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14:14:10

양지의 아니에스

1. 개요2. 소설 내용
2.1. 제 1회 -크림색 소녀-2.2. 제 2회 -이튼 통신사에서-2.3. 제 3화 -금색의 눈동자-2.4. 제 4회 -정의의 외침-2.5. 제 5회 -내리막길에 바람은 분다-2.6. 제 6회 -균열-2.7. 제 7회 -에드윈의 정의-2.8. 제 8회 -22장의 운명 I-2.9. 제 9회 -22장의 운명 II-2.10. 제 10회 -여교황의 길-2.11. 제 11회 -이젠 외칠 수 밖에 없다-2.12. 제 12회 -언덕 위의 침식-2.13. 제 13회 -마법사-2.14. 제 14회 -양지의 아니에스-
3. 관련 문서

1. 개요

양지의 아니에스는 팔콤비디오 게임 영웅전설 벽의 궤적에 등장하는 소설이다.

2. 소설 내용

2.1. 제 1회 -크림색 소녀-

에드윈 아놀드가 그 소녀에게 이길 수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기억하고 있는 한도 내에서는 단 한 번도.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고, 이래 봬도 그럭저럭 머리도 잘 돌아간다……고 생각했으나, 처음 만난 순간부터 오늘까지, 찍 소리도 못 할 정도로 내리 지기만 하고 있다.
그래, 2년 전 그 날부터 계속.
대시계가 재깍재깍 울며, 세월이 묻어나는 그 찻집에 지금도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19세가 된 에드윈은, 그런 사실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항상 앉는 카운터 석에서 끙끙 앓고 있었다.
'아니 아니, 완벽하잖아 오늘 기사는.' 이미 세 차례나 검토를 끝냈고, 취재해 온 코멘트도 제대로 집어넣었다. 펜으로 서걱서걱, 하고 밑줄을 그어 가며, 에드윈은 재차 신음을 흘렸다.
오후의 편집 회의를 통과하면, 드디어 자신이 쓴 문장이 지면에 게재되는 것이다. 오늘에야말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만전을 좀 기해 봐야겠군…….
에드윈은 카운터 앞을 조심스레 올려다보았다.
"……아니에스, 어떻게 생각해?"
"글쎄다, 모르지."
거하게 하품을 하며, 크림색 머리카락이 스쳐간다. 아니에스의 2년 전과 전혀 다를 것 없는 그 곱슬머리는 움직임에 맞춰 돌돌 말려서, 바람도 없는데도 마치 춤추고 있는 듯하다.
아직 영업시간이 안 됐는데 말야─, 어째서 이 사람은 아침 댓바람부터 쳐들어오는 건지.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며, 손에 든 유리잔의 물기를 재빠르게 닦아낸 뒤 찬장에 돌려놓는다.
"그냥 좀 읽어 줘! ……아니, 부탁이니 제발 읽어 주세요. 알고 있잖아? 신참 기자인 내가 칼럼을 따낼 찬스라니까!!"
에드윈은 척 하고 양손을 모은 채 머리를 숙였다.
"………………………………………"
에드윈은 두 살 연하인 자신에게도 체면 차리지 않고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에스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처한 거라니까, 정말. 설거지가 끝난 컵을 또 하나 집어들며, 아니에스는 힐끗 시선을 주며 말했다.
"오자가 세 군데나 있어. 와, 깜짝 놀랐는걸. 게다가 날짜가 잘못된 거 아냐?"
그렇군. 에드윈은 즉각 빨간 펜으로 바꿔들고 체크를 시작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뭐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난 이 칼럼에 목숨을 걸었다구!"
"요리 칼럼인데 말야."
"요리 칼럼이라도 기사는 기사라구."
"뭐 그렇겠지. ……하지만, 에드에게 기자 일은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해."
그도 그럴 것이 기사 쓰는 것도 늦고, 주의력 부족에 둔감하기까지 하잖아. 내가 특훈시켜 준 덕분에 통신사 시험에 합격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렇게 해서 기자를 계속한다는 건 무리가 아닐까?
아니에스는 오래 전부터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공부를 잘 못하는 에드가, 어째서 기자 같은 걸 지망했던 것일까.
그러나 곧바로 후회했다. 에드가 원고를 추스리고는 히죽 웃으며 일어섰기 때문이다.
"흥…… 정의의 기자라고 하면 멋지잖냐!!"
낭보를 기대하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기 무섭게, 에드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그저 문에 걸어둔 방울이 짜랑짜랑 울릴 뿐이었다.
네이네이, 그럴 줄 알았어.
어깨를 으쓱하는 아니에스의 곁에서, 자고 있던 검은 고양이가 냐옹─, 하고 울음소리를 냈다.

2.2. 제 2회 -이튼 통신사에서-

「앵커 빌」이라면, 칼바드 공화국 내에서도 상당한 대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수도만큼은 아니라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기업들이 입주하고, 또 산골짜기를 향해 질서 있게 늘어선 하얀 건물들과, 큰 강에 접해 있는 항구와 시장들이 이 도시를 커 보이게 한다.
그 시장의 한켠을 지나온 에드윈은, 자전거 페달을 기세 좋게 밟으며 선셋 거리의 교차로를 꺾어 들어갔다. 그 앞에 작은 지역지를 출간하는 「이튼 통신사」가 있다.
절반에 가까운 기자들이 자리에서 일어서, 무언가를 시끄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에드윈이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원고를 팡팡 두들기는 베테랑 기자 로이스, 딱 봐도 밤을 샌 듯한 얼굴에 통신기를 쥐고 있는 것은 경제면을 담당하는 클레프다.
데스크──말하자면 편집장──인 찬은 까탈스러운 표정으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새어나오는 말소리로 보건대, 어딘가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취재에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곁눈질하며 재빨리 자신의 자리로 흘러들어온 에드윈은, 애용하는 닳아빠진 가방을 손으로 끌어당기곤 빙긋 웃었다.
"기분 좋아 보이는구만, 지각한 주제에 말이야."
흰머리가 눈에 띄기 시작한 얼굴을 불쑥 들이밀며, 시끄러운 말소리 중에서도 알아듣기 쉬운 목소리로 나무랐다. 브랜든은 문화면 팀장이자 에드윈의 감독 역할도 맡고 있는 중년 아저씨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의 코앞에 원고를 들이미는 에드윈.
"오늘 기사는 완벽합니다. 편집 회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또다시 오자가 나오지 않기를 기도해 주마."
브랜든은 넌 몇 번을 혼이 나야 속이 후련하겠냐, 라고 내뱉었다.
그 말을 듣고 에드윈은 또다시 히죽 웃었다. '오늘은 괜찮을 겁니다, 정말로요!'
그 때 또다른 통신기가 시끄럽게 울리며,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여성 기자인 칼리가 받았다. 이튼 통신사에는 네 대의 통신기가 있다──
"엣……?"
칼리의 미간이 성대하게 찌푸려졌다.
"……오늘 아침 5시로군요. ……네……네………"
일어선 칼리는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것을 신중히, 그러면서도 또렷하게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갑자기 역 플랫폼처럼 소란스럽던 편집부는 조용해졌다. 깨지는 물건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통신기를 내려놓은 칼리는 찬에게 시선을 던졌다.
"편집장님, 베버하르트 씨가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정치부~, 집합~!" 누군가가 크게 양손을 마주치며, '네엡~' 하고 목소리를 모아 대답한 기자들이 덜컥거리며 일어선가. '그가 죽었단 말인가', '우리 고장 사람인데 말이야.' 그런 중얼거림과 함께, 편집장의 자리 앞에는 순식간에 열 명을 넘는 인파가 만들어졌다.
"누구죠, 베버하르트 씨가?"
"'누구죠' 라니, 그 사람 거물이잖아."
'앞에 '대' 자가 붙는 문화인사라구, 일반상식도 없는 거냐 너는' 등등, 모여든 정치부 녀석들의 걸걸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저거 특집기사 나오겠군' 이라고 중얼거리며, 브랜든은 수중의 원고를 에드윈에게 거칠게 되돌려주었다.
"오후 회의는 중지다, 에드. 너는 취재 보조로 다녀와라."
"에엑……!! 어째서요!?"
"어째서고 자시고."
'팀장의 명령은 절대적인 거라구'. 그의 찌푸려진 면상을 보고 무심결에 자리에서 일어선 에드윈은, 어쩐지 땅이 흔들린 듯한 느낌이 들어 휘청거렸다.
……아니, 모두들 휘청거렸다. 창문 밖에서는 무언가의 금속이 짜부러지는 소리와, 질량이 거대한 물체가 질질 끌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까득까득까득까득, 쿠구궁.
그리고 쿵, 하고 창문의 유리를 울리며, 전복된 도력버스가 화염을 뿜어내는 것이 부였다. 교통사고다……. 순간적으로 닳아빠진 가방에 손을 뻗은 에드윈은, 이윽고 전력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그저 기자 정신이 발휘되었던 것은 아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인파 속에 아니에스의 모습이 보인 듯했기 때문이다.

