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흥선대원군의 측근들이 이재선을 추대하려 했던 사건.2. 배경
흥선대원군이 실각한 후 민씨 일파가 실권을 쥐고 개국 정책을 펴자, 이에 불만을 품은 흥선대원군의 측근들인 전(前) 승지(承旨) 안기영(安驥泳) · 권정호(權鼎鎬) 등이 민씨 세력을 몰아내고 이재선을 추대하여 흥선대원군을 권좌에 복귀시키려 하였다.3. 진행 및 실패
이들은 거사 자금 · 군대 동원 · 요인 암살 등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기회를 기다렸으나, 8월 28일 경기도 광주부 장교 이풍래의 밀고로 모두 체포되었다.그 뒤, 난을 주도한 안기영, 권정호, 이두영 등은 사형당하게 된다.
4. 이재선 역시 표적이 되다
직접적으로 개입은 하지 않았어도 반란 세력의 택군 대상[1]이었던 이재선은 심문을 피할 수 없었다. 단, 잡히기 전에 먼저 의금부에 자수를 하기는 했다. 그래도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혹독한 고문을 동반한 심문을 받았다.심문을 받은 이후, 이재선은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 그러나 양사와 홍문관으로부터 계속 탄핵을 받아[2] 결국 같은 해 사약을 받고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때 죽지 않고 한성으로 돌아와서 사사되었다는 설과, 비공식적으로 신분을 바꾸고 살았다는 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