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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황병우 |
<colbgcolor=#007dc5><colcolor=#fff> [[iM뱅크|{{{#fff 제5대 DGB대구은행장}}}]] 이상경 | |
출생 | 1932년 5월 3일 |
경상북도 대구부 | |
사망 | 2023년 7월 1일 (향년 91세) |
직업 | 금융인 |
학력 | 경북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상학 / 학사) |
경력 | 대구은행 이사, 상무, 전무, 은행장 대구신용보증조합 이사장 대구상공회의소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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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금융인이다.2. 생애
그는 경북고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조흥은행과 서울은행을 거쳐 1969년 대구은행에 입행해 이사, 상무, 전무를 차례로 거친 후 1989년 2월 24일 주총을 통해 대구은행장에 선임됐다. 그렇게 은행장이된 그는 대구은행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데 힘을 쏟았다. 특히 지역에 경쟁 은행인 대동은행이 설립되는 등 치열한 경쟁 상황이 전개되자 캐치프레이즈를 ‘대구의 돈은 대구은행으로’에서 ‘가까운 우리은행, 편리한 대구은행’으로 바꾸고 전국은행화를 적극 추진했다. 그리고 증자를 통해 대출자산을 늘렸으며 철저한 리스크 관리로 퇴임 후에 들이닥친 IMF 외환위기로 인한 지역 건설업체의 연쇄부도 사태 속에서도 대구은행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반을 다져놓았다. 이후 1991년에는 노태우 대통령과 경북고 32회 동기동창으로 이른바 "TK 성골"인 그가 강경헌 전무를 사전에 한마디 상의없이 이사 명단에서 빼버려 논란을 야기했다. 이에 청와대, 재무부 등 관계기관에도 그를 비판하는 투서가 날아들었고 그는 1992년 4월 2일 대구은행장이 임기 11개월을 남겨두고 전격 퇴임했다.[1] 결국 주총에서 강경헌 전무를 퇴진시킨게 직접적인 발단이 되어 문책성 퇴진을 하게 된 것이다. 퇴임 이후에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캠프 고문으로 참여하는 등 행보를 이어갔다.3. 사망
2023년 7월 1일 사망했다. 향년 91세.[1] 물론 대구은행 사태를 거론하지는 않았고 일신상의 이유를 퇴임이유로 내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