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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식(1897)

파일:정규식(무안 독립운동가).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근식(根植) / 송파(松坡)
본관 나주 정씨 (羅州 丁氏)[1]
출생 1897년 10월 5일[2]
전라남도 무안군 박곡면 사천리
(현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사천3리 봉서동마을)[3]
사망 1970년 1월 10일[4]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438호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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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규식(丁奎植)은 1897년 10월 5일 전라남도 무안군 박곡면 사천리(현 무안군 몽탄면 사천3리 봉서동마을)에서 아버지 정기섭(丁琪燮, 1847. 1. 14 ~ 1906. 4. 22)과 어머니 김해 김씨(1847. 1. 30 ~ 1931. 8. 15)[5] 사이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무안군 외읍면 성내동(현 무안군 무안읍 성내리)로 이주하였다.

1919년 3월 20일 무안군 외읍면 구 무안읍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새벽에는 친일파의 반성과 민중의 궐기를 촉구하는 경고문이 읍내 여러 곳에 붙었다. 먼저 남산에서 수십명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이날 오후 1시경 이들은 장터를 행진하며 시위를 계속하였는데, 2시경에는 500여 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읍내와 장터 여러 곳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만세 시위는 밤 10시까지 이어졌는데 이로 인해 체포되어 연행된 사람은 57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체포된 정규식은 그해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6]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1970년 1월 10일 사망하였다.

200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당초 무안군 망운면 송현리에 안장되었다가, 2011년 10월 26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에 이장되었다.

[1] 생원기옹공파(生員寄翁公派)-성암공계(誠菴公系) 27세 규(奎)○ 항렬.[2] 압해정씨대동보 21권 804쪽에는 1889년 1월 14일생으로 등재되어 있다.[3] 수형인명부[4] 압해정씨대동보 21권 804쪽에는 1972년 11월 30일에 사망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5] 김문환(金文煥)의 딸이다.[6] 그런데, 형사사건부에는 1919년 4월 28일 1심에서 기소유예 불기소처분을 내렸다고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