2.3. 제 3화 -금색의 눈동자-

"……아니에슷!!"
뛰쳐나간 에드윈은 한 블럭 앞을 목표로 전력질주했다.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다. 게다가 시력도 좋다. 눈 앞의 광경 속에, 분명 아니에스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 이쪽을 보고, 에드윈이 패닉 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 부딪치는 동안 사라져 버렸다. 어…… 어째서 도망치는 거야!?
폭발음과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가 난 뒤, 쓰러진 차체가 또다시 불을 뿜어냈다.
"젠장!!" 그제서야 도착한 에드윈은 코트를 벗어 불길을 두드리며 문을 비집어 열려고 했다. 안에서는 비명소리와 구조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창문 바깥으로는 버스기사의 손이 늘어져 있었다.
'……원고가 채택되지 못해도 사실 상관없어.' 에드윈은 머릿속 어딘가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정의의 기자를 얕보지 말라고!!
"카게마루, 오늘은 물건을 사러 나갈 거야."
그 날 아침, 에드윈을 보낸 뒤 아니에스는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간밤에 중요한 일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삼촌의 생신이니까.
이 찻집의 점장인 아니에스의 삼촌은 올해로 마흔이 된다. 에드의 생일이라면 '귀찮다' 라는 한 마디로 정리해 버릴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는 하나, 작년에도, 또 그 전에도 나중에 무언가를 선물했던 것 같다) 신세를 지고 있는 삼촌께는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을 따라마신 유리잔을 놓고, 아니에스는 카운터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카게마루를 재차 나무랐다.
"이 게으름뱅이, 듣고 있니?"
검은 고양이는 못생긴 얼굴을 찡그리며 그저 그르릉거릴 뿐이었다. 하여튼 참……
가게 안쪽에서 맥주병을 옮기던 삼촌에게 대충 양해를 구하고 나서, 아니에스는 기숙사로 쓰고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오늘은 움직이기 편한 옷이 좋겠는걸.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곧바로 또 나왔다. 아니에스는 벌써 가벼운 탱크탑 차림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복도에 걸어 둔, 애용하는 니트 모자를 눌러쓰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그러자, 카게마루가 이쪽을 지그시 보고 있었다. '아무도 안 보고 있으니까 딱히 상관없잖아.' 아니에스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어깨를 움츠리며 걷기 시작했다. "간다, 카게마루!"
검은 고양이는 훌쩍 점프하여, 니트 모자 위에 착지했다. 그 통에, 크림색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삐져나온다.
"정말, 너란 녀석은……!"
허리까지 오는 아니에스의 머리카락은, 어째서인지 틈만 나면 깡총깡총 튄다.
당황해서 이곳저곳을 눌러 보았지만, 춤추기 시작한 머리카락은 역시나 정리될 기미가 없었다.

아니에스의 엄마는, 10년 전 어느 날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아빠는 온후한 사람으로 15살이 될 때까지는 함께 살고 있었지만, 역시 엄마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찻집을 연 삼촌에게 아니에스를 맡기고, 엄마를 찾으러 가 버린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아니에스도 두 사람의 각각의 심경을 아플 정도로 잘 이해할 수 있다. 분명 엄마도 아빠를 죽을 만큼 사랑했을 것이다.
"하아, 어떻게 하지……"
항구에 인접해 있는 시장으로 오면 가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왔지만, 무엇을 살지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삼촌을 좀 떠볼 걸 그랬어……' 아니에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력버스의 거대한 몸뚱이가 날아올 때까지는.
갑자기 차선을 이탈한 그 대형 버스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분리대를 넘어 이쪽──즉 반대편 차선──을 달리던 트럭의 배때기로 파고 들어왔다. 선명한 초록색으로 칠해진 차체에 햇빛이 따갑게 반사되고,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간 타이어는 빨리도 하늘을 향해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운전기사, 이미 죽어 있어……
허공으로 뜨는 버스를 보며, 아니에스는 막연히 그리 생각했다.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이상 없을 만큼 냉정했다. 이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지면에 떨어질 무렵에는, 맨 앞줄에 앉은 신사도 창가에 앉은 임산부도, 모두 죽고 말겠지……
"──카게마루." 그 목소리에, 카게마루가 금색의 눈을 떴다. 아니에스도 눈을 크게 떴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앞다투어 도망치는 중에, 네 개의 금색 눈동자가 그저 그 뒤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2.4. 제 4회 -정의의 외침-

