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나는 엘사가 참 마음에 든다. 비록 우리가 그녀를 차갑고 도도한 모습으로 그려냈지만, 그녀에게 계속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녀는 자신을 가두는 감옥과도 같은 곳에서 살고 있고, 그 누구와도 자신의 비밀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대목에 있어서 <겨울왕국>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정할 수 없는, 꽤 깊은 주제를 담고 있다.
- 겨울왕국 아트북 중, 스토리 아티스트 크리스 윌리엄스.
- 겨울왕국 아트북 중, 스토리 아티스트 크리스 윌리엄스.
엘사는 기본적으로 동생 안나와는 정반대되는 분위기와 성격을 타고났다. 품위있고 정숙한 여인같아 보이는 겉모습에 걸맞게, 엘사는 동생 안나에 비해 조신하고 차분하며 다소 어두운 성격의 아가씨로 공주하면 떠올릴법한 우아한 기품을 가지고 있다. 엘사의 그림으로 그린듯한 '완벽한 공주'의 모습은 언제나 좋은 아이로 보여야 한다는 교육에 의한 엘사 스스로의 강박의 영향도 있으나, 'A Sister More Like Me'에서 보여진 바에 의하면 원래 타고난 성격 자체가 그런 면도 있는듯.
방을 언제나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며, 야외활동 보다는 조용한 다과회를 즐기고 평화롭고 고요한 분위기를 사랑하는 등 안나와는 취향 면에서도 정반대이다. 또한 공부를 잘해서 매우 똑똑하고 학구적이며 책을 쌓아두고 공부를 하거나 몸가짐과 치장에도 많은 신경을 쓰는 등 모범적인 왕족 다운 면도 있다. 참고로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기하학.
그외에도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습관이나 어린 시절 눈사람을 만들러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큰소리로 웃고 떠드는 안나와 달리 성안 사람들을 깨울까봐 조용히 하자며 쉿!이라고 제스쳐를 취하는 장면이 있는 등 세세한 부분에서도 두 자매의 성격차이가 드러난다. 디즈니가 그만큼 자매의 성격 묘사에 있어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는 것. 2편에서도 이런 부분을 잘 캐치해내는 데,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마법의 숲 이야기를 듣던 날에도 엘사는 가지런히 손까지 모은채 얌전하게 앉아 어머니 말씀을 경청하지만 안나는 침대 위에서 방방 뛰고 있었다. 성인이 된 현재 시점에서 다같이 게임을 할때도 엘사는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손을 들거나, 자기 표현을 하지 못하고 쿠션을 스벤에게 강탈당하는 등(...) 얌전하고 섬세한 성격이 잘 보여진다. 그외에도 다른 사람들 앞에선 쉽게 나서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고 안나와 옥신각신 할때도 안나가 속사포처럼 말하자 한마디도 대꾸를 못하고 있으나 혼자 남겨져서 노래를 부를 때는 당당하고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 면때문에 겨울왕국 갤러리에선 산구석 여포, 엘찐이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놀림받고 있다.
