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10 16:47:27

열주도



列周道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발해의 유민. 발해부흥운동 시기에 활동한 발해인이다. '열주의(列周義)'라고도 하며, 935년 12월과 936년 2월 2차례 후당을 방문했다.

2. 생애

(935년) 12월, 발해 사신 열주의가 와서 입조하고 방물을 바쳤다.
十一月, 渤海遣使列周義, 入朝貢方物.
- 『책부원귀(册府元龜)』 권972 외신부(外臣部) 17 조공(朝貢) 5 -
청태 2년 12월, 열주도 등이 입조해 방물을 바쳤다.
淸泰二年十二月, 遣使列周道等入朝, 貢方物.
- 『오대회요(五代會要)』 권30(卷三十) 발해(渤海) -
청태(淸泰) 3년 2월, 입조한 남해부도독 열주도에게 검교공부상서를, 정당성 공부경 오제현에게 시광록경의 관직을 주었다.
三年二月, 以入朝使南海府都督列周道爲檢校工部尙書, 政堂省工部卿烏濟顯試光祿卿.
- 『오대회요(五代會要)』 권30(卷三十) 발해(渤海) -

중국 측 기록인 책부원귀, 오대회요의 기록에 의하면 열주도(열주의)는 935년 12월과 936년 2월, 후당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방물을 바쳤다고 한다. 2번째 입조할 당시 열주도는 정당성 공부경인 오제현과 함께 후당을 방문했으며, 남해부도독(南海府都督)이라는 관직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이며, 후당 측은 그에게 검교부상서 관직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3. 기타

  • 남해부도독 직함을 가지고 있는 점을 볼 때 발해 남부인 남경남해부 일대(오늘날 함경남도 지역)에서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 후일 정안국의 국왕으로 등장하는 열만화(烈萬華)와 관련있는 인물이라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