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장 6세 다르쿠르 Jean VI d'Harcourt | |
출생 | 1342년 12월 1일 | |
프랑스 왕국 아르쿠르 | ||
사망 | 1389년 2월 28일 | |
프랑스 왕국 아르쿠르 | ||
아버지 | 장 5세 다르쿠르 | |
어머니 | 블랑슈 도말레 | |
형제자매 | 자크 1세, 필리프, 잔 | |
아내 | 카트린 드 부르봉 | |
자녀 | 샤를, 장 7세, 루이, 블랑슈, 이자벨, 잔, 마리, 마르그리트, 잔(사생아), 데니스(사생아) | |
직위 | 아르쿠르 백작, 오말레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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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에서 잉글랜드군에 맞섰다.2. 행적
1342년 12월 1일 프랑스 왕국 아르쿠르에서 2대 아르쿠르 백작 장 5세 다르쿠르와 오말레 백작 장 2세 도말레의 딸인 블랑슈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자크 1세[1], 필리프[2], 잔[3]이 있었다.1356년 4월 5일, 아버지 장 5세 다르쿠르가 루앙에서 연회를 베푼 도팽 샤를의 초대를 받아들여 루앙으로 갔다가 연회장에 난입한 프랑스 국왕 장 2세에게 체포된 뒤, 나바라 왕국의 국왕이자 에브뢰 백작 카를로스 2세와 손잡고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와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처형되었다. 이후 아르쿠르 영지를 물려받았고, 어머니 블랑슈가 섭정했다.
1357년 12월 3일, 잉글랜드로 끌려간 장 2세를 대신해 왕국을 다스리던 도팽 샤를은 장 5세 다르쿠르를 사면했다. 이후 1359년 10월에 장 5세 다르쿠르의 장남인 그와 자신의 처제인 카트린 드 부르봉의 결혼을 주선해, 발루아 왕조와 아르쿠르 가문의 화해를 이끌어냈다. 1360년 브레티니 조약이 성립되면서 프랑스와 잉글랜드간의 평화 협약이 체결되었다. 이때 그는 잉글랜드로 끌려갔던 장 2세를 대신해 인질로 보내진 귀족 중 한 사람이었다.
몇년 후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1375년 기사 장 4세 말레 드 그라빌과 함께 잉글랜드군에 장악되었던 코냑을 포위 공격해 함락했다. 1382년 프랑스군의 플란데런 원정에 참가해 11월 27일 프란데런 반란군을 상대로 프랑스군이 승리를 거둔 루즈베케 전투와 1382 ~ 1383년 플란데런 반란군을 돕기 위해 건너온 헨리 르 디스펜서의 잉글랜드군을 포위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낸 부르부르 공방전에 참여했다. 이후 루앙과 코의 베일리윅의 보안관으로 선임되었다. 1389년 2월 28일에 4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가족
- 카트린 드 부르봉(1342 ~ 1427): 제2대 부르봉 공작 피에르 1세 드 부르봉과 발루아 백작 샤를의 딸 이자벨의 딸.
- 샤를 다르쿠르(1365 ~ 1384): 오말레 백작
- 장 7세 다르쿠르(1369 ~ 1452): 제4대 아르쿠르와 오말레 백작.
- 루이 다르쿠르(1382 ~ 1422): 샤텔로 자작, 루앙 대주교.
- 블랑슈 다르쿠르(? ~ 1431): 퐁트브로 수녀원장.
- 이자벨 다르쿠르(1371 ~ 1443): 트루아 백작 위그 6세의 부인.
- 잔 다르쿠르(1372 ~ 1456): 나무르 백작 기욤 2세 드 나무르의 부인.
- 마리 다르쿠르: 헬러와 율리히 공작 레이날트 4세 폰 율리히와 초혼, 율리히베르크 공작 아돌프의 아들 루프레히트 폰 율리히베르크와 재혼.
- 마르그리트 다르쿠르(1378 ~ ?): 롱그빌 및 플레인스의 여주인. 에스토트빌의 영주 장 2세 데스토트빌의 부인.
- 사생아
- 잔: 기사 장 크레티앙의 부인.
- 데니스: 기사 장 드 퐁슈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