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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968b3><colcolor=#fff> 제29·3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유성희 柳聖熙 | Ryu Seong hee | |
출생 | 1935년 3월 25일 |
충청북도 괴산군 | |
사망 | 2001년 7월 11일 (향년 66세) |
평양시 친선병원 | |
장지 | 충청북도 음성군 선영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재임기간 | 제29·3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
1994년 ~ 2000년 | |
가족 | 배우자 정재옥 슬하 2남2녀 |
학력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 학사) |
경력 | 제29·3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서울시의사회 회장 동서울병원 병원장 유성희정형외과 병원장 가톨릭대학교 성바오로병원 정형외과 과장 |
상훈 | 국민훈장 모란장 (2001년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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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형외과 의사이자 제29·3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2. 생애
1960년 서울의대를 졸업한 뒤 가톨릭의대 성바오로병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봉직의 생활을 출발, 1969년 동대문구 제기동에 유성희 정형외과를 개원했다. 이후 1978년 동대문구 신설동에 현 동서울병원을 신축, 병원을 확장 이전했으며 1985년~1988년 서울시의사회장, 1994년~2000년 1월까지 제29, 30대 의협 회장을 역임했다. 1997년 30대 의협회장에 재임했으나 의약계와 시민단체간 의약분업 협상 당사자로 의료계 내부의 비판을 받으며 3년 임기를 못채우고 지난 2000년 1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또한 그는 대북의료사업에 무척이나 관심을 가졌던 인물로, 의협의 대북의료사업을 전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는 지난 1998년부터 대북의료지원 사업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개인 자격으로 미국내 북쪽과 손이 닺는 사람을 통해 이뤄졌다. 평소 지인들에게 "빨리 북쪽의 동포들에 인술을 전해야 하며 북한의 의료 실정을 알아야 나중에 통일이 되면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했고 한다. 본격적인 대북 접촉은 1999년부터 이뤄져 당시 한차례 방북, 라진·선봉지역의 병원을 시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안이 민감해 의협내에서도 그를 제외한 2~3명정도만 내용을 파악할 정도로 극도의 보안속에 진행됐다. 또한 그는 방북 이후 실질적인 대북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북경을 두 번 방문, 두차례 걸쳐 북한의 대외협력창구인 아태평화위원회와 접촉을 가졌다. 하지만 첫 번째 만남은 현지서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번째 만남서 양자는 합의를 했고 그의 이같은 부단하고 끈질긴 접촉을 통해 의협은 이번 대북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약분업시행을 앞두고 의료계의 강경기류에 밀려 2000년 1월 의협 회장직 중도 퇴진을 맛보면서 사실상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