에드윈은 승객을 하나하나 구해내고 있었다. 버스 차체가 시장 한켠에 쳐박혔던 덕분에 현장은 패닉 상태였다. 게다가 부딪친 트럭 쪽이, 무언가 인화하기 쉬운 물질을 싣고 있었던 모양이다. 살갗을 태우는 열풍과 연기가 밀어닥쳐 왔기에, 에드윈은 심하게 기침을 했다. 그러나, 질까 보냐. 에드윈은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에는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단 말이다!!
"살려 줘……"
"괜찮습니다, 꽉 잡으세요! 좁긴 하지만 끌어올릴 테니까요!"
"안돼…… 나한테 갓난아기가 있어……"
"뭐, 뭐라구요!?" 에드윈은 무심결에 한심한 소리를 흘렸다. '능력 밖이잖아, 그런 건! 19살인 내게 어떻게 하라는 거야!!'
마음 속으로 그리 부르짖곤, 겉으로는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필사적으로 달래며, 에드윈은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고에 말려들어 충돌한 도력차가 몇 대나 정차되어 있었다. 구해낸 승객은, 업무를 팽개치고 달려온 브랜든 쪽이 간호하고 있다. 어딘가 멀리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구조대가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에드, 일단 내려와!" 브랜든이 말했다.
"트럭에 적하된 화물은 화약이다, 폭발한다구!"
"못 내려가!"
그렇게 답한 순간, 갑자기 성질이 뻗치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런 사고가 일어난 거냐. 어째서 모두들 좀더 거들어 주지 않는 거냐!!'
"……대체 어째서 도망친 거야, 아니에스……"
그 때 아니에스는 그를 보고 놀라서 도망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딱히 화가 났던 건 아니었다. 자기를 향해 버스가 돌진해 오면, 역시 평범한 여자라면 도망치겠지. 하지만 어쩐지 괜시리 화가 나는 것이었다.
……어째서 도망친 거야, 아니에스!!
"누가 도망쳤다는 거야, 바보!" 촤앗, 하고 차가운 물이 에드윈의 전신을 뒤덮었다. 아니에스다.
언제나 푸른 눈동자를 빛내던 아니에스가, 폴리에틸렌 양동이를 들고 숨을 할딱이고 있다. ……그리고 분명 생선가게에서 빌려 온 양동이임에 틀림없었다. 비린내가 진동한다.
"꼬맹이, 열심히 잘 해줬구만, 뒤는 맡겨 두라구!"
"자네들, 이쪽일세 이쪽!"
아니에스의 뒤쪽에서 양동이를 끌어안은 어부니 어물전 직원이니 하는 사람들이 다가와 차례차례 물을 끼얹어 나갔다. 그렇군, '항구가 있었구나……' 그 사실을 떠올리는 에드윈 앞에서, 아니에스는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다음은 저쪽', '다음은 도끼를 빌려 와' 등의 지시를 내리며 돌아다닌다.
……정말, 이 녀석은.
"에드……! 거기서 비켜!"
'그 사람 임산부잖아?' 아니에스는 차체 위로 기어올라와 여성의 손을 잡고 용기를 북돋웠다.
"……에드가 오지 않았다면 분명 간단했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소리야 그게!?"
에드윈이 그리 외치자, 그 크림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는 그제서야 어쩐지 안도한 듯 미소지었다. '아무것도 아냐. ……에드는, 정말로 둔감하구나."
해가 저문 뒤의 조용한 점내에, 카랑카랑, 하고 쉐이커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삼촌의 취향인 관계로 이 찻집은 밤에는 술도 취급하고 있다. 덜컹, 하고 그 정적을 난폭하게 헤집고 들어온 것은 에드윈이겠거니, 하고 그쪽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아니에스는 생각했다.
"……그래서, 어땠어?"
"응, 모두들 생명에 지장은 없다던데!"
에드윈은 경찰과 병원 측의 이야기를 간추려서 전하고, 이미 사망한 버스기사 이외에는 가벼운 화상과 찰과상뿐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대형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그리고 신속한 구조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고의 원인 말인데……"
"버스기사가 모종의 원인으로 죽어 버린 탓에, 버스가 폭주했던 거지?"
"어……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냣!!"
아니에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도력 라디오의 볼륨을 키웠다. 아나운서가 이번 교통사고의 개요와 원인을 전하고 있었다.
"있잖아 에드, 넌 역시 기자 일에는 맞지 않는 게 아닐까.
솔직히 정의의 편이 되는 게 적성에 맞을 거야, 분명."
흠, 하고 손을 쓱쓱 문지르며 신음하던 에드윈은,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버번을 내 와!"
네이네이, 아이스티 말이지. 술도 약한 주제에 허세 부리지 말라구, 에드.
그러나…… 애초에 버스기사는 어째서 죽고 만 걸까. 라디오의 아나운서가 이번에는 다른 교통사고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최근에 사고가 많은 듯한 느낌이 드는걸, 하고 생각하며 아니에스는 새로운 유리잔을 손에 들었다.

2.5. 제 5회 -내리막길에 바람은 분다-

달이 바뀌고 그 해 7월 4일, 에드윈 · 아놀드는 기념할 만한 인생 첫 회견 취재에 임하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물론 정치부 취재의 보조다. 지난 달에 급사한 거물 문화인사, 베버하르트 씨의 유산을 둘러싼 문제가 마찰을 빚고 있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이지, 하나밖에 없는 양자는 그 후에 바로 수난사고를 당해 죽고 말았어."
에드윈은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말했다. 슬슬 크롬웰 거리의 오르막길이다. '오늘에야말로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올라가 주지' 라고 뻔한 문구로 기세등등해 보이는 에드윈.
"……그래서, 지금은 베버하르트의 친구와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상속을 주장하고 있고…… 하지만 양자가 죽어버린 건, 그 두 사람의, 음모, 라는, 소문도, 있어……엇!"
"흐응~, 뻔한 얘기인걸."
"그래서, 어때. ……역시 음모설은 사실인 거야!?"
"그런 걸 내가 알 리 없잖아." 아니에스는 천천히 나아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페달의 진동이 보온팩을 끌어안고 짐칸에 살짝 걸터앉은 아니에스에게도 전해져 온다. 이튼 통신사에는 에드의 상사인 브랜든을 시작으로 커피광들이 많아서, 아니에스는 한 주에 한 차례, 삼촌이 만든 진한 커피를 전하러 가곤 했다.
거의 취미에 가까운 배달 서비스였지만, 이런 일은 싫어하지 않는다. ……에드가 막무가내로 바래다준다고 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그러고 보니, 에드? 그 요리 칼럼, 아직 노리고 있는 거야?"
"그럼, ……다음 달이 되겠지만, 한다고 하니까 말야, ……지금 새로운 기사를 쓰고 있거든, 역시 계절에 맞는 메뉴가 아니면 말이지."
정의의 기자란 건, 처음에는 요리 칼럼에서부터 시작하는 거구나. 정말 에드윈과 이러고 있으면 어디까지고 평화롭다. 바람을 타고 찰랑찰랑 나부끼는 머리에 신경을 쏟고 있자니, 머리 위에서 졸린 눈을 한 카게마루가 재차 냐옹, 하고 울었다.
"쯧쯧쯧…… 뭘 모르시는군." 잘 생각해 보라구, 요리 칼럼도 어엿한 칼럼이라구.
"그도 그럴 것이, 내 기사가 사람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거라구……?
……그래서 누군가가 만족할 수 있다면……!"
혼신의 힘을 다해 페달을 밟으며, 에드는 외쳤다.
"그것도옷, 훌륭한 정의잖냐……앗!!"
자전거가 드디어 언덕을 넘었다. 중력에 이끌려, 이번에는 멋대로 앞으로, 앞으로 미끄러져 나아간다. 아니에스가 얼결에 흘린 '엣' 이라는 목소리는 듣지 못했는지, 에드는 활기찬 환성과 함께 스피드를 실었다. 언덕길을 달리는 바람을 타고, 어디까지나 힘차게.
……이 청량감은 분명 분발한 에드에 대한 상일 것이다. 아니에스는 벗겨지려 하는 니트 모자를 누르며 생각했다.
'맞아, 의외 같은 게 아냐. 에드는 언제나 눈 앞에 닥친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언제나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지. ……이쪽이 분하다고 느낄 정도로.
"……아까 얘기 말인데."
"…………응? 뭐라고!?"
"베버하르트 씨의 유산 이야기 말야.
누군가가 제1상속인을 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
아니에스는 바람에 지지 않기 위해 목청을 돋웠다.
"절대로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그런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지!"
"그렇구나." 라고,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에드윈이었다.
"좋앗, 오늘 회견에서 질문해 보겠어!!"
"……정말, 그러니까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거냐고……"
에드윈은 둔하고 단순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안심하고 사귈 수 있는 친구다. 에드가 이쪽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니에스는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오늘 에드윈은, 한 층 더 성장하겠지. 또 덜떨어진 짓을 할지도 모르지만, 올곧게 목표를 향해서.
나도 따라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니에슷!!"
"……왜 그래."
"무슨 일이 생기면 말야, 날 불러야 돼?
뭐니뭐니해도 정의의 기자니까 말야!"
푸른 하늘에 에드윈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2.6. 제 6회 -균열-

