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15 23:52:14

안토니오 마가리토

이름 Antonio Margarito Montiel
안토니오 마가리토 몬티엘
생년월일 1978년 3월 18일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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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미국 캘리포니아 토런스
180cm
리치 185cm
스탠스 오소독스
체급 웰터급, 라이트 미들급
복싱 전적 49전 40승 (27 KO) 8패 1무효
링네임 Tornado

1. 개요2. 평가3. 커리어
3.1. 아마추어3.2. 프로
4. 사건/사고
4.1. 개조 붕대 논란4.2. 마가리토 인간 샌드백화, 고토와의 재대결
5.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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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태생의 멕시코 복서. 웰터급 WBO, IBF, WBA 세계 챔피언으로 8년 가까운 기간 동안 웰터급에서 활약했다.

2. 평가

라이트 미들급으로 월장한 후에는 세번이나 챔피언에 도전했으나 결국 라이트 타이틀은 따내지 못한 불운의 선수. 마가리토는 상대적으로 큰 체격과 리치를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전술능력과 특히 강한 턱으로 유명했다.

2009년 쉐인 모슬리와의 대전 전 불거진 석고 붕대 사건으로 커리어에 큰 오명을 남기게 되었다.

세계의 복싱팬들에게는 매니 파퀴아오의 여덟 체급 석권의 희생양으로 특히 유명하다. 웰터급에서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인 훌륭한 복서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여러모로 잡음이 있던 복서.

3. 커리어

3.1. 아마추어

마가리토는 상대적으로 짧은 아마추어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18승 3패를 기록했다. 그는 가족을 경제적으로 서포트하기 위해 빨리 프로의 세계로 뛰어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3.2. 프로

1994년 1월, 그는 15세의 어린 나이로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프로 데뷔전을 갖고 4라운드 경기 끝에 판정승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불과 7일 후에 두번째 프로 시합을 가졌고 8개월 동안 무려 6회의 시합을 소화 했다는 것. 15세의 프로 초년생이 소화할만한 일정이 아니며 실제로 6번째 시합에서 그는 커리어 첫 패배를 당한다. 젊고 재능있는 복싱 유망주가 열악한 멕시코의 복싱 계 상황 때문에 일찌감치 검은 별을 안고 커리어를 시작해야만 했으며 그는 데뷔한 후 2년 동안 15전에 가까운 시합을 치르고 12승 3패를 기록 한다. 다행히 능력과 재능을 인정받은 마가리토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활동 무대를 옮기게 된다.

2001년 7월, 마가리토는 다니엘 산토스를 상대로 첫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게 된다. 첫 라운드에서 마가리토와 챔피언 다니엘 산토스가 서로 머리가 부딪혀 큰 출혈이 나게 되었는데 두 선수는 모두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해당 시합은 '무효' 처리되었다. 상기된 전적에서 보이는 무효 경기가 바로 이 경기. 첫 세계 챔피언 도전 경기에서 생긴 일이니 마가리토에게는 아쉬움이 컷을 것이다.

다행히 마가리토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동국의 복서 안토니오 디아즈를 상대로 WBO 웰터급 세계 챔피언 타이틀에 도전하게 된다. 10라운드에 TKO로 상대를 제압한 마가리토는 프로데뷔 7년만에 세계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 그후 그는 해당 타이틀을 6년이란 긴 기간동안 7회 방어한다. WBO 웰터급 세계 챔피언으로 군림하던 중 그는 라이트 미들급으로의 월장과 리카르도 마요르가, 페르난도 바르가스, 오스카 델라 호야, 쉐인 모슬리 등 빅네임들과의 시합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평범한 세계 챔피언에서 진정한 체급 최강자, 혹은 다체급 석권 챔피언을 노리는 복서가 되었다.

2004년 마가리토는 푸에르토 리코의 다니엘 산토스를 상대로 WBO 라이트 미들급 타이틀에 도전하게 된다. 승리하게 된다면 2체급 석권. 마가리토는 다니엘 산토를 상대로 첫 세계 챔피언 타이틀에 도전했다가 헤드 컷팅으로 인해 경기가 무효처리된 뼈아픈 경험이 있는데, 애석하게도 이번 경기에서도 10라운드에 벌어진 헤드컷팅으로 인한 출혈로 닥터스탑, 패배하게 된다. 같은 상대에게 두 번 세계 타이틀에 도전해 모두 헤드커팅으로 타이틀을 놓친 불운의 아이콘.

2007년 7월, 마가리토는 6년간 방어해오던 WBO 웰터급 챔피언을 도전자 폴 윌리엄스에게 빼았긴다. 항상 체격적 우위를 통한 압박복싱을 해왔던 마가리토지만 그보다 더한 185cm라는 사기적인 신장을 가진 도전자에게 마가리토의 전진은 큰 압박을 주지 못했고 폴 윌리엄스의 긴 리치에서 나오는 공격에 초반 크게 고전한다. 마가리토 특유의 뒷심을 발휘하며 후반 라운드 공세를 취했지만 다운을 뺏거나 큰 데미지를 주지 못했고 결국 판정패를 하고 만다. 마가리토는 판정에 큰 불만을 보였으며 실제로도 논란의 여지가 큰 판정이었다.

