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대한제국의 민권운동가 겸 친일반민족행위자
윤치호 문서 참조.2. 대한민국의 성악가 겸 대학교수
1942년[1] ~ 2007년대한민국의 성악가, 바리톤, 대학교수이다. 김자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등에서 활동하였다.
그밖에 아마추어 합창단의 육성에도 힘써 소년소녀합창단·남성합창단 등을 지휘하기도 했고, 경희대 음대 교수, 명지대 사회교육원 교수를 지냈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도 성악과 가곡을 가르치기도 했다.
3. 사회 사업가
尹致浩1909. 06. 13. ~ 1951. 01. 26.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활동하던 사회사업가. 본관은 파평(坡平).
1909년 전라남도 함평군 대동면 상옥리 옥동마을[2]#에서 태어났으며, 일제 시대와 해방 직후에 버려진 수많은 고아들을 데려다가 대가 없이 양육하고, 돌봐주었다.
버려진 고아들을 데려다가 양자, 양녀로 키우던 것에서 시작. 1928년부터는 공생원이라는 이름의 고아원을 설립한 것이다. 부인은 일본 여성 다우치 치즈코(田內千鶴子)인데, 윤학자라는 한국식 이름을 얻었고 해방 후에도 한국에 살다 갔다.링크
1951년에 광주에서 실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