아니에스를 통신사로 보내주고 난 뒤, 선배기자들을 따라간 에드윈은 앵커빌에서 가장 큰 회관에 도착했다. 오늘 여기서 베버하르트씨의 막대한 유산에 대한 회견이 있을 것이다.
"자, 취재를 하자고! 자리를 맡아놔"
라는 말을 듣고 회견장으로 향하는 에드윈이었지만, 지금 그는 '낯선 복도를 맴돌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어디야, 여긴 회견실이 어딘거야?'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 적당한 무을 열고 들어가 봤지만 거기는 작은 창고거나 다른 복고이거나 했다. 아니에스가 본다면 [하여간 정말]이라며 뚜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에드윈은 항상 진지했다.
어디선가 회견 시작 20분 전을 알리는 방송이 들려왔다.

'...어라, 위험하지 않나 이거'
이제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한 에드윈이 금테로 [대기실 105]라고 적힌 문을 힘차게 열자, 그곳에는 품위있는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있는 30대 후반의 남자가 있었다.
"이런, 회견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는 걸로 아는데?"
에드윈은 알아차렸다. 이 남자, 사진이 편집부에 분명 붙여져 있던 사람이야. 베버하르트의 친구지만, 관련 재단 이사장은 아니고 생전부터 재산관리를 해오다가 지금은 그 유산을 어느쪽에 넘기면 괞찮을지 고민하고 있는 [중심에 선 남자]. 재산관리인 학스 몬테뉴였다!

에드윈은 회견 준비에 대해 묻는 몬테뉴를 완전히 무시하며 말을 꺼냈다.

"저는 이튼 통신의 에드윈이라고 합니다. 오늘 회견 내용을 취재하도 되겠습니까1?" 이것은 나만의 특종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몰지각한 제안은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었지만 역시나 에드윈은 이번에도 진심이었다.
"----씨의 유산 분배 문제는 그 둘이 정해야겠지"

나는 세무사지 법률가가 아니야. 반쯤 동정심으로 취재에 응해준 몬테뉴는 지나치게 푹신한 검은 가죽 의자에 몸을 맡기곤 그리 대답했다. 기본은 절반씩 나누게 되어 있어. 하지만 토지와 미술품도 있고 그 두 사람이 쉽게 물러설 거라 생각하지 않네.
"유산은 엄청 많지요? 한쪽에서 독점하려 하지 않나요?"
"노코멘트. 나는 모르는 일일세."
"음…… 그럼, 원 상속인인 베버하르트 씨의 양자가 지난달 사망한 사건 관련해서 알고 계시는 것이라도……?
"………………………………………………"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지금까지 유창하게 말을 하던 몬테뉴는 석상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아차, 심기를 건드린 건가? 이런 찌라시 수준의 질문을 하다니! 에드윈이 겨우 자신의 무신경함을 깨달았을 때 몬테뉴의 오른손이 살짝 움직였다. 중지로 탁탁 책상을 두드리더니 이번에는 검지로 그의 관자놀이를 고상하게 누른다. ……에드윈은 그 행동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은 솔직히 털어놓는 이야기이니 오프 더 레코드로 부탁하네……씨의 유산 따위에는 관심 없네"
몬테뉴는 말했다. 확실히 베버하르트 씨의 유산은 거액이지만 죽여서까지 손에 넣을 가치가 있다고는 난 생각하지 않아.
"자넨 알고 있나?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인지를 넘어선 더 굉장한 가치도 있다는걸. 그래, 예를 들면 [마법사 일족]같은"

기자들이 취재하러 나가 버린 편집부는 조용했다. 드문드문 남은 사람들에게 커피를 리필해 주며 아니에스는 흘끗 실내로 눈을 돌렸다. 책상에 있는 스다 만 원고와 벽에 붙어있는 수많은 메모지 ──오타 투성이──를 보고 아니에스 머릿 속에는 미래의 이튼 통신이 대략 그려졌다. …… 에드의 차례는 당분간 없을 것 같네. 게다가 또 어디선가 사고가 났나 보다. 역시 최근에 사고가 많은 것 같은 느낌인데……
문득 정면에 붙은 사진에 시선이 갔다.
"저, 찬 편집장님, 이 사람은……?"
외부인 출입금지인 편집부지만 잔소리꾼 편집장으로 통하는 찬도 아니에스를 나무란 적은 없었다. 찬은 슬쩍 한번 보고는 베버하르트 씨의 재산관리인이라고 말했다.
이틀 전 회견 사진인 듯 하다. 그 영리한 사업가 같은 남자에게서 아니에스는 불쾌한 직감을 느꼈다.
…… 이 남자는 나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내 정체를 알고 있을지도 몰라……

2.7. 제 7회 -에드윈의 정의-

몬테뉴의 이야기는 이랬다. 먼 옛날 성전에 기록된 창세 시대 인류에게는 [ruby(마법, ruby=아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힘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긴 세월이 지나면서 그 힘은 사라졌고 이제 사람들은 도력기 없이는 [ruby(마법, ruby=아츠)]을 사용할 수 없는 게 당연해졌다.
그 잃어버린 힘을 비밀리에 이어가는 일족…… 그것이 [마법사]였다. 그들은 지금도 확실히 존재하며 인간 사회에 동화되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못 믿겠는가? 하긴 무리도 아니지…… 실은 나는 이 마을에도 한 명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네"
"후후…… 의외로 자네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지?"
"맞아, 만일 자네 생각대로 베버하르트 씨의 양자가 감쪽같이 살해당했다면…… 그것은 마법사의 짓일지도 몰라"
몬테뉴는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는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비록 육친이라 할지라도. 그렇지 않으면 이번엔 나나 자네가 목숨을 잃게 되겠지.

