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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세 드 부르봉라마르슈

<colbgcolor=#D5CFB8><colcolor=#000000> 라마르슈 백작
장 1세 드 부르봉라마르슈
Jean Ier de Bourbon-La Marche, comte de La Marche
파일:장 1세 드 부르봉라마르슈.jpg
이름 장 1세 드 부르봉라마르슈 (Jean Ier de Bourbon-La Marche)
출생 1344년
프랑스 왕국 미상
사망 1393년 6월 11일 (향년 49세)
프랑스 왕국 방돔
배우자 카트린 드 방돔 (1364년 결혼)
자녀 자크 2세, 루이 1세, 장 1세, 이자벨, 안, 샤를로트, 마리
아버지 자크 1세 드 부르봉
어머니 잔 드 샤티옹
형제 이자벨, 피에르, 자크
직위 라마르슈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1. 개요

프랑스 왕국의 라마르슈 백작. 백년전쟁 시기에 잉글랜드군에 맞서 싸웠다.

2. 생애

1344년경 퐁티외와 라마르슈 백작 자크 1세 드 부르봉과 루제의 영주인 위그 드 샤티옹의 딸인 잔 드 샤티옹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이자벨[1], 피에르[2], 자크[3]가 있었다.

1356년 9월 19일 푸아티에 전투에 아버지와 함께 참여했다가 잉글랜드군에 생포되었다. 몇 년 후 몸값을 지불하고 석방된 그는 1362년 아버지와 형 피에르가 브리네 전투에서 자유 용병대와 맞서싸우다 전사한 뒤 라마르슈 백작위를 물려받았다. 이후 프랑스 국왕 샤를 5세에 의해 리무쟁의 보안관에 선임되었다. 1365년부터 1367년까지 카스티야에서 엔리케 2세의 카스티야 왕위 등극을 위해 프랑스군을 지휘한 베르트랑 뒤 게클랭의 지휘를 받으며 잉글랜드의 지원을 받는 페드로와 대적했다.

프랑스로 귀환한 후 샤를 5세가 아키텐을 탈환하기 위해 잉글랜드와 전쟁을 벌였을 때 참가해 왕실군에 물자를 지원했으며, 1371년 12월 23일 파리에서 샤를 5세에게 경의를 표한 뒤 라마르슈 백작 작위를 인정받고 국왕의 동료로도 인정받았다. 1382년 플란데런 백국의 반란을 진압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1382년 루즈베케 전투에 참가해 아군이 반란군을 상대로 결정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다. 1388년 샤를 6세의 브르타뉴 원정에 참가했으며, 1391년 랑그독 원정에도 참가했다. 한편, 그는 1364년 9월 28일에 파리에서 방돔 백작 장 6세 드 방돔의 딸인 카트린 드 방돔과 결혼했다. 1372년 아내가 방돔 여백작위와 영지를 상속받은 뒤 남편 자격으로 방돔 백작을 겸임했다. 1393년 6월 11일 방돔에서 사망했으며, 그곳의 생조르주 교회에 안장되었다.

3. 가족

  • 카트린 드 방돔(1350 ~ 1412): 방돔 백작 장 6세 드 방돔의 딸.
    • 자크 2세(1370 또는 1380 ~ 1438): 1393년부터 라마르슈 백작, 1403년부터 카스트르 백작.
    • 루이 1세(1375/1376 ~ 1446): 1403년부터 방돔 백작, 몬뒤블로 영주, 1408년부터 프랑스 대의원, 1413년부터 프랑스 궁정의 대청지기.
    • 장 1세(? ~ 1458년 1월 이전): 카렌시 영주.
    • 이자벨(? ~ ?): 푸아시 수녀.
    • 안(? ~ 1408): 몽파시에 백작 장 드 베리[4]와 초혼, 바이에른-잉골슈타트 공작 루트비히 7세와 재혼.
    • 샤를로테(1388 ~ 1422): 키프로스 왕국의 국왕 야뉘의 왕비.
    • 마리(1387 ~ 1465): 에스크로 영주.


[1] 1340년에서 1350년 사이 ~ 1371, 보몽 자작 루이 2세 드 브리엔과 초혼, 방돔 백작 부샤르 7세와 재혼.[2] 1342 ~ 1362, 라마르슈 백작[3] 1345년에서 1350년 사이 ~ 1416년에서 1417년 사이, 쁘호 영주[4] 베리 공작 장 드 베리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