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4 23:16:48

이시오카 마이


파일:괴걸! 트로피컬마루 로고.jpg




이시오카 마이
石岡 真衣 | Mai Ishioka
파일:external/pbs.twimg.com/DGYmEApUIAY7x6F.jpg
<colbgcolor=#FE2EC8> 본명 이시오카 마이 (石岡真衣)
출생 <colbgcolor=#ffffff>1990년 8월 7일 ([age(1990-08-07)]세)
아이치현
국적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직업 그라비아 아이돌, 배우
신체 154cm
B80(D컵) W59 H87 [1]
A형
활동기간 2012년 ~
링크 블로그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소개2. 그라비아 아이돌로서의 활동 3. 에비스★마스캇츠에의 합류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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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일본의 가수그라비아 아이돌이자, 걸그룹 에비스★마스캇츠의 멤버.

시노자키 아이의 소속사이기도 한 '샤이닝 윌'(シャイニングウィル; Shining Will)에 소속되어 있다. 애칭은 마이뿅 (まいぴょん).

2. 그라비아 아이돌로서의 활동

2012년 8월 17일 MBC 미디어브랜드(M.B.D. メディアブランド)에서 이미지 비디오 <My Bunny>[2]를 발매하면서 그라비아 아이돌로 데뷔해 2017년 현재까지 꾸준히 수영복 영상을 발매하고 있다. 2014년 6월 14일에는 닛폰 테레비의 컴패니언 모델인 '닛텔레제닉'(日テレジェニック) 2014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한편, 이시오카 마이는 다양한 걸그룹에 참여하여 아이돌 가수 활동을 병행했다. 가장 먼저 참여한 걸그룹은 '괴걸! 트로피컬마루'(怪傑!トロピカル丸)였다. 2011년 11월 1일 트로피컬마루 창립 멤버로 들어가 2014년 10월 20일 졸업했다. 트로피컬마루는 소속사 샤이닝 윌에서 결성된 유닛으로서 "수산업을 응원하고, 해양 수질을 깨끗하게 만들겠다"를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고 있었다. 각 소속 멤버들은 저마다 열대 과일 포지션을 부여받고 있었는데, 이시오카 마이는 '화이트 피치', 즉 백도 역을 맡고 있었다. 이때 얻은 애칭이 '마이뿅'.

이시오카 마이가 그 다음으로 활동한 걸그룹은 '채무상환 아이돌'로 유명한 '더 마가린즈'(ザ・マーガリンズ)였다. 마가린즈는 "부채를 안고 있는 여자 아이돌"이라는 컨셉으로 활동하는 프로젝트성 유닛이었다. 2014년 12월 23일 2기생으로 영입되면서, 이시오카 마이의 빚도 공개되었다. 그녀는 2014년 단기대학에 진학하면서 학자금으로 어머니께 빌린 돈 300만 엔이 부채로 있다고 밝혔다.

더 마가린즈는 2015년 10월 6일부터는 '극단 마가린즈'(劇団マーガリンズ)로 이름을 바꾸더니, 이듬 해인 2016년 9월 21일 공연관객이 140명을
넘지 못하는 바람에 해체되었다. 애시당초 결성될 당시 "공연관객 140명을 넘지 못하면 해체된다"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었다.

3. 에비스★마스캇츠에의 합류

마가린즈를 기획했던 인물은 유명 TV 프로듀서 '맛코이 사이토'(マッコイ斎藤)였다. 테리 이토(テリー伊藤)[3]로부터 사사한 인물로서, 걸그룹 에비스 마스캇츠의 기획자이기도 했다. 맛코이 PD는 2015년 에비스 마스캇츠 2세대를 새롭게 출범시키면서 마가린즈에 소속되어 있던 오노 미쿠, 이시오카 마이, 후지와라 아키노, 우스이 아이카를 직권으로 합류시켰다.

이시오카 마이는 2015년 9월 26일 '에비스★마스캇츠'의 멤버가 되었고, 10월 8일 마스캇토 나이트 첫 방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떤 동물이든지 섹시하게 흉내내는 걸 특기로 내세워, 특유의 귀여움으로 큰 웃음만 선사했다. 한편, 이전부터 AV배우 코지마 미나미의 열혈 팬이었기 때문에 에비스 마스캇츠에서 코지마와 친해질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4. 여담

한국을 매우 좋아하는 듯 하다. 이따금 인스타그램에 한국어 해쉬태그를 쓰고, 한국 여행 사진을 올리며, K팝도 좋아하여 K팝 댄스 커버 영상을 종종 올린다.

[1] 2016년 기준 공식 사이즈 #위키백과 #소속사 홈페이지 참조[2] 아마존 재팬 참조[3] 테리 이토는 일본의 유명 TV 예능 프로듀서. 그는 1995년 셀 비디오 유통 체인 '일본비디오판매(日本ビデオ販売)'의 회장 사토 타이지(佐藤太治)과 공동출자하여 AV메이커를 설립하였는데, 이 회사가 바로 소프트 온 디맨드, 즉 SOD였다. 당시 사토 타이지가 3천만 엔, 테리 이토가 1천만 엔을 투자해 총 4천만 엔의 자본금으로 회사를 설립했다고 한다. SOD의 전 사장 타카하시 카나리(高橋がなり)가 테리 이토 밑에서 일하던 AD 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