에드윈은 어린 시절부터 개구쟁이에 단순한 아이였다. 확실히 14, 15살 무렵으로 생각되는데…… 한 지역의 뉴스가 보도되던 중에 한 기자가 거물 정치인의 악행을 폭로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을 괴롭혀 사리사욕을 채우던 정치인은 완전히 보기 좋게 쓰러졌다. 그리고 그 기자는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불합리한 것과 납득되지 않는 일을 추궁해 납득되도록 만드는 것이 기자의 일입니다, 라고.
그날부터 주선의 위선이나 애매한 일을 밝히는 것이 에드의 정의가 되었다. ……마법사라고?
그런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이 정말 있다면 내가 이 손으로 밝혀내겠어!

"……에드? 없어?" 여진히 소란스러운 편집부에 살짝 고개를 내밀고 아니에스는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에드는 요즘 많이 바쁜 듯 가게에도 전혀 오지 않는다. 원고 검토도 부탁하지 않고…… 대체 뭐하고 다니는 거지?
"아, 아아……뭐야, 왔어" 자기 자리에서 글을 쓰고 있던 에드는 재빨리 책상 위에 임시 원고 ──항상 취재 보고서의 일환으로 쓰는 것이다──를 정리하고 돌아섰다. 언뜻 보인 내용은 아무래도 예의 베버하르트 씨 유산의 전말인 것 같았다. 이제야 분배가 정해져 회겨에서는 이러쿵저러쿵, 재산관리인 몬테뉴 씨의 코멘트가 어떤지, 리본을 단 여자아이의 이야기, 이사장의 경력을 조금 더 깔끔하게 정리해 놓을 것 by 브랜든.
오타를 2개나 발견했지만 아니에스는 잠자코 있기로 했다. 왠지 조금 서먹서먹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고 다음에 가게에 왔을 때 놀림거리로 써먹을 생각이었다.
"배달 온 김에 점심 가져왔어. ……아직이지?"
"아, 살았다. 땡큐 아니에스, 나이스 타이밍이야!"
취재하러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빵 봉지를 낚아 챈 에드윈은 이미 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 기세……라기보다 어딘가 평소와 다른 언행에 에드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듯한 착각이 들어 아니에스는 순간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뭐지, 이 느낌. 브랜든과 칼리에게 난처한 시선을 보냈지만 사정을 알고 있을 두 사람은 어깨만 으쓱하고는 아니에스와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불안, 곤혹,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대체 뭐지?
에드는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2.8. 제 8회 -22장의 운명 I-

통신사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아니에스는 안절부절 못했다. ……에드윈이 이상해. 너무나도 단순하고 알기 쉬운 성격인데!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카운터를 닦고 컵과 스푼, 포크 세트를 다시 정리했지만 역시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손님은 한 명 근처에 사는 퍼듀 할아버지로 테이블 자리에서 삼촌과 대화하고 있다. 퍼듀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자 아니에스도 살짝 손을 들어 답했다.
"……카게마루는 아는 거 없어?" 카운터의 자기 자리 ──에드윈 자리의 왼쪽 앞──에서 졸기 시작한 카게마루에게 물어봤지만 졸린 듯한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카게마루가 알 리가 없지.
아니에스는 니트 모자로 손을 뻗다 멈췄다. 이제서 찾으로 간다 해도 분명 에드를 만날 수는 없어. 자전거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항상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스타일이지낳아. 대신 서랍을 열어 낡은 타로 카드를 꺼냈다. ……역시, 이걸 쓰자.

타로점과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힘만은 금지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아니에스는 가끔 단골 손님을 상대로 점을 봐주기도 했다. "맞췄어"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본래 힘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자기 일을 점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여러 가지 일을 안다는 것은 그 나름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하지만………… 아니에스는 타로를 묶었던 끈을 풀었다. 오늘 본 에드윈은 정말 이상했어, 진짜. 한 번 숨을 크게 내쉬고 가지런히 모은 손가락을 타로 위에 올렸다. 적어도 이걸로 무언인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신기하게도 감정이 차분해졌다.
"……언니!"
"응!?"
어느샌가 눈앞에 10살 정도의 귀여운 여자아이가 서있었다, 어머, 언제 들어왔지? 일단 타로에서 손을 떼고 빨간 리본을 단 소녀를 향해 아니에스는 무슨 일인지 물었다.
"언니, 점 치는 거야? 나도 봐줄 수 있어……?"
티세라는 소녀는 너무 궁금한 일이 있다고 했다. 아빠는 지금 중요한 일을 하고 있거든 아빠의 일이 잘될지 알려 줬으면 좋겠어. 티세는 조금 부끄럼쟁이인듯 머뭇거리며 이야기했다.
"음…………" 근처 사는 아이일까,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소녀의 부탁은 때마침 타이밍이 잘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위해 힘을 쓰는 것은 역시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점치는 김에 보는 거라면……
"……그럼, 오늘은 특별히. 티세의 부탁을 한 번만 들어줄게"
"와, 정말?"
"거짓말은 안해. 물론 내 타로도"

2.9. 제 9회 -22장의 운명 II-

티세라는 소녀는 보가보다 어린듯 카드의 의미를 하나하나 알고 싶어 했다. 카운터 자리에 나란히 앚아 티세에게 읽어주며 아니에스는 타로점을 봤다. 결과는…… 음, 나쁘지 않네.
"그러게 내가 보기에는…… 티세의 아버지 일은 대부분 잘되고 있는 것 같은데?"
분명 잘될 거야라며 아니에스는 웃어 보였다. 엄청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티세였지만 되려 이쪽이 고마웠다. 초조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문에 달린 방울을 딸랑딸랑 울리며 나서는 테세에게 아니에스는 끝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자, 에드의 일을 점쳐 볼까. 자리로 돌아온 아니에스는 신중히 타로를 골랐다. 손바닥에 조금 땀이 나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다. "상관없어"라고 아니에스는 중얼거렸다.
진지하게 점칠 때의 방법은 정해져 있었다. 강한 염원을 담아 1장만 뽑는다. 아니에스의 경우 이 방법이 가장 확실했다.
자 에드, 대체 뭘 하려는 거니……?
"……언니! 1장 떨어졌는데?"
"어랏……?"
어느새 옆에 티세가 와 있었다. 티세는 바닥에서 타로 1장을 집어 들었다. 고맙다며 그것을 받아든 아니에스는 굳어 버렸다.

DEATH. 사신의 카드.
심한 현기증을 느낀 아니에스는 소녀가 떠난 것도 알지 못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는 소리가 그쳤다. 왼손에 있던 타로들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한 장 한 장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것도 아니에스는 알지 못했다. 그저 뚫어지게 사신의 카드를 바라보았다.

