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 드 몽테규 Jean de Montagu |
생몰년도 | 1363년 ~ 1409년 10월 17일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파리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파리 |
아버지 | 제라르 드 몽테규 |
어머니 | 비에트 드 카시넬 |
형제 | 제라르, 장 |
배우자 | 자클린 드라그레인지 |
자녀 | 샤를, 이자벨, 자클린, 잔 |
직위 | 프랑스 재무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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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샤를 6세 치세에 활동한 프랑스 재무장관. 용맹공 장의 부하들에 의해 피살되었다.2. 생애
1363년경 프랑스 왕국의 수도 파리에서 샤를 5세의 비서인 제라르 드 몽테규와 랭스 대주교인 페리 드 카시넬의 누이인 비에트 드 카시넬의 아들이다. 형제로 제라르[1], 장[2]이 있었다. 성년이 된 직후 샤를 5세의 비서, 고문을 역임했고, 샤를 6세의 가까운 친구이자 조언자가 되었다. 1388년 친정을 시작한 샤를 6세에 의해 프랑스 재무장관에 선임되었고, 1397년 시종장에 선임되었다. 1401년 프랑스의 그랜드 마스터에 선임된 뒤 왕실 수입을 관리하고 왕으로부터 수많은 지원금을 받아내면서 막대한 재산을 확보했다. 또한 1400년에 아내의 이름을 딴 자클린 범블비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기증했다.1408년 11월 28일, 파리에 입성한 용맹공 장은 추밀원과 재무부를 비롯한 주요 요직에 자리잡고 있던 오를레앙 파벌을 대거 숙청했다. 장 드 몽테규는 측근들로부터 파리를 탈출하라는 조언을 받았지만 묵살하고 용맹공 장과 협상하기 위해 궁궐에 남았다. 그러나 1409년 10월 7일 용맹공 장의 명령을 받은 프랑스 대재무관 피에르 데 에사르에게 체포되어 샤틀레 요새에 투옥되어 고문받은 뒤, 약식 재판을 거쳐 1409년 10월 17일 파리 홀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유해는 며칠간 대중에게 전시된 뒤 파리 몽포콩 교수대에 매달렸다. 또한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고, 아내와 아이들은 파리에서 쫓겨났다. 3년 후인 1412년, 도팽 루이는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장 드 몽테규의 유해를 수습한 뒤 그의 아들 샤를 드 몽테규가 마르쿠시스에 있는 셀레스틴 수도원에 안장하도록 했다.
3. 가족
- 자클린 드 라 그레인지: 삼부회 의장 에티엔 드 라 그레인지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