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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 1956 연천 | 이해정 | 1957 | 1957 서울 | 오경학 | |
1958 | 1958 철원 | 오경학 | 1959 | 1959 연천 | 양두식 | |
15회 | 1960 서울 | 양두식 | 16회 | 1961 서울 | 지절언 | |
18회 | 1963 서울 | 지절언 | 19회 | 1964 서울 | 고영흠 | |
1965 | 1965 서울 | 고영흠 | 22회 | 1967 서울 | 남자 싱글 부문 미개최 | |
23회 | 1968 서울 | 이광영 | 24회 | 1969 서울 | 이광영 | |
26회 | 1971 서울 | 김훈 | 27회 | 1972 서울 | 남자 싱글 부문 미개최 | |
28회 | 1974 서울 | 남자 싱글 부문 미개최 | 29회 | 1975 서울 | 한수봉 | |
30회 | 1976 서울 | 남자 싱글 부문 미개최 | 31회 | 1977 서울 | 한수봉 | |
32회 | 1978 서울 | 한수봉 | 33회 | 1979 서울 | 남자 싱글 부문 미개최 | |
34회 | 1979 서울 | 남자 싱글 부문 미개최 | 35회 | 1981 서울 | 남자 싱글 부문 미개최 | |
36회 | 1982 서울 | 남자 싱글 부문 미개최 | 37회 | 1983 서울 | 조재영 | |
38회 | 1983 서울 | 남자 싱글 부문 미개최 | 40회 | 1986 서울 | 남자 싱글 부문 미개최 | |
41회 | 1987 서울 | 정성일 | 42회 | 1988 서울 | 남자 싱글 부문 미개최 | |
43회 | 1989 서울 | 남자 싱글 부문 미개최 | 44회 | 1990 서울 | 정성일 | |
46회 | 1992 서울 | 정성일 | 48회 | 1994 서울 | 정성일 | |
49회 | 1995 서울 | 정성일 | 50회 | 1996 서울 | 이규현 | }}}}}}}}} |
51회(1997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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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회 | 1999 서울 | 이규현 | 54회 | 2000 서울 | 이규현 | |
55회 | 2001 서울 | 이규현 | 56회 | 2002 서울 | 이규현 | |
57회 | 2003 서울 | 이규현 | 58회 | 2004 서울 | 이동훈 | |
59회 | 2005 서울 | 이동훈 | 60회 | 2006 서울 | 이동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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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회 | 2009 고양 | 김민석 | 64회 | 2010 서울 | 김민석 | |
65회 | 2011 서울 | 이동원 | 66회 | 2012 서울 | 김진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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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케이팅 내셔널 역대 챔피언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3c3b6e; font-size: 1em;" | }}}}}}}}} |
<colbgcolor=#8b724a><colcolor=#ffffff> 이동훈 Lee Dongwhun | |
| |
국적 |
|
출생 | 1987년 6월 25일 ([age(1987-06-25)]세) |
대구광역시 | |
학력 | 압구정고등학교 (전학) 광문고등학교 (졸업) 삼육대학교 (체육학 / 학사) |
종목 | 피겨 스케이팅 |
신체 | 170cm, 63kg |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비록 ISU 공식 대회가 아니어서 공인받지는 못했지만 아시안 게임에서 쿼드러플 토룹 점프를 성공함으로써 한국 선수 최초로 국제 대회에서 4회전 점프를 성공한 업적이 있다.2. 선수 경력
초등학교 1학년 때 누나를 따라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재능이 있는 선수였으나 당시 한국 남자 싱글은 이동훈 선수 한명 뿐이었고 그 결과 실력이 침체되는 현상에 이르렀다.[1] 그래도 당시 유일한 남자 선수로서 사대륙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 파견해야 했기에, 연맹에서는 비밀 평가회를 실시하는 등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고 한다.[2] 라파엘 아르투니안 코치에게 훈련받은 적이 있으며, 4회전 토룹(4T) 점프를 뛴 적이 있다.2007 창춘 동계 아시안 게임 프리 스케이팅에서 [[:파일:이동훈아겜쿼토.gif|
쿼드러플 토룹 점프]]를 성공했으나 아시안 게임은 ISU 공인 대회가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기록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 첫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점프 재능을 가졌지만 컨시가 좋지 못했고, 비점프 요소가 매우 부족하여 점수대는 낮았다.이후 한국 남자 싱글에서 이준형과 김진서가 쿼드러플 점프의 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공인 대회에서 성공시키지 못하였고, 차준환과 이시형이 등장하며 쿼드러플 점프의 공식 성공 인정을 받았다.
3. ISU 공인 최고 점수
<colbgcolor=#8b724a><colcolor=#fff> ISU 공인 최고 점수 | |
쇼트 | 42.00(2007 세계선수권) |
프리 | 71.94(2005 사대륙선수권) |
총점 | 106.64(2005 사대륙선수권) |
4. 커리어
||<-9><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8b724a><table bgcolor=#ffffff,#1f2023><bgcolor=#8b724a> 국제대회:시니어 ||
대회 | 01–02 | 02–03 | 03–04 | 04–05 | 05–06 | 06–07 | 07–08 | 08–09 |
세계선수권 | 33rd | 31st | 34th | |||||
사대륙선수권 | 12th | 16th | ||||||
유니버시아드 | 28th | |||||||
카를 샤머 메모리얼 | 20th | |||||||
아시안 게임 | 7th | 7th | ||||||
국제대회:주니어 | ||||||||
주니어 세계선수권 | 29th | 21st | 27th | |||||
국내대회 | ||||||||
종합선수권 | 1stJ | 2nd | 1st | 1st | 1st | 1st | 1st | 2nd |
위첨자: J=주니어 |
5. 기타
-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에서 크리스탈의 파트너로 출연하여 우승했다.
- 2005년 9월 23일, KBS 기사에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유망주로 소개했다.
[1] 본인의 인터뷰 중 “경쟁자가 있었다면 동기부여가 됐을 텐데 매번 혼자 출전해서 우승하는 것이 창피하다. 훈련을 하다가 지치면 안 해버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2] 실제로 김민석이 시니어로 올라오고 난 후, 2009 사대륙선수권 파견을 할 때 김민석만 출전시키고 이동훈을 제외시켰다. 두 선수 모두 출전할 수 있었지만 이동훈은 국제대회에 나설 실력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