쿵하는 심한 충격에 아니에스는 정신을 차렸다. ……카게마루? 카게마루가 머리 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 바람에 카드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 카게마루는 폴짝 카운터로 내려와 게슴츠레한 눈으로 아니에스를 바라봤다. 뭐 하냐. 그 눈은 그렇게 말했다.
"아, 알고 있어. 좀 놀란 거 뿐이야……"
떨어진 타로를 주우며 아니에스는 변명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삼촌도 퍼듀 할아버지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도 지금은 위험했다. 이제 그만하는 게 좋겠어. 이 일은 잊고, 빨리 일하러 가자.

……………하지만…………
아니에스는 DEATH를 카운터에 올려놓고 다시 1장의 타로를 뽑았다. 같은 일을 두 번 점칠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최근 일주일 동안 에드가 뒤쫓고 있는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그것을 점치기로 했다.
"……치지직……… 다음 뉴스입니다, 오늘 오후 1시 40분경 발생한 교통사고는………"
……도력 라디오가 저절로 커졌다. 점을 보는 힘이 너무 강했던 걸까. 휘청거림을 느끼며 타로를 확인하자 그것은 SUN의 역방향. 즉 [어둠]이었다……
아니에스도 최근 사고가 너무 잦다고 생각했었다. 즉 이것은 일련의 사고를 [어둠]과 관련된 무언가가 일으키고 있거 에드는 ──이유는 모르지만──그것을 알고 지금 혼자서 [어둠]에 발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라도……
"부냐~!" 카게마루가 졸린 얼굴로 나무랐다. 알았다고! 하지만 삼촌도 퍼듀 할아버지도 눈치 못챘어! 아니에스느 다시 1장 더 타로를 뽑으려다 그만두었다. 에드의 위치는 통신사에 문의하는 편이 빠를지도 모른다. 괘종시계 옆에 있는 통신기로 달려가 아니에스는 이튼 통신사로 전화했다.
"네, 이튼 통신사입니다."
"……아, 브랜든 씨. 죄송한데요……점심 전에 에드가 취재를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고 계시나요?"
"에드? 하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에드윈은 아침부터 얌전히 계속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번에야말로 아니에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에드가 자리에 있어?……그건 진짜 에드가 아니야!! 큰길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찌그러진 도력 스쿠터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남성 운전자는 지면에 떨어지기도 전에 죽은 것 같다. 그런데도 삼촌과 퍼듀 할아버지는 환담을 계속 나누었다. 어깨를 흔들어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아니에스는 세상이 기우뚱 기울어지는 느낌에 주저 앉으며 처음으로 이 거리에 무언가 무서운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어서야 해………
테이블 위에 DEATH 카드가 보였다. 아니에스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이제 그것뿐이었다.

2.10. 제 10회 -여교황의 길-

괘종시계가 두 번 울리기를 기다렸다. 아니에스는 살며시 방을 빠져 나왔다. 밖에서 들어오는 달빛에 기대 어둑한 카운터를 지나 문으로 향했다. 안쪽 자물쇠를 열고 심야의 냉기 속으로 미끄러져 나간다.

그 후에 한 번 더 타로를 뽑았다. 점칠 내용은 "자신이 언제 행동에 나서면 좋을지"였다. 대답은 여교황, 즉 새벽 2시였다. 괜찮아, 에드는 절대 무사할 거라고 아니에스는 생각했다. 새벽 2시에 나서면 분명 구할 수 있을 거야. 아니에스는 문득 손이 떨리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움직이면 안 돼, 틀림없이 그 실수로 에드는 죽고 말 거야. 지금은 아무것도 해선 안 돼. 새벽 2시까지 아무것도 하지말고 기다려야 해!

"부냐"카게마루가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카게마루는 보기보다 훨씬 무거운데 ──아마 게을러서 살이 쪘겠지──그래도 그 무게 덕에 정신을 차릴 수 있다. 아니에스는 빛나는 보름달을 올려다 보고 한 번 짧게 심호흡을 했다. "……가자"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눈을 감고 거리에 흐르는 칠요맥을 느낀 뒤 아니에스는 아련한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 이 앞에 분명 [어둠]이 있다.

앵커빌의 거리는 한여름에도 밤은 춥다. 게다가 시간도 시간인지라 아니에스는 얇은 흰색 스웨터를 입고 나왔다. 크림빛 머리가 달빛에 빛을 내고 발걸음에 맞춰 목에 걸린 [ruby(취요석, ruby=에스멜라스)]이 잘그락거리며 작게 소리냈다.
엄마가 나에게 남겨준 건 이 작은 돌뿐이었다. 아니에스는 이제 엄마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 어릴 때 엄마는 사람들 앞에서 힘을 사용했기 때문에 갑자기 모습을 감춘 것이다. 그것이 우리 일족의 법칙……. 배운 적은 없지만 어쌔선지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는 대단히 위험한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몰래 숨죽이고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윽고 길은 시가지를 벗아나 큰 언덕으로 이어졌다. 묘지 같다고 아니에스는 생각했다. 언덕 위를 향해 묘비가 검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펄럭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있다, 에드윈이다!
잘못 봤을 리가 없다, 그것은 지난 교통사고 당시에 여기저기 불에 그을린 에드의 코트였다. 그렇게 새로 사라고 말했는데 아직도 입고 다녔다니!
어쨌든 아니에스는 몸을 숙이고 카게마루를 머리 위에서 내려 팔에 안았다. 아차, 좀 더 눈에 안 띄는 옷을 입고 오는 것이 좋았을 걸……
하지만 분명 앞으로 에드는 죽는다. 아니에스는 호흡을 가다듬고 신중히 에드와의 거리를 재며 재빨리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2.11. 제 11회 -이젠 외칠 수 밖에 없다-

에드윈은 누군가를 미행하는 듯했다. 그 어설픈 행동에 아니에스는 여러 번 화가 났다. 제발, 그러면 들키잖아! 하지만 미행 중인 상대의 모습은 아니에스가 있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아서 결국 그대로 아무 일 없이 언덕 위까지 와 버렸다.
뭔가 이상하다고 아니에스는 생각했다. 에드는 더 이상 숨지 않고 누군가와 마주보고 있다면……

"죄송합니다. 또 놓쳐 버려서……"
"뭐 어쩔 수 없지"
"제길, 오늘 밤은 잘 하려 했는데……! ……그래도 몬테뉴 씨, 저 여자아이는 정말로 [마법사]가 만든 아이일까요?"
"틀림없어. 저것은 인간의 껍질에 사악한 힘을 봉인해 만든 [악령]이야"
자네도 조사해 보고 일았잖아? 사고 현장에는 반드시 저 소녀가 있었던 사실을. 남자는 에드 앞에서 오른손을 흔들며 말했다. 분명 목숨을 노리는 거야. 이렇게 비스듬하게 팍하고 심장 언저리를.
"악령은 그 자리를 미치게 만들지. 그 낌새를 알아차리는 것은 [마법사]뿐일 거야"
"네, 그렇군요……"
"자네는 아직 못 믿는 것 같군. 상관없네만…… 후후, 그렇다면 한 가지 좋은 것을 알려주지"
남자는 에드윈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소리는 달빛 속에서 아니에스의 귀에도 왜인지 또렷이 들렸다.
마법사를 죽이면, 그 힘을 빼앗을 수가 있어.

