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colcolor=#fff> 족보명 | 유동범(柳東範) |
자 | 성홍(聖洪) |
본관 | 전주 류씨[1] |
출생 | 1896년[2] |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임하현 수곡리 (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3] | |
사망 | 1924년 4월 8일 |
중국 하얼빈 남십팔도구 동발잔 | |
묘소 | 만주 |
상훈 | 건국훈장 독립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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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유기동은 1896년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임하현 수곡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아버지 유연재(柳淵在)와 어머니 의성 김씨 김시락(金蓍洛)의 딸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성주군으로 이주하여 본적을 두었다.그는 일찍이 만주로 건너가 1920년 봉천성 무송현(撫松縣)에서 조직된 흥업단(興業團)에 가담하여 항일무장 활동을 하였다. 1924년 봄 하얼빈(哈爾濱) 일본 총영사관 순사부장 쿠니요시 세이호(國吉精保)와 형사부장 송도(松島) 등이 독립투사들을 함부로 해친다는 정보를 듣고 이들을 처단하기로 결정하고, 서로군정서 대원인 김만수·최병호와 함께 그들을 처단하기로 결의했다.
그후 1924년 4월 8일 하얼빈 남십팔도구에 소재한 중국여관 동발잔에서 일본영사관 순사부장 쿠니요시 세이호(國吉精保)를 사살했다. 그러나 곧 일제 경찰들에게 포위된 뒤 교전하다가 항복 권유를 받자 "일본인의 앞에 항복하려면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버티었으며 결국 폭탄과 집중사격에 의하여 동지들과 함께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유기동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