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1-01 22:35:09

재사

1. 才士2. 齋舍3. 고구려의 현자 극재사4. 고구려의 왕족 고재사
4.1. 생애

1. 才士

'재주가 뛰어난 남자'를 뜻하는 말로 남성에게 쓸 수 없는 단어인 '재원(才媛)'을 남자에게 쓸 때 사용하는 단어다.

2. 齋舍

재사(齋舍)는 학문과 덕행, 충효가 뛰어난 인물이나 입향조, 중시조 등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소나 사당 인근에 지은 건축물이다.

주로 안동예천을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에 많이 남아있으며, '태장재사', '희이재사', '서재지사', '송석재사', '남흥재사', '금계재사'등 유교건축으로서는 드물게 중층으로 지어진 건축물도 많이 존재한다.

3. 고구려의 현자 극재사

주군 동명성왕
의복 마의(麻衣)
극씨(克氏)
이름 재사(再思)
생몰년도 ? ~ ?

克再思.

고구려 동명성왕 때에 고구려의 개국을 도운 현자로,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오이, 마리, 협보 등과 함께 엄사수를 건너 부여를 탈출하여 모둔곡(毛屯谷)이라는 곳에 이르었을 때 만나는 세 명의 현인들 중 한명이다.

동명성왕과 만났을 당시에 재사는 마의(麻衣)를 입고 있었으며,[1] 다른 두 명의 현인인 무골묵거는 각자 납의(衲衣), 수조의(水藻衣)를 입고 있었다. 이들을 범상치않게 여긴 동명성왕은 세 사람에게 각기 성씨를 내려주고 신하로 삼고는 "나라의 기틀을 열 현인들을 얻었다."라고 말하며 무척 기뻐했다고 전한다.

재사는 이때 극씨(克氏) 성을 하사받았으며극제사, 재주에 맞는 직위를 얻었다. 그리고 나서는 무골, 묵거 등과 함께 동명성왕을 따라 졸본천 지역으로 가서 고구려의 건국을 도왔다고 한다.

기록에서는 확실히 묘사되지는 않으나, 동명성왕이 이들을 신하로 삼고 기뻐했다는 대목을 보아할때 단순히 현명한 인물이라기보다는 무골, 묵거 등과 함께 모둔곡의 세력가였다는 설도 있다.[2]

주몽(드라마)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차광수가 연기했다.

4. 고구려의 왕족 고재사

작위 고추가(古鄒加)
성씨 고(高)
이름 재사(再思)
아내 부여태후(扶餘太后)
아들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
부왕 유리명왕
생몰년도 ? ~ ?

高再思.

고구려의 왕족. 유리명왕의 아들, 대무신왕의 동생, 태조왕의 아버지. 아내는 부여태후.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태조왕의 후임인 차대왕은 이 사람의 차남이라 한다. 하지만 이 학설의 경우 재사의 나이 문제와 겹쳐 논란이 있다. 참고로 후한서에서는 차대왕을 재사의 손자이자 태조왕의 장남이라 기록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3번 항목의 인물과는 이름의 발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름의 한자까지 똑같아서 헷갈리기 쉬운 인물이다(...). 때문에 한때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신빙성 없는 설도 나돌았던 것 같다. 고구려의 왕족이기 때문에 성은 고(高)씨이니 헷갈리지는 말자.

4.1. 생애

서기 53년, 폭정을 일삼던 모본왕두로의 칼에 살해당한 후에 사람들로부터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당장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기에는 자신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이를 사양하였다. 재사는 대신에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는데, 그 아들이 바로 태조왕이었다.

참고로 형인 대무신왕이 서기 4년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고려해볼때 당시 재사의 나이는 대략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추정된다. 이 정도로도 당시로서는 이미 고령의 나이였다는 의견도 있고 반론도 있다. 북사와 위서를 보면 정말 고령이라 왕위를 거절했을 수도 있다.
주몽이 죽자 아들 여율(如栗)이 즉위했다. 여율이 죽자 아들 막래(莫來)가 즉위하였고 이어 부여(夫餘)를 아울렀다.(朱蒙死 子如栗立 如栗死 子莫來立乃并夫餘)
《북사》

주몽(朱蒙)이 죽자 여달(閭達)이 대를 이어 즉위했다. 여달(閭達)이 죽자 아들 여률(如栗)이 대를 이어 즉위했다.(朱蒙死 閭達代立 閭達死 子如栗代立)
《위서》

즉, 유리명왕의 아들인 재사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에다가 조카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보왔으니 이 당시에는 4~50전후였을 가능성이 있다.


[1] 이 마의는 말 그대로 마로 지은 옷으로 여겨진다.[2] 그런데 이러면 대체 무얼 믿고 살던 곳을 떠나 동명성왕을 따라갔는지 의문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