부스럭하고 손에서 잡초가 큰 소리를 냈다. 걸렸다하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아니에스는 몰려오는 거센 현기증을 참는 데 급급했다. ……마법사를 죽여?
그런 거였군. 재산관리인 학스 몬테뉴, 이 남자이 뎊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어!

"엇, 아니에스……?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에드윈은 둔해. 아주 둔감해서 정말 다행이야.
결심하고 일어선 아니에스는 에드를 무시하고 그 남자. 몬테뉴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처음부터 목적은 나였지"
"이렇게 어린 아가씨일 줄은 몰랐지만"
"지독한 짓을…… 그작 이걸 위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다니!"
"고작이 아니야. 진짜가 아닌 내가 힘을 얻는 데는 이것밖엔 방법이 없어서 말이야"
"에드, 거기서 도망쳐!!" 아니에스는 몬테뉴를 향해 내달렸다. 아직 거리가 있다…… 일단 에드……에드한테서 때어 놔야해!
하지만 함께 뛰어나온 카게마루가 도중에 돌아오라는 경고의 울음소리를 보냈다. "부냐~앗!"

앗……
발을 보이지 않는 힘으로 걷어차인 듯한 느낌과 함께 아니에스는 나가떨어져 쓰러졌다. 심한 통증에 맞져보니 허벅지에서 피가 솟구쳤다. ……뭔가가 관통했구나…… 그때 등 뒤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여운 빨간 리본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다. 너는…… 낮에 가게에 왔던 소녀, 티세!?
"아빠 일이 잘될까? 아빠 일이 잘될까?"
티세의 하얀 피부가 흐물흐물 굽이치며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건 내 딸이야. ……잘 만들어졌지?"

아니에스는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에드, 그 사람에게서 떨어져!! 얼어붙어만 있던 에드윈도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니 겨우 상황을 파악했다.
……[내 딸]이라고? 저것은 지난 일주일 동안 함께 찾아다닌 [악령]이잖아!!
"몬테뉴…… 네 녀석이 마법사였구나!!"
아니에스는 생각했다. 아니야, 이 사람은 진짜 마법사가 아니야. 단지 빼앗은 힘을 조종하는 것뿐……마법사는 베버하르트 씨 였어!
"도망쳐, 에드……!!"이젠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에드, 여기서 빨리 도망갓!!

몬테뉴는 슥하고 손을 올렸다. 자, 여러분 마법을 보시지요하고 말하는 듯이.
"에드윈 군, 그녀를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해야하거든, 자네도 어서 나의 힘의 일부가 되어주게"
그 흰 손가락이 움직이자 에드윈의 귓가에서 마른 소리가 났다.

──빠직.
에드윈은 눈을 부릅뜨며 쓰러졌다.

2.12. 제 12회 -언덕 위의 침식-

아아, 저 녀석은 뭐 하는 거지. 에드윈은 캄캄한 의식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에스가 울고 있다. 울면서 마구 뭔가를 때리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아니에스의 비전은 바로 튕겨져 전혀 상대가 되질 않는다. ……저 녀석 나보다 싸움 잘할 텐데.
아니에스의 비전은 하얗게 빛나며 왠지 반짝거렸지만 지금 에드윈이 보기엔 그런 아니에스의 모습이 엄청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오빠, 찾았다! 어서 빨리 이리 와!"
에드윈의 의식에 리본을 단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어서, 이쪽으로 와! 같이 아빠의 힘이 되자! 그 아이의 팔은 가늘며 차갑고 마치 바이스같이 힘이 셌다. 붙잡힌 에드윈은 얼떨결에 우엑하고 이상한 소리를 질렀다.
"…………잠…… 잠깐, 야……!"
"아빠가 빨리 새 힘이 필요하대. 티세는 아빠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 어서 빨리!"
이 아이…… 인간의 껍질로 만들어진 악령이라고 저 사람은 말했다. 하지만 에드윈은 이 아이가 "악령"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몬테뉴 씨는 진짜 아빠가 아니잖아?"
어색하게 V자 사인을 만들어 보이며 에드윈은 그렇게 말했다.진짜 아빠와 만나고 싶으면 내가 찾아줄까? 왜냐하면 나는 정의의 기자니까……

"──에드! 에드~~읏……!!"
바로 치료를 하면 살아날지도 몰라. 아니에스는 엉겁결에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당장 에드한테 갈 수만 있다면!! ……하지만 몬테뉴의 강력한 힘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통나무같은 것으로 옆구리를 얻어맞고 아니에스의 몸은 멀리 날아가 힘없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더 이상 안되겠어, 늦었어……
이제는 일어설 기력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순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카게마루가 달려와 도망치라고 말했지만 아니에스는 카게마루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에드, 어째서!!
함께 있어 준 단 한 사람이었다. 모두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지만 에드만큼은 달랐다. 에드와 있을 때만큼은 진심으로 즐거웠다. 그것을 필사적으로 감추어야 할 정도로.
아아, 유일한 친구였던 에드……!

"하하하하, 훌륭해!" 몬테뉴가 보름달을 등에 지고 언덕을 올라왔다.
"너로 두 명째…… 마법사는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가치]로구나. 처음에는 우연히 얻은 힘인데 이렇게 한 명씩 빼앗기만 하면 무한한 힘이 손에 들어와……"
그리고 심심풀이로 거둘 목숨은 얼마든지 있어! 몬테뉴는 소리 높여 웃었다. [마법사]라니 잘도 지었어. 무한한 욕망을 낳고 또 그것을 무한하게 충족시키고. 이것은 진정한 마성의 힘이다!
악령 티세의 움직임이 멈췄다. 표면이 거칠게 물결치며 마치 안에서 무언가가 꾸불꾸뿔 크게 날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피부를 찢고 튀어나왔다. 어둠에 거무칙칙하게 스며드는 몬테뉴 마력의 실체였다.
이런 껍질이 한계였나. 상관없어…… 몸에 달라붙기 시작한 어둠을 들어 올리며 몬테뉴는 말했다. 이 힘 때문에 사람을 괴롭히는 게 너무나도 즐거워서 말이야. 마지막은 내가 직접 나서겠다 생각했지.
"──자, 토막을 내 주마. 같이 즐겨 보실까아아"
아니에스는 될 대로 되라며 한마디 던졌다.
[살인마]. 그러자 어둠에 둘러싸여 점점 더 심취한 이 남자는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하다가 네가 할 소리냐며 비웃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 이 힘이라고? 이것도 전부 [ruby(마법사, ruby=너희들)]의 소행이야!"

