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정치인.2. 생애
1930년 3월 28일에 출생했다. 좋은 성분이었는지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하고 6.25 전쟁 중 김일성의 친위중대로 복무했다고 한다.하지만 환갑이 되는 1990년까지 아무런 활동을 보이지 않다가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되면서 공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웬만한 주요 공장 지배인들까지 다 위촉했던 김일성, 오진우 등의 장의위원에 위촉되지 않은 것을 봐서 당시 직위는 매우 별볼일없던 것으로 추정된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도 재선되었으나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에는 재선되지 않고 다시 10년간 소식이 끊겼다. 그러더니 2009년, 박용석 사후 마비되었던 검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더니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검열위원회 제1부위원장 및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2년 2월, 김정일훈장을 받았다. 2013년 12월, 김국태 장의위원, 2014년 7월, 전병호 장의위원, 2015년 11월, 리을설 장의위원, 2015년 12월, 김양건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 5월 9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검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재선되었다. 2016년 5월, 강석주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7년 5월 22일, 황해남도물길 1단계공사에서 공을 세운 일군들에게 국가표창식을 주관한 이후 소식이 끊겼다. 2017년 10월, 조선로동당 7기 2중전회에서 조연준이 신임 검열위원장에 임명되는 등 검열위원회 인선이 있었는데 이때 고령으로 해임되지 않았나 추정된다. 이후 2019년 3월,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지내다가 2020년 7월 28일에 사망했다. 부고 발표 등은 없었으나 2020년 12월에 시신이 애국렬사릉에 당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제1부위원장 직함으로 안치되었다. 북한 언론들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투철한 혁명적신념을 지니고 우리 당의 강화발전에 헌신한 정명학동지는 조국과 인민이 기억하는 유능한 일군'이라고 그를 짤막하게 칭송했다.
3. 참고문헌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20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