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7 22:32:40

오사카 오인중

오사카 오인중
사나다 노부시게 모리 카츠나가 고토 마타베에 아카시 테루즈미 쵸소카베 모리치카

大坂五人衆.
오사카 전투에서 맹활약한 다섯 명의 무장들이다. 순서가 딱히 정해져 있진 않지만 사나다 노부시게가 그 필두로 취급된다.

사나다 노부시게(真田信繁)
흔히 알려진 이름은 유키무라. 사나다 마사유키의 아들로 우에다성 전투에서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대군에 맞서 시간을 벌었지만 서군이 패배, 세키가하라 전투가 끝난 후 아버지와 함께 유폐된다. 마사유키가 말년에 유폐에서 풀렸지만 자신은 그대로 유폐된 상황에서 히데요리에게 스카웃된다.[1] 그걸 받아들이고 계략을 써서 쿠도산을 탈출, 참전한다. 그렇게 전설이 된다. 노부시게를 감시하던 키슈의 백성들은 저항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애초에 도쿠가와에 의한 지배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기에 일부러 격한 추격은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모리 카츠나가(毛利勝永)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던 모리 카츠노부의 아들.[2]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아버지와 함께 서군으로 참전했다가 몰락하고 목숨만 겨우 건지게 된다. 쵸소카베 가문을 대신해서 도사에 온 야마우치 카즈토요 아래에 있다가 히데요리의 초대를 받게 된다. 오사카 공격에 참여하고 싶다고 거짓말을 하고 오사카 측에 가담한 것이기 때문에 처자식은 참수당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히려 막부에서는 가족을 보호하였다고 한다,

고토 마타베에(後藤又兵衛)
구로다 가문의 맹장. 마타베에는 통칭으로 이름은 모토츠구이다. 하지만 구로다 나가마사와의 불화로 임진왜란 이후 뛰쳐나오게 된다. 명성이 자자했기에 여기저기서 등용 제의를 받았지만 나가마사의 방해 등으로 번번이 실패, 낭인 생활을 하다가 히데요리의 부름에 응하게 된다. 마타베를 고용하려는 호소카와 타다오키와 고용을 방해하려는 쿠로타 나가마사의 다툼이 심했다고 한다

아카시 테루즈미(明石全登)
타케노리, 젠도우라고도 읽는다. 우키타 히데이에의 가신으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활약했지만 결국 서군이 패배, 히데이에는 도주했다가 붙잡히고 자신은 낭인 신세가 된다. 이 때에 이르러 400 또는 4000명의 기독교 신자(기리시탄)와 함께 히데요리를 따르게 된다.

쵸소카베 모리치카(長宗我部盛親)
쵸소카베 모토치카의 4남으로 쵸소카베가 22대 당주이자 마지막 당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이어서 가이에키(개역, 영지몰수)당했고 자신이 맡던 도사번은 야마우치 카즈토요에게 넘어간다.[3] 그렇게 다이묘에서 일개 낭인으로 전락, 서당 선생 노릇을 하다가 히데요리에게 캐스팅된다. 참고로 각지에서 가이에키 당한 다이묘들이 서당을 차려 생계를 유지했던 건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보다시피 5명 중 4명이 서군이었다가 몰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이다. 고토의 경우만 순수하게[4] 자기 이름을 떨치고 출세하기 위해 참전한 것. 이게 오사카 전투에 참가한 낭인들의 공통점으로 도요토미가에 은혜를 입은 자들이 아니라 이에야스에 대한 원한과 돈, 출세를 위해서 참전한 것이었다.

이들은 당연히 전투에 능한 자들이었고 괜찮은 작전을 짰지만 전쟁을 몰랐던 오사카 수뇌부에게 거부당한다. 그나마 방어력이 강력했던 겨울의 전투에서는 방어에 집중했지만, 성의 방어력이 상당부분 무력화된 여름의 전투에서는 성 밖으로 치고 나가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중과부적으로 하나씩 쓰러지게 된다.

고토는 여름의 전투 첫 날 홀로 싸우다 전사, 사나다는 이에야스에게 돌격했지만 실패하면서 전사, 모리는 히데요리와 함께 자결, 쵸소카베는 성에서 탈출했다가 잡혀서 처형당한다. 아카시 테루즈미만 유일하게 생사불명이다. 이들의 활약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각 인물들의 활약을 참고하기 바란다.

오인중이라 하지만 사실 명성은 사나다 노부시게에게 집중돼 있다. 이들보다는 가상인물들이 섞인 사나다 십용사가 더 유명할 정도. 텐노지 전투에서 노부시게가 이에야스에게 할복을 각오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펼쳤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활약을 하기엔 오사카 전투 자체가 그리 길지 않았던 점도 있고. 모리 카츠나가의 경우 노부시게에게 길을 열어주고 자신도 맹활약을 했는데 그게 다 노부시게에게 넘어가 버려서 더 안습하다.

노부나가의 야망에서는 각기 급 차이는 있지만 모두 전투에서 굴리기 좋고 내정 쪽은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 이 때 사자가 지참한 계약금이 황금 200매와 은 30관이라고 한다[2] 임진왜란에도 참전했었다[3] 영지를 지킬뻔도 했는데 다른 사건을 하나 더 터뜨려서 결국 가이에키 당했다고 한다[4] 다른 자들이라고 원한만으로 참전하진 않았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