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세구(張世九) |
생몰 | 1898년 4월 16일 ~ 1931년 1월 26일 |
출생지 | 경기도 김포군 동면 가양리 |
사망지 | 경기도 김포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세구는 1898년 4월 16일 경기도 김포군 동면 가양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1일 서울 탑동 공원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경성부 내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후 3월 5일에 전개된 2차 독립만세시위에도 참가해 남대문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그 후 장세구는 1921년에 학생대회 덕육부장(德育部長)에 선임되었고, 그해 6월 경성의전 구보(久保) 교수의 민족차별 망언을 규탄하는 동맹휴교를 주도하다 신진우(申鎭雨) 등 7명의 학생들과 함께 퇴학당했다. 이후 김포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1년 1월 2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장세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