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10 19:39:33

야코프 펠트하위전 판 잔턴

<colbgcolor=#000><colcolor=#fff> 판 잔턴
Van Zanten
파일:imas.jpg
본명 야코프 펠트하위전 판잔턴
Jacob Veldhuyzen van Zanten
출생 1927년 2월 5일
네덜란드 홀란트 리세
사망 1977년 3월 27일 (향년 50세)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
거주지 네덜란드 사우스 홀랜드 사센하임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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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조종사, 수석강사
소속 KLM 네덜란드 항공
데뷔 1963년 KLM 네덜란드 항공 광고
배우자 헨리에터 펠트하위전 판잔턴세거르스[1]
자녀 2명

1. 개요2. 이름의 표기법3. 생애4. 사망

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LM_Magazine_that_contains_Captain_Jacob_Veldhuyzen_Van_Zanten.jpg
네덜란드조종사.

1977년 테네리페 참사로 사망할 때까지 KLM 네덜란드 항공의 기장으로 활동했다.

2. 이름의 표기법

네덜란드 이름 외래어 표기법상 '판 잔턴'이 아니라 '판잔턴'이 맞으나 대부분의 문서에서 판 잔턴으로 표기하고 있으므로 판과 잔턴을 띄워 표기한다.

3. 생애

1927년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47년 6월 21일에 개인 조종사 면허를, 1950년 4월 18일에 상업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다. 1951년더글라스 DC-3의 부기장으로 근무를 시작했고 1952년 9월 22일에 비행 무선 전화 통신사 면허를, 1956년 10월 19일에 항공 운송 조종사 면허를, 1963년 8월 6일에 비행 항법사 면허를 취득했다. 이후 헨리에터 펠트하위전 판잔턴세거르스와 결혼해 자녀 2명을 두었다.

몇몇 창작물이나 매체에선 그에 대해 독선과 아집에 가득 찬 권위주의적 인물로, 다른 승무원들을 압박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으나 그를 실제로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그러한 증언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권위를 내세우는 인물이 아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1978년까지 KLM 소속 조종사로 근무했으며 이후 국제항공조종사협회(IFA) 회장을 지내기도 한, 판 잔턴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얀 바르텔스키는 자신의 저서 "항공 재난(Disasters In The Air)"에서 그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진지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마음이 넓고 친절한 성격을 지녔던 인물이다. 학구적인 성격이었고, 회사의 보잉 747 시스템 조종 분야의 전문가로 여겨졌다.
...그는 파트너십을 굳게 신뢰했으며, 비행 중 부기장들에게 자신을 "판 잔턴 기장"이 아닌 "야프(Jaap)"라고 부르게끔 했다.

당시에는 상당히 명망있었던 비행기 기장이었는데 기내 잡지나 판촉물에서도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다만 얀 베르텔스키는 그가 광고에 출연한 것은 KLM 내에서의 그의 높은 지위와 명망 때문이 아니라 다른 조종사들이 비행 일정으로 출연할 수 없던 것에 반해 판 잔턴은 비행 교관 일을 하던 중이라 광고에 출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비행 시간도 12,000시간이나 되는 상당히 노련한 베테랑이었다. 오죽하면 별명이 12,000시간 기장이었다. 또 KLM의 비행 훈련 부서의 책임자였던 것은 물론 사고 당시 보잉 747 비행 시간은 1,545시간에 그쳤지만, 보잉 747에 대한 대한 KLM의 모든 조종사 교육을 담당했을 정도로 회사에서 촉망받던 인재였다. 실제로 테네리페 참사 소식이 알려졌을 때, 판 잔턴이 사고기의 기장임을 알지 못했던 KLM 임원진은 조사팀을 지원하기 위해 그를 찾았었다고 한다.

4. 사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테네리페 참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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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테네리페 참사#s-|]]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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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테네리페 참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We gaan.(We're going)"
"이륙한다."
― 테네리페 참사 당시, 판 잔턴 기장이 이륙을 시작하며 한 말.
하지만 네덜란드의 비행 시간 규정에 대한 법률, 장거리 비행으로 인한 피로 등 많은 이유들로 인해 가해진 강한 정신적 스트레스,[2] 부실한 공항 시설, 급속도로 악화하는 기상 상황, 관제탑과의 통신 문제, 교관 생활로 인해 저하된 조종 감각 등으로 인해 관제탑의 지시를 오인하여 허가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륙을 하고 말았다. 이는 테네리페 참사에 제일 큰 책임이 있는 과실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그로 인해 활주로 맞은편에서 유도로로 진입 중이던 팬암기를 피하지 못했고, 결국 팬암기와 충돌 후 추락한 KL4805편이 폭발하며 죽음을 맞고 말았다.

[1] Henriëtte Veldhuyzen van Zanten-Segers, 1926년-2020년[2] 1974년 네덜란드는 엄격한 비행 근무 시간 제한을 명시하고 조종사가 이를 초과할 경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도입했는데, 여기에는 면장 박탈부터 벌금, 심지어는 징역형까지의 처벌도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 1976년부터는 근무 시간 제한 계산 방식이 변경되었는데, 조종사들이 회사에 전화해서 직접 문의해야 자신의 근무 시간 제한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고 이전처럼 재량에 따라 근무시간을 늘리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판 잔턴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었고, 근무 시간을 초과할 경우 법에 따라 기소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판 잔턴을 포함한 KL4805편의 조종사들은 비행을 제 시간에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 받게 될 처벌에 대한 부담감에 쫓기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판 잔턴 기장이 판단오류를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