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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乂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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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숙원(叔元)으로 왕웅의 아들이자 왕연, 왕징(王澄)[1]의 아버지, 왕미(王微)[2]의 조부이면서 왕융의 숙부. 서주 낭야국 임기현 사람.2. 생애
263년 5월에 조환이 칙령을 내려 촉한의 정벌이 시작되면서 등애와 제갈서에게 각기 3만여 명을 이끌게 했다가 제갈서는 종회의 모함으로 제갈서의 병력은 종회가 거느리게 되면서 264년에 종회와 등애가 촉한을 공격해 멸망시켰는데, 이후에 종회가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소는 서쪽의 장안으로 옮겨가면서 왕예를 부르자 상국사마로 삼았다.나중에는 대상서로 옮겨졌다가 지방에서 유주제군사를 다스리고 평북장군까지 되었고 북평에서 사망했다. 위관이 271년 8월에 유주제군사를 역임한 것으로 보아 271년 8월 또는 그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설신어에서는 조납의 명성을 듣고 비녀 2명을 보내면서 그를 중랑으로 등용하자 이를 비웃는 자가 있었는데, 그 명성에 걸맞게 조납이 그 사람에게 얘기한 것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