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8 15:19:52

요시오카 덴시치로

吉岡伝七郎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일본 전국시대의 검호로 그 당시 유명했던 유파인 요시오카류 3대 당주인 요시오카 세이쥬로의 동생이자 요시오카 나오타카의 아들로 요시오카전에서 보이는 요시오카 시게카타 나오시게(吉岡又市直重)와 동일 인물로 보인다.

1604년에 미야모토 무사시가 형인 세이쥬로와 시합한 이후에 무사시와 시합했다고 하며, 이천기에 따르면 교토 바깥에 나가서 승부를 냈다고 하며, 5척 정도의 큰 칼을 가지고 무사시와 상대했지만 그 칼을 빼앗기면서 역으로 일격에 베여 절명했다고 한다.

요시오카전에서는 무사시가 세이쥬로와의 시합이 끝난 후에 무사시와의 시합을 약속했지만 무사시가 시합 당일에 나오지 않아 부전승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기록들은 무사시 측과 요시오카 측이 자신의 입장에 따라 서술하여 서로 자기 쪽이 이겼다는 기록으로 엇갈리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확한 승부의 결과는 알 수 없다.

2. 대중매체에서

2.1. 배가본드

교토 경팔류 요시오카 도장의 일원으로서 선대인 요시오카 겐보[1]의 차남이자, 당주인 요시오카 세이쥬로의 동생이다. 형제인데도 외모가 극과 극으로 다르다.(...) 한량인 형과는 달리 우직하고 정이 많은 성격. 덕분에 항간에 평이 좋지 못한 형과는 달리 도장 사람들에게도 많은 신임을 받고 있다. 우에다 료헤이는 대놓고 당주는 세이쥬로가 아니라 너다! 라고 할 정도. 무사시와 작 초반에 대결해서 치명상을 입히지만, 화재[2]로 인해 승부를 내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요시오카 겐보의 아들, 요시오카 덴시치로. 예전의 나는 나를 강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내아버지의 이름을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무사시. 세이쥬로와 덴시치로의 차이를 가르쳐주지. 만약에 덴시치로가 네 손에 죽게된다면 요시오카의 제자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그 날부터 복수를 위해서만 살게 될 거다. - 우에다 료헤이 -

약속대로 1년 뒤 교토에서 무사시와 재대결을 펼친다. 그러나 재대결에 앞서 믿고 따르던 형 세이쥬로가 무사시와 대결 끝에 죽임[3]을 당하게 되어 매우 심란한 상태로 대결에 임하게 된다. 첫번째 공격은 닿지않고, 두번째 공격에서 무사시의 반격에 검이 부러지자[4] 1년동안 벌어진 무사시와 자신의 거리와 그 거리를 좁힐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무사시를 이기고 다음 싸움들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임을 깨닫고 다음을 버린다. 라고 다짐. 자신의 목숨을 버리더라도 형의 복수를 위해 무사시를 길동무로 삼을 각오를 세우고, 마지막에 겨우 정신적인 성장을 이룬다. 이후 위의 대사를 읊조린후 무사시에게 돌격하지만, 결국 세번째 공격을 이어가지 못하고 무사시에게 왼쪽 손목과 몸을 베인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왼쪽 팔로 무사시를 감싸안은 후 내려치기 위해 검을 높이 들어올리지만, 그 짧은 사이에 무사시가 덴시치로의 와키자시를 뽑아 복부를 찌른 상태라 결국 치켜든 검을 내려치지 못한채 서서 죽었다. 무사시는 이긴건 본인이라며 어서 쓰러지라 읊조리고 끝내 앞으로 넘어져 대결은 끝이 난다.

평생을 형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뛰어넘지 못한채 그를 잃고 형의 복수조차 하지 못하고, 도장 문하생들도 전부 그의 유지를 거스른채 무사시에게 복수를 하려다가 몰살당한, 어찌보면 딱한 인물.