아니에스 앞에서 보름달이 사라졌다 언덕 위에서 시커먼 어둠이 솟구쳐 몰려왔다. ……그래, 그가 말한 대로다. [마법사]의 힘은 저주다, 주위 사람들을 반드시 불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떠한 형태로든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되는 규칙이 있었던 것이다.
에드, 미안해. 정의의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아니에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2.13. 제 13회 -마법사-

마력을 방출한 몬테뉴는 점점 더 심취했다. 이 힘을 얻고 난 후부터 정말 견디기 힘들다.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고 죽이고 싶고 너무나도 즐거워서 참을 수 없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 이 힘이라고? 이것도 전부 [ruby(마법사, ruby=너희들)]의 소행이야!"
──어둠의 힘은 질풍 같은 속도로 묘지를 빠져나가 묘비를 가르며 아니에스의 몸을 향해 날아와서 터졌다. 소년의 성난 목소리와 함께.
"그럴 리 없잖아!!"
에드윈이 일어섰다. 불에 타서 늘어붙은 코트를 걸치고 손에는 애용하는 낡은 가방을 쥐고 있었다.
"나쁜 짓 한 놈이 나쁜 게 당연하잖아!! 마법같은 정체도 알 수 없는 것 때문이 아니라고!!"
주변 일대에는 달빛을 받은 종잇조각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유심히 보니 그것은 어둠의 힘을 맞아서 너덜너덜해진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잘게 찢어진 에드윈의 원고였다. ……가망이 없다고 체념하고 있던 아니에스도 눈을 동그랗게 뜰 수 밖에 없었다.
"……에, 에드윈!? 어떻게……무사한 거야……!?"
"이봐 아니에스, 잊은 거야. 내가 항상 말했었지?"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부르라고! 나는 정의의 기자니까!! 그렇게 말하며 엄지손가락으로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가리키는 에드윈의 모습이 처음으로 어울렸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아니에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거니까 이제 너를 날려 버리겠다! 취재는 그다음에 하도록 하지, 몬테뉴!!"
"우, 웃기지 마앗!! 그런 낡은 가방으로…………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에드윈은 말릴 새도 없이 돌진했다. 아아, 정말이지!! 아니에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에드윈이었다. 항상 올곧고 스스로에게 정직했다.
에드는 분명 마법을 전부 믿는 것 같지 않다. 지금도 전혀 그 불길한 기운은 조금도 느껴지지 못했다. 하지만 [있을 수 없다]나 [저주받은 힘]이라고 단정짓지 않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게 진실을 알아가려고 하는 거겠지. ……에드윈은 그런 남자였다. 언제나 실수투성이지만.
"──카게마루!!" 조금 전 어둠의 힘의 격류를 실은 낡은 가방 뒤에 붙어서 막고 있던 카게마루는 칠흑같은 눈동자를 돌려 묻는다.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 더 이상 에드에게 거짓말하기 싫어.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아니에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밤은 보름달이다.

바람도 없는데 크림빛 머리카락이 빙글빙글 춤추고 소녀의 양팔에서는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2.14. 제 14회 -양지의 아니에스-

에드윈 아놀드는 그 소녀를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적어도 기억하고 있는 한, 단 한 번도. 실력에도 자신이 있었고 이래 보여도 머리도 꽤 잘 돌아간다…… 생각했지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찍소리도 못할 정도로 내리 지기만 했다.
그래 2년 전 그날부터 아마 지금까지 계속.

빛의 홍수 속에서 모든 것이 날아올랐다. 하늘을 향해 모든 것이 날아간다. 에드윈은 그 속에서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소녀가 손을 뻗어 에드윈의 양손을 잡았다. 그 태양과 같은 따사로운 빛 속에서 아니에스의 몸은 반짝반짝 빛났고 크림빛 머리카락은 하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에드──………… 고마워. 지금까지 즐거웠어.

──뭐야 갑자기. 근데 여기는 어디야? 꿈이야?

──후훗…… 에드는 정말 둔하다니까.
──분명 에드는 오늘 일을 잊어버리겠지만…… 그래도 말해줄 것이 있어.
아니에스는 방긋 웃었다. 그것은 [행복해 보인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고 보여줄 수 없었던 미소였다.

──나는 마법사야. 이것이 진짜 나의 모습이야, 에드.

그때 놀란 것인지 이해한 것인지 에드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니에스는 똑똑하고 싸움도 잘하고 감도 뛰어난 데다 무엇이든 알고 있어서 마법사라해도 그렇구나라고 지금의 에드는 생각했다. 역시 아니에스는 다르네, 그럼 버번을 한 잔 줘!
……아니에스가 있었다면 조용히 아이스티를 내주겠지. 이제 앵커빌에서 아니에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어느새 부러진 갈비뼈 2개의 치료가 끝나고 퇴원한 에드윈은 수도로 가는 장거리 버스에 올랐다. 사실은 자전거로 갈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수도는 너무 멀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버스가 나았다.
몬테뉴도 베버하르트 씨의 살해 혐의로 붙잡혔고 묘지를 파헤치던 티세의 신원도 조사해 손을 써두었다. 이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덜그럭덜그럭 흔들리는 차에 몸을 맡기며 에드윈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거리 사람들은 그날의 기억이 하얗게 지워졌다. 한 소녀가 언제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르고 에드윈 자신도 그날 밤의 일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매일 끙끙앓다가 요즘 들어 겨우 조금 생각났다.
확실히 그때 아니에스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 것 같았다.

"기자가 아닌 에드라면 다시 만나도 좋아"
"무슨 뜻이냐고 그게!"
"하지만 기자는 애매한 일들을 추궁해야 하잖아? (가슴의 [ruby(취요석, ruby=에스멜라스)]을 만지며 말하기 곤란한 듯)에드는 자기 마음도 잘 모른다니까……"

흠…… 역시 나는 정의의 기자가 될 테다. 에드윈은 창가자리에서 수첩을 넘기며 다음 일정을 확인했다. [ruby(독립, ruby=프리랜서)]해서 기자 생활을 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고 특훈해 준 브랜든도 항상 탄식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니에스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신경 쓰이잖아! 안 믿을 거야 다시 만날 수 없다니. ……그러니까 나는 기자를 계속할 거야. 그걸로 내 마음도 확실히 보여주겠어. 기다려 아니에스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끝없이 펼쳐진 넓은 초원을 지나간다. 칼바드의 바람을 웅대하다. "큰 바람이네"하고 그날의 소녀도 속삭였다. 같은 버스 창가에서 턱을 괴고 햇빛에 크림빛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튕겼다. 앵커빌에 있던 소녀는 언제나 양지에 있었다. 에드윈은 살짝 웃었다. 정의의 기자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 믿는다고? 자갈길을 달리는 버스 위에 8월의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 진실 #==
사실 이 소설은 미래에서 작성되어 과거(현 시대)의 잡지사에 투고되었다. 리제트 트와이닝의 정체와 마찬가지로 원래대로라면 존재할 수 없는 그랜드 리셋 이후의 시점에서 만들어진 작품인 것. 계의 궤적 3장 반루트에서의 서브퀘스트로 반 일행은 이 진실을 알게 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설의 원작자가 '이 시대의 아니에스'에게 전달을 부탁한 목걸이를 같이 받게 된다. 하지만 계의 궤적의 엔딩으로 인해 이 목걸이는 아니에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3.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