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5 18:45:11

이나히메


1. 개요

파일:小松姫.jpg
에도 시대 후기에 그려진 초상화.

1573년 ~ 1620년 3월 27일

혼다 타다카츠의 장녀이자 사나다 노부유키의 아내. 이름은 벼(稲)이고, 오네이(於小亥)는아명이다. 코마츠(小松)는 후세에 불리게 된 이름이다.

2. 생애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로는, 못말리는 말괄량이로, 선을 볼 때 남편 후보들의 촌마게를 잡고 들어올려서 얼굴을 확인했다고 한다.(영상)[1]

사나다 마사유키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우에다 성에서 격퇴한 뒤, 두 집안의 화친을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선으로 1586년에 정략결혼했다. 히데요시가 자기 산하의 사나다 가문이 계속 이에야스와 적대하는 것이 불편해서 마사유키에게 신년 인사를 다녀오라고 명했고 이렇게 대면한 자리에서 이에야스가 먼저 혼담을 꺼냈다. 이에 일단 승낙하고 후에 완곡하게 거절하려는 심산이었기에 상대가 혼다 타다카츠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이에야스도 다이묘이고 나도 다이묘인데 왜 이에야스의 가신과 사돈을 맺냐'고 거절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물러서지 않고 이나히메를 자신의 양녀로 삼아서 시집 보냈다고 한다.(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양녀라는 설도 있다) 맹장으로 이름난 혼다의 딸이라서 사나다 가문에선 우락부락한 여장부를 생각했고 노부유키가 잠자리에서 암살 당하는게 아닌가라는 반쯤 농 섞인 우려도 했으나 의외로 갸날픈 체구였다고 한다. 때문에 오히려 일찍 병사해버리거나 해서 침공의 구실을 주는게 아닐까 걱정할 판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일은 없이 일찍 상처한 마사유키의 맏며느리로서 사나다 가문의 안주인 노릇을 톡톡히 했다. 어릴 때는 말괄량이였었다지만 결혼을 한 후에는 전국시대 여성답게 조용하고 삼가는 모습을 보였는데 기질이 어디간게 아니라서 시아버지나 남편에게 할 말은 똑부러지게 하여 사람을 가끔 놀라게 했다고 한다. 몸은 조금 병약한 편이라 첫째를 낳고는 병치레를 했다는데 이때 마사유키가 크게 걱정하며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어 사랑받는 며느리였다는걸 알수 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당초에는 우에스기를 압박하기 위하여 사나다군이 출정하였다가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한을 받게 되고, 이에 사나다 부자가 논의를 하게 되었을때 아버지 마사유키와 둘째 유키무라는 도요토미 가문에 대한 의리로 서군에, 첫째는 동군에 붙기로 결정하게 된다[2]. 서군에 적을 두기로 한 마사유키가 회군하면서 노부유키의 성인 누마타 성에 들려 손자 얼굴을 보고 싶으니 문을 열라고 했지만(아마 누마타 성을 칠 마음이었을 듯), 군중에 노부유키가 없는 것을 보고 의심한 이나히메가 시녀들까지 완전 무장을 시켜 성벽에 배치하고 노부유키가 있어야 성문을 열겠다고 활을 들이대서 그대로 물러났다는 일화가 유명. 이때 마사유키가 '과연 혼다 타다카츠의 딸이로다'라며 탄식을 했다고도 한다. 다만 마사유키가 물러난 뒤 사적으로 아들과 함께 마사유키에게 찾아갔다는 말도 있어서 마음도 따뜻한 여성이었는 듯.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 사나다 가문의 성인 우에다 성의 성주로 장남 노부유키가 임명된 것도, 서군 소속으로 참전했던 마사유키 부자가 패전 후 사형을 선도받았다가 유폐로 감형된 것도 당연히 그녀와 혼다라는 가문의 영향력이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에야스에게 한없는 충성을 바쳐왔던 혼다 타다카츠가 마사유키의 처형을 면해달라는 구명장을 올렸을때 이에야스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3] '제 사위의 아비를 죽이시려거든 저와 먼저 싸우셔야할 겁니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고도 하니 사나다 가문 입장에서는 꼼짝없이 죽을 목숨을 건졌다고 봐야할듯.

