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3 12:51:06

이창희(독립운동가)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이창의(李昌儀), 강만수(姜萬洙), 강재동(姜才童)
출생 1911년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望湖里)
사망 1959년
상훈 건국포장

1. 생애와 주요 활동

독립유공자 이창희(李昌熙/이창의李昌儀)는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인물로 일제 강점기 시대에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에 영암 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광주의 도립 사범 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재학 시에 퇴학 처분을 받았다. 그 후에는 사립 학원의 교원으로 임하며 영암 농민조합과 여수 적색노동조합의 결성에 참여하는 등 노동운동에 주력하였다.

1931년 11월, 영암농민조합 창립 준비회 규약의 인쇄에 협력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었던 이창희는 1932년에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출판법 위반'으로 벌금형과 환형유치일수 20일을 선고받았다.

1932년 6월 전남 여수의 공장에 들어갔던 이창희는 노동자들을 지도하면서 산업별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기로 협의하였다. 7월에 결성된 여수적색 노동조합에서 그는 정미 노동부(精米勞動部)를 담당했다.

그러나 1933년 7월부터 7개월간 전라남도경찰부 고등과와 여수경찰서가 합동하여 조선공산당재건 전남연맹과 여수 적색 노동조합 관련자들을 다수 검거하였는데, 이창의는 그중 한 명이었다. 1936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월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006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출처1:디지털영암문화대전
참고출처2:공훈전자사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