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과 함께 3백명의 승병으로 이루어진 수군을 결성해서 이순신의 배를 탔으며, 이순신에게 군비를 조달하고 전투에 참여하는 등 종군해 이순신의 곁을 언제나 떠나지 않았다. 1598년에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하고 임진왜란이 끝나자 그의 인격과 뜻을 잊지 못해 자운과 함께 충민사 사당 곁에 작은 암자를 지었다.
그 때 지은 암자인 석천사를 지키면서 제사를 지내 80세가 넘도록 정성을 다했고,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꿈에서 이순신이 나타나자 "공(이순신)의 나라를 위하는 충혼이 죽어도 이와 같다"고 하면서 죽는 날까지 이순신을 숭배했다고 한다.
석천사에는 자운과 함께 그를 모시는 영정이 있었다가 흥국사로 옮겨져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때 순사에게 영정을 빼앗겨 제사가 중지되었다가 이후에 석천사에서 옥형, 자운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
이순신과의 관계는 충무공전서, 지봉유설에 그 기록이 남아있고 호남절의록에 따르면 자운과는 속가의 형제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