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13:18:48

잭 노스롭

1. 개요

파일:Jknpic.jpg
John Knudsen Jack Northrop[1]
1895년 11월 10일 ~ 1981년 02월 18일

잭 노스롭은 미국의 항공사업가이자 설계자로, 항공제작사인 노스롭(현 노스롭 그루먼)의 창업자이다.

2. 생애

잭 노스럽은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 주 샌타바버라에서 자랐다.

2.1. 항공업계 입문

항공업계서 첫 직업은 1916년 '로헤드(Loughead Aerospace) 사[2]'에서 설계사로 일한 것이다. 1923년에는 더글러스 사에 취직해 '더글러스 월드 크루저' 등의 항공기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1939년 본인의 이름을 걸고 항공기 제작사 '노스롭'을 설립했는데, 1994년 별개의 기업이었던 그루먼과 합병하여 현재의 노스롭 그루먼이 되었다.

2.2. 전익기의 개발

잭 노스롭의 평생 꿈이라 할 수 있던 것이 바로 전익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이 나치독일에 패전할 것을 우려하여, 미국 본토에서 독일을 폭격하기 위해서 10000마일(=약 16000km)의 항행거리를 가지는 초장거리 폭격기의 개발을 요구했다. 이에 노스롭은 전익기만이 이 조건을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치 독일이 전익기 Ho229 를 만들어 내는 동안 잭 노스롭도 N1M과 N9M라는 전익기를 제작했다.

그렇게 개발이 시작된 것이 YB-35였는데, 하지만 이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때까지 완성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겨우 완성하긴 했지만, 쓸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프로펠러의 한계로 인해서 안정성이 떨어지며 결국 미군에게 채택되지 못하고 모두 스크랩처분 되었다.

이렇게 실패로 끝나나 했지만, 노스롭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찾아 왔다. 바로 냉전의 시대가 시작됨에 따라 소련을 견제할 수단이 필요해 졌고, 미국은 다시 한번 초장거리 폭격기를 요구하게 되었다. 노스롭은 신규 기술인 제트 엔진을 장착한 YB-49를 개발을 시작했는데, 본체는 기존에 개발된 XB-35를 바탕으로 개발을 했다. 하지만, XB-35 가 태생적으로 제트 엔진용이 아니었다 보니 구조적인 문제가 많았다. 결국 시험 비행중 사고가 발생하였고, 미군은 이 비행기의 개발 지원을 포기했다.

결국 노스롭은 평생 꿈꾸던 전익기 개발을 성공시키지 못한 채 은퇴했다. 또한, 그가 만든 회사인 노스롭 그루먼도 전익기의 개발을 포기했다.

그런데, 레이더와 대공 미사일 발전으로 U-2 격추 사건 으로 고고도 비행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고, XB-70이나 SR-71 같은 초고속 비행 역시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스텔스라는 개념이었다. 결국 노스롭 그루먼사는 잭 노스롭의 유산인 XB-35와 YB-49를 이용하여, 비밀리에 스텔스 전익기 개발을 진행했고, 결국 B-2 전략 폭격기를 완성시켰다.


1979년경 노스롭 그루먼사는 비밀리에 잭 노스롭을 초대하여 당시 최고기밀로 취급되던 B-2의 목업(mock-up)을 보여 주었다. 그는 비록 육체적, 정신적 상태가 엉망이었지만 오래전 자신의 염원이었던 전익기를 목업이나마 보게되고서는, "어째서 신이 지난 25년간 나를 살려놓았는지 이제야 알겠다"("Now I know why God has kept me alive for 25 years")라는 감상을 남겼다. 이 일화는 도시전설이라는 말도 있었으나, 잭 노스롭이 실제로 B-2의 미니어쳐 목업을 살펴보는 장면의 다큐멘터리 영상이 공개되며 사실로 확인되었다. 위 문구는 상기된 것처럼 죽음을 앞두고 있던 잭 노스롭이 마지막 힘을 다하여 방명록에 적은 내용이다.

잭 노스롭은 B-2 의 완성을 본 뒤 약 1년후 사망하였다.


[1] 중간이름인 너드센은 어머니(헬렌 너드센)의 성을 따온 것이다.[2] 1912년 록히드 형제가 설립했으며, 이후 앨런 록히드가 별도 창업한 록히드에 합병되었다. 로헤드(Loughead)는 록히드(Lockheed) 형제의 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