험상궂은 얼굴과 덩치와 달리 마음 속으로 정이 깊고, 나약한 면이 컸다. 오로지 아내에게만 이걸 밝혔는데 형이 죽고나서 울긴 울었지만 그래도 굳센 얼굴을 하며 형의 복수를 다짐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 아내 품에 안겨 아내 다리에 얼굴을 묻고 소리없이 통곡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죽을 걸 예측하고 유언장으로 복수같은 거 집어치우고 우에다 료헤이에게 차기 당주를 맡기며 요시오카 도장을 발전시키라는 부탁을 했으나 료헤이와 10검[5], 제자들은 이를 지키지 않고 이들 70여명이 무사시랑 대결을 벌이게 된다.

야규의 극의를 꿰뚫어 보지 못한 점이나, "독수리가 보기에 머물러있는 개미들도, 한걸음 한걸음 느리게 나아감에도 성취감을 느낀다"라는 말에서도 보이지만 재능있는 자가 아닌 노력하지만 재능이 부족한 이의 한계, 그리고 스스로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 자의 고뇌, 절망을 보여주는 인물. 요시오카 도장의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좋아하던 그의 그릇은 검의 극의를 담을수 있는 그릇이라기 보단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고 보는것이 정확할 것이다. 휘하 70명의 문하생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의 복수를 하려고 할정도로.

이후에도 요시오카 도장 일원으로 은퇴한 이들이 차례로 복수심으로 무사시에게 덤벼들게 된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요시오카 멸문에 가장 큰 귀책이 있는 인물이다. 당주이자 형인 세이쥬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이쥬로 혼자 과도한 부담을 짊어지게 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만들고, 머리와 실력은 떨어지면서 의지와 신념은 넘쳐흘러 형을 무시한채 굳이 야규를 만나러 간다고 주위 사람들을 고생시켰으며, 무사시의 팔을 하나쯤 잘라버리려는 우에다를 막아서서 결국 무사시에게 1년의 시간을 주는 최악의 실책을 저지르고, 10번 싸워 10번 이길 수 없는 상대와는 싸우지 말라는 선대의 가르침을 어겨 무사시에게 결투를 신청해 결국 스스로도 사망하고, 심지어 그 무사시와의 결투에 앞서 연습한답시고 힘조절도 못하고 요시오카 십검 중 한명의 팔을 잘라버려 이후 중대한 전력 공백을 야기하고, 덴시치로의 모자란 실력을 간파한 우에다가 대역을 세우기 위해 사사키 코지로를 무리하게 데려오는 과정에서 역시 요시오카 십검인 미이케를 잃게 만들고, 요시오카 일문에게 실력이 아닌 인간적인 정만 쏟아부어 결국 요시오카 전원이 그 한명의 유지를 위해 죽었기 때문이다. 덴시치로에게 당주를 맡기지 않은 선대의 혜안을 엿볼 수 있지만... 결국 요시오카는 덴시치로 대에서 끝나고 만다.


[1] 여기서는 편의상 겐보로 나온 것 같지만 요시오카 나오타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며, 겐보는 요시오카의 당주 대대로 내려지는 호이다.[2] 마타하치가 요시오카 도장 내에서 몰래 술을 먹던 도중 일으킨 화재[3] 그것도 세이쥬로의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복부까지 깔끔히 베어져 두 동강이 났다.[4] 이때 무사시는 덴시치로의 검의 절규(나의 말을 듣는다면 베지 못할 것이 없는데 왜 듣지 않느냐는)를 듣고선 덴시치로를 딱하게 여겼다.[5] 여기서 덴시치로랑 대결 연습을 하다가 오른팔을 잃은 오오타구로 효스케는 빠진다. 이후 오오타구로는 70명 살인죄로 잡혀 갇힌 무사시가 사형당한다면 내가 죽이겠다고 칼뽑아들고 포도청 앞에서 난리를 부리다가 잡혀 가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