(1105/1110 ~ 1166년 이후): 잉글랜드 왕실 시종 오브리 드 베레의 딸. 제프리 사후 베드퍼드 남작 페인 드 뷰챔프와 재혼했다.
    • 제프리 드 맨더빌(? ~ 1166): 1147년부터 제2대 에식스 백작.
    • 윌리엄 드 맨더빌(? ~ 1189): 1166년부터 제3대 에식스 백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