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10 20:32:14

오스왈도 로페스 아레야노


파일:온두라스 대통령 문장.png
온두라스 공화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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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스발도 로페즈.jpg

1. 개요

오스발도 엔리케 로페스 아렐라노 (1921년 6월 30일 ~ 2010년 5월 16일)는 온두라스대통령 이자 독재자 다 1963년부터 1971년까지, 그리고 1972년부터 1975년까지 온두라스 대통령 을 두 번 지냈다.

2. 생애

로페즈는 엘 파엔리케 로페즈와 칼로타 아렐라노의 아들로 단리 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그를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 에 있는 미국이 후원하는 학교에 보냈고, 그곳에서 그는 영어를 배웠다. 그는 18세에 온두라스 군대에 입대했고 이후 온두라스 공군 학교(Academia Militar de Aviación de Honduras Capitán Raúl Roberto Barahona Lagos)에서 조종사로 졸업했다. 그는 1942~1945년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기계 항공을 공부하며 보냈다. 로페즈는 수년 동안 대령 으로 복무했고 결국 장군 으로 진급했다.

3. 정치

로페스는 1957년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민주적 선거가 치러진 후 종식되었다. 쿠데타 이후, 그는 1963년 10월 3일부터 1971년 6월 7일까지 처음으로 대통령으로 재임한 후, 1971년 4월에 추가 선거( 1971년 온두라스 총선 )가 실시되도록 허용했다. 라몬 에르네스토 크루즈가 집권하게 되었다. 1972년 12월 4일, 로페스는 1972년 온두라스 쿠데타 로 다시 권력을 잡았다.

로페스가 1972년 두 번째 임기를 보낼때 그는 개발독재를 시작했다.[1] 이 계획은 경제 개발 계획이라고 불렸고 두 단계를 거쳤다. 1965년의 첫 번째 단계와 1972년과 1975년 사이의 가장 중요한 단계였다. 1973년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1975년에는 토지개혁을 시작했다.

로페즈는 축구 전쟁 동안 온두라스 군대를 이끌었다.

4. 해임

결국 미국은 1975년 그가 비리를 저질렀다고 알렸고[2] 훗날 이 사건은 바나나게이트로 기억된다.
[1] 예를 들면 박정희 장제스처럼 토지 개혁을 시작했다. 상대는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이다.[2] 사실 그랬던 이유가 당시 온두라스에 허리케인 피피로 인해 농장이 파괴되고 당시 회장이 로페스에게 250만 달러를 줬다는 사건이 발각 될까 두려워 자살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