밝고 긍정적이며 용감한 성격의 안나와 반대로 다소 어둡고 부정적이며 겁이 많은 편이다.[스포일러1]
성인의 나이이기도 하고 안나보다 3살 많은 인생 선배인 만큼 엘사는 안나에 비해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면이 있다. 처음 본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는 안나를 말리며 타이르는 장면에서 이런 모습이 잘 부각된다. 그러나 차분하고 억눌려 있긴 하지만 엘사 역시도 안나처럼 장난스럽고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다. 파티에서 안나를 위즐턴 공작의 댄스 파트너로 만들고 장난스럽게 웃거나 대화를 나눌 때 엘사의 모습은 그 옛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안나에게 익숙한 언니의 모습이다. Let It Go를 부르며 13년만에 해방감을 느낄때의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표정 역시도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13년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죽이며 살아온 탓에 그 부작용 역시 지니고 있다. 영화 중반에 위즐튼 공작의 부하들이 엘사를 죽이려고 활을 쏠 때 잘 드러나는데, 자신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엘사가 한 번 분노하자 둘을 강하게 몰아 붙이고 특히 그 중 한 명을 발코니로 밀어내는 장면에서는 한스 왕자가 조금만 늦게 왔어도 그가 떨어져 죽는 상황이었다. 한스가 소리치자 그때서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려 했는지를 깨닫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때의 엘사는 공포와 분노에 이성을 잃어 정말로 사람을 죽이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전투 장면은 엘사가 그 동안 억누르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녀가 그 감정들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 역시 보여주고 있다. 화 안내던 사람이 화내면 더 무섭다가 어떤 뜻인지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한스를 크리스토프가 복수하려고 하자 그것을 말리고 자신이 한 대 때리는 것으로 마무리 지은 안나와 대비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본의 아니게 동생을 외면하긴 했지만 엘사 역시도 동생 안나를 사랑하며 그녀를 지키고 싶어한다. 동생 안나가 성으로 찾아오자 너라도 가서 햇살을 즐기고 문을 열고 살라며 애써 동생을 돌려보내려 하고 내곁에 있으면 넌 안전하지 못 할 거라며 걱정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등 언니로서 여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Let It Go에서 자신의 능력을 처음으로 대방출하면서 제일 먼저 만든 것이 여동생과 어렸을 때 만들던 추억의 눈사람 올라프였다는 걸 떠올리면 알기 쉽다. 참고로 작중에서 올라프는 엘사의 여동생을 사랑하고 언제나 지켜주려는 심리가 반영되어 만들어진 존재라서 안나에게 매우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스포일러2]
2. 외부 세계와의 단절
아름다우면서도 위험한 마법을 타고났지만 엘사는 기본적으로 선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아가씨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의 타고난 기질인 마법을 감춰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Let It Go'에서 드러나듯 엘사는 어린 시절 내내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문제 없는 완벽한 여성(Good girl)' 을 연기하였다. 마법의 힘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제어될 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 여겨졌기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통해 사회 속에 존재하려 한 것이다.하지만 엘사가 가진 기질에 대한 구속은 성공하지 못했으며, 결국 아렌델에서 도망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살지 않것을 결의하고 이에서 비롯되는 자유를 느끼게 되지만, 자신이 아렌델의 혹한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전해듣곤 그 문제로부터 다시 한 번 회피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가진 문제와, 그에서 파생된 사안에 대해 도피적인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 보인다. 자신이 가진 내면의 문제에 대해서는 주체적인 결론을 얻지만, 결국 내용 진행중에는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수동적인 역할을 벗어나지 못한다.문제를 방관하는 그녀의 태도 역시 비판점이 되는데 도피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나로부터 전해듣고도 결국 그녀가 선택한 것이 도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주위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 하는 등의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그녀가 선한 마음을 타고난 인물이기 때문이다. 엘사가 자신의 능력에 두려움을 갖게된 최초의 원인이 바로 그녀의 능력이 의도와는 달리 동생인 안나를 다치게 했기 때문이었던 영향으로 작중 엘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자기 자신(의 능력)이다.
그녀가 외부 세계를 회피하며 단절하려 하는 것은 엘사 자신의 도피임과 동시에 위험한 존재인 자신을 격리시킴으로써 아렌델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위험을 차단하는 행위이기도 한 것. 자신을 두려워하는 백성들과 괴물이라 부르며 병사들을 시켜 자신을 잡으려는 위즐턴 공작을 직면할때, 안나가 궁전으로 찾아왔을 때 두 경우 모두 엘사는 자신에게서만 떨어지면 사람들은 안전할 것이라며 부르짖는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하는 의도는 그들을 안전을 보호하려는 엘사의 선한 마음이 담겨있다는 것.
또한 그녀는 대관식을 거쳐 정식으로 왕위를 승계받아 여왕이 되지만, 마법의 힘을 가졌다는 것을 감추는 선택을 한다. 이전까지 자신을 구속해온 사회적 억압을 자신의 지위를 통해 탈피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을 스스로 구속하고 있다는 소리다. [3] 그녀가 위선자였거나 비뚤어졌다면 왕위에 오른 뒤 고민 없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겠지만, 세상에서 유일한 문제는 해결책 없는 마법을 가진 자신뿐이므로 영원히 홀로 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안나와 엘사 둘 다 이 마법을 통제할 방법을 모르는 상황에서 엘사의 도피는 자기 자신과 사회 양자를 모두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던 셈이다. 그것이 결국 자신과 외부의 단절을 불러오게 되었지만.
