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colcolor=#000,#dcdcdc> 발생일 | 1941년 2월 26일 |
유형 | CFIT |
발생 위치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애틀랜타 캔들러 필드 근처 |
기종 | DC-3 |
운영사 | 이스턴 항공 |
기체 등록번호 | NC28394 |
출발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뉴욕 라과디아 공항 |
1번째 경유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워싱턴 후버 공항 |
2번째 경유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캔들러 필드 |
3번째 경유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모이산트 필드 |
4번째 경유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휴스턴 하비 공항 |
도착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텍사스 브라운스빌 |
탑승인원 | 승객: 13명 |
승무원: 3명 | |
사망자 | 탑승객: 8명 |
부상자 | 8명 |
생존자 | 탑승객: 8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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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1년 2월 26일 이스턴 항공 소속의 DC-3가 캔들러 필드(현재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착륙을 준비하던 중 추락한 사고. 탑승자 16명 중 8명이 사망했는데, 여기에는 메릴랜드 의원 윌리엄 D. 바이런도 포함되었었다. 생존자 중에는 에디 리켄바허[1]도 있었다.2. 사고 전개
21편은 2월 26일 저녁 뉴욕 시의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하여 워싱턴 후버 공항에 잠시 들른 후 동부 표준시 오후 9시 5분에 애틀랜타로 출발했다. 애틀랜타를 거쳐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와 텍사스주 휴스턴에 들른 후 27일 아침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에서 비행을 마칠 예정이었다. 중부 표준시 오후 11시 38분에 항공기는 애틀랜타에 있는 이스턴 항공 운영자에게 전화를 걸어 스톤 마운틴 보고 지점을 지나 하강 중이라고 알렸다. 운영자는 조종사에게 캔들러 필드의 고도계 설정과 현재 날씨를 제공했다. 그런 다음 21편은 애틀랜타 관제탑에 두 번 연락하여 먼저 접근 중이라고 알린 다음 항공기가 공항에서 남동쪽으로 2마일 떨어진 애틀랜타 기지 상공 1,800피트(550m)에 있다고 알렸다. 그런 다음 이스턴 항공 운영자가 사고기에 연락하여 직진 접근을 제안했다. 21편은 소나무 숲으로 추락했다. 잔해는 오전 6시 30분 직후 애틀랜타 레인지 기지에서 남동쪽으로 5마일 떨어진 소나무 숲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구조대는 잔해 속에서 여전히 여러 명의 생존자를 발견했는데, 여기에는 에디 리켄배커가 있었다. 그는 두개골 패임, 두부 부상, 왼쪽 팔꿈치 골절 및 신경 눌림, 왼손 마비, 갈비뼈 여러 개 골절, 엉덩이 관절 눌림, 골반 두 번 골절, 왼쪽 엉덩이 신경 절단, 왼쪽 무릎 골절을 입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의 왼쪽 안구가 관절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그는 수개월간 병원에 입원한 후 회복되었고 시력을 완전히 회복했다.[1] 에드워드 리켄바허(Edward Rickenbacher, 1890년 10월 8일 ~ 1973년 7월 23일).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전투기 조종사. 명예 훈장을 받았고 26회의 공중전 승리를 거둔 그는 전쟁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미국의 비행 에이스였다. 그는 또한 레이싱 드라이버, 자동차 디자이너였으며 오랫동안 이스턴 항공의 사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