결국 사나다 가문이 일련의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가문의 거성을 지키고 다들 목숨을 부지한 것은 그녀를 며느리로 맞아들인 덕분이란 점에서 그녀와의 혼사는 큰 복락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정적이 되어 고야산에 유폐된 시아버지와 시동생을 따뜻하게 잘 돌봐 주었다고 한다. 사나다 가문의 고향인 신쥬의 음식을 철마다 챙겨서 보낼 정도로 세심하고 좋은 며느리이자 형수였다.

정략 결혼이었지만 금슬은 좋았다는 듯. 노부유키의 사이에서 사나다 가문의 후계자가 된 겐자부로를 비롯하여 2남 2녀가 있었다.

1615년 오사카 전투 당시 노부유키를 대신해 출전한 아들들이 숙부에게 패하고 돌아오자 '충의를 보이기 위해 한 명이라도 죽었어야 했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덧붙여, 그녀의 동생이자 혼다 타다카츠의 아들인 혼다 타다토모는 여름 전투 때 전사.

3. 대중문화에서

3.1. 전국무쌍 시리즈

이나히메(전국무쌍) 참조.

3.2.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파일:稲姫.jpg 파일:稲姫1.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파일:대지이나히메.jpg
노부나가의 야망 대지
천도 PK 군웅패권 모드 클리어시 등장.

창조에 오면 도쿠가와 쪽이든 사나다 쪽이든 전국전 관련으로 자주 등장한다. 특히 사나다 전국전에서는 바깥으로 나간 남편을 대신해 누마타 성을 지키며 시아버지와 시동생을 막아버리고도 손주들을 몰래 데리고 가는 역사가 반영되어 둘 다 두 손을 들어버리게 하는 막강 며느리. 전법도 '조준사격'을 들고 나와 무력 수치도 생각보다 높기 때문에 부장으로 쓸모가 괜찮다. 군웅집결에선 아버지 및 일문들과 함께 카즈사 지역에 혼다 가문을 차려 나온다.

백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에서는 누가 혼다 타다카츠의 딸 아니랄까봐 사슴 뿔을 달고 나왔다. 최강 히메 무장 결정전에서 사나다 가 다이묘로 등장. 일문전 화실겸비의 용사에서 일러 교체.

3.3. 사나다태평기

배우는 콘노 미사코이다.

3.4. 사나다마루

배우는 요시다 요이며, 혼다 타다카츠의 딸이자 사나다 노부유키의 아내. 15화에서 첫 등장해 사나다 가에 대한 분노와 의욕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인다... 과연 그 아버지의 그 딸. 사나다를 치러갈 때 함께 가겠다며 창을 휘두르는데 이에야스가 마음만으로 충분하다고 진정시킨다. 노부유키와는 곧 혼인하게 되는데 도쿠가와의 첩자로 활약한다는 것엔 이의가 없어뵈지만 혼인은 죽어도 하기싫은 모습... 처음엔 얘기도 안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노부유키에게 먼저 들이댄다. 확실히 가족이 된 듯. 하지만 노부유키가 도쿠가와 편을 들자 그에 따라 누마타성을 대신 지키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노부유키가 다이묘가 된 이후에도 남편을 종용하여 어디까지나 도쿠가와의 편에 설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여장부 스타일로 아버지를 닮아 꽤나 대범해서 남편의 전처가 시녀로 남아있는 상황이 불편할 법 한데도 별 내색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나중에는 속내도 터놓을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 남편과 비슷하게 고지식하고 진지한 성격이다
[1] 1985년에 방영된 NHK의 신시대 역사극 사나다 태평기의 한 장면이다. 부채로 턱을 올려 얼굴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온다.[2] 즉흥적으로 갈라섰다는 얘기도 있지만 가문의 존속을 위해 오래전부터 합의해둔 사안이라는 설이 우세하다.[3]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이에야스의 아들 히데타다는 사나다 군에게 막혀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여하지도 못했고 이는 경우에 따라서는 목을 내놓아야할 정도의 실책이었기 때문. 간신히 이긴 전투의 향방, 자신의 아들의 추태 등이 겹쳐 이에야스의 심기가 크게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