다만 텀블러 등지에서는 엘사가 보이는 결점을 수동적 여성성으로 간주하여 비판하는 시각도 있는데, 엘사의 캐릭터적 성격을 꼭 여성성과 연관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다. '활발하지 않은' 캐릭터 엘사는 '잘못되고 모자라면서 구시대적인 공주'가 아니라 그저 소극적인 성격의 캐릭터일 뿐이다. '활발함' 은 남성적인 성격이 아니며 '차분함' 은 여성적인 성격이 아닌 것처럼. [4]
결국 종래에는 안나를 통해 해답을 얻은 엘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대로 살 것을 결의했던 얼음성에서의 복장을 그대로 유지하며, 이전까지 저주라 불렀던 마법을 통해 사람들과 어울린다. 이는 곧 이야기상에서 그녀가 보였던 수동성과 소극성을 뛰어넘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로 거듭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 자신의 정체성 자각
마음의 감옥 속에 스스로를 유폐하다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이 곧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맘껏 발현하면서 결국은 행복을 찾는 이야기. 그런 면에서 엘사는 큰 강점을 가진다.
- 영화는 수다다 겨울왕국 中, 영화평론가 이동진
- 영화는 수다다 겨울왕국 中, 영화평론가 이동진
겨울왕국은 디즈니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두 명의 프린세스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그에 따라 극중 엘사와 안나는 주인공으로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안나는 극을 이끌어가는 진행자이며 엘사는 극의 목적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에 해당한다. 이는 어린 시절 엘사가 눈밭을 만들고, 그 자리에서 안나가 구르고 놀던 모습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두 캐릭터는 각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받아들이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완성시킨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엘사의 독특한 특성이 바로 자아정체성의 자각이다. 엘사는 이전까지 사랑하는 동생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하던 비밀이 최악의 방법으로 드러나자, 홀로 살 것을 결의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심한다. 'Let It Go' 이전까지의 그녀는 자신이 가진 마법의 힘을 약점으로 생각했던 반면, 이후의 엘사는 마법의 힘으로 자신이 거주하는 성을 짓고 자신의 복장을 변화시킨다. 이는 그녀의 정체성 확립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Let It Go'는 엘사가 정체성을 자각하며 느끼는 슬픔에서 기쁨, 후련함까지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작곡가 크리스틴은 대중이 'Let It Go' 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모든 면을 받아들인 자신만의 자유 때문"이라 답하며, 대중이 자신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픈 열망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했다. #
하지만 이러한 엘사의 정체성 자각은 이해자의 부재로 한계를 겪는다. 진정한 자신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동생에게 다가가고 싶은 자신을 부정하는 모순을 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안나는 엘사에 대한 이해자이자 그녀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엘사는 자신의 소극성을 넘어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의 주체가 되어 극을 완성한다. 이러한 엘사의 정체성 확립은 그녀가 주체적인 존재로 거듭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다. 엘사가 이야기에서 보인 소극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주체적인 존재로 보는 이유는 그녀가 이야기 내내 주체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주체적인 존재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정신적 성장과 고뇌를 마친 2편에서는 훨씬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나서는 모습을 보인다.
[스포일러1] 2편에서는 먼저 주도적으로 일을 이끄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마법의 숲에 혼자 가려고 한다거나, 또는 아토할란으로 홀로 가려고 한다거나. 물론 둘다 동생 안나를 다치게 하고싶지 않아서 홀로 가려고 했던 것이지만..[스포일러2] 1편이든 2편이든 둘다 동생을 다치게 하고싶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데, 1편에선 불안정한 자신의 마법으로부터, 2편에선 자신과 함께 모험에 나서다 안좋은 일이 생길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쪽이든 엘사가 안나를 아끼고 또 보호하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3] 극 중에서 엘사의 능력을 결점으로 판단한 최초의 주체가 그녀의 부모이며, 그들은 곧 사회적인 억압을 상징한다.이러한 억압은 그녀가 국가의 지도자인 여왕이 됨으로써 필연적으로 그 정도가 떨어지게 된다.[4] 엘사가 성을 떠난 시점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던 캐릭터는 '여성' 인 안나였다. 특히 크리스토프는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자각한 이후에도 그녀에게 돌아가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