2008년 마가리토는 푸에르토 리코의 커밋 신트론을 6라운드 KO로 쓰러뜨리고 IBF 웰터급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건재함을 과시한다. 그에게는 두번째 타이틀. 신트론이 수차례 강한 펀치를 마가리토에게 성공시켰으나 마가리토 특유의 맷집으로 모두 견뎌네고 시종일관 신트론을 압박하여 결국 리버샷 한 방으로 신트론을 침몰시킨 경기로 마가리토의 장점을 아주 잘 보여준 경기라는 평.

신트론과의 아주 성공적인 경기 후에 IBF는 그에게 IBF 웰터급 랭킹 1위 선수와 지명 방어전을 할 것을 요구하나 마가리토는 IBF 타이틀을 반납하고 무패의 WBA 웰터급 세계 챔피언 미구엘 고토에게 도전할 것을 선언한다. 신트론을 이긴 후 불과 두 달 뒤, 두 선수의 빅매치가 라스베가스에서 열리게 되었다. 실제 경기에서 마가리토는 11회 TKO 승을 거두며 WBA 웰터급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1라운드부터 6라운드까지 고토의 아웃복싱에 계속해서 큰펀치를 허용하며 라운드를 모두 내줬으나 마가리토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계속해서 전진하며 묵직한 바디샷으로 데미지를 누적시켰으며 후반 누적된 데미지에 의해 발이 느려진 고토를 일방적으로 몰아치며 TKO 승리를 거둔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업셋을 통해 본인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연출해냈고 미구엘 고토는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뒤를 잇는 슈퍼스타로 착실하게 성장해나가던중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며 스스로 주저않는 등 팬들마저 실망시킨 굴욕적인 패배를 통해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2009년 마가리토는 쉐인 모슬리과 WBA 와 리니얼 웰터급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싸우게 된다. 당시 링지 기준 웰터급 1위 마가리토와 3위 모슬리의 대결이었으므로 웰터급 최강자를 가리는 대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던 중요한 시합. 막상 시합에서 마가리토는 모슬리에게 압도당하며 9라운드에 KO패 당한다. 그가 15년이 넘는 프로 커리어에서 당한 첫 KO패배. 타이틀을 빼았긴 마가리토는 본인이 감량고를 겪었으며 탈수증과 등 통증도 심각했었다고 변명한다.

4. 사건/사고

4.1. 개조 붕대 논란

요약하자면 마가리토 커리어 전체에 먹칠을 한 사건. 마가리토의 주먹을 보호하기 위한 붕대에서 석고가 발견된 사건이다.

모슬리의 트레이너 나짐 리차드슨은 시합전 마가리토의 주먹의 붕대를 점검하다 석고를 발견하게 된다. 리차드슨의 요청으로 마가리토는 붕대를 새로 감아야 했다. 모슬리와의 시합전 마가리토의 주먹 붕대 안에 마가리토를 유리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이물질이 들어있던 것은 확인된 사실.

모슬리측은 해당 건을 캘리포니아 주 체육의원회에 보고하였으며, 결국 마가리토와 그의 트레이너 하비에르는 공식 조사를 받게 된다. 마가리토는 그의 붕대안에 이물질이 있는지 몰랐다고 주장하였으며 그의 트레이너 하비에르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며 본인이 이물질을 넣었음을 인정한다. 결국 위원회는 마가리토와 자비에르에게 1년 자격 정지의 징계를 내린다. 위원회는 마가리토가 그의 붕대안에 이물질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을 수 있으나 '배의 선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년의 휴식기가 커리어에 큰 문제가 아닌 프로 복싱 특성상 중징계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이런 부정행위에 굉장히 민감한 미국 스포츠 정서상 사실상 마가리토가 미국 스포츠계에서 재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정설.

2009년 11월, 마가리토가 고토와의 시합에서도 해당 석고가 담긴 붕대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재기 되었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으니 고토와 그의 팬들만 억울한 상황.

2010년 자격 정지가 풀린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멕시코에서 복귀전을 갖고 무난히 승리한다. WBC 인터네셔널 라이트 미들급 챔피언에 오른 그는 당시 7체급을 석권하고 8체급 석권 일정을 고려중이던 파퀴아오에게 큰 흥미가 있다는 의사를 보인다.

4.2. 마가리토 인간 샌드백화, 고토와의 재대결

2010년 밥 애럼은 마가리토와 매니 파퀴아오가 WBC 라이트 미들급 타이틀을 걸고 싸울 것이라는 것을 발표한다. 시합 장소는 미국 텍사스였으며 석고 붕대 이슈로 캘리포니아에서 시합을 갖기 어려웠던 마가리토 때문에 텍사스로 장소가 결정된 듯. 석고 붕대 이후 미국에서의 재기전이며 상대가 당시 복싱계에서 가장 뜨거운 아이콘이었던 파퀴아오였기 때문에 그는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트레이너들과 스파링 파트너들을 고용한다.

마가리토는 17파운드에 달하는 무게 어드벤티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5.5인치(14cm)의 신장 차와 6인치(16cm)의 리치 차이를 가지고 있었고, 플라이급에서 올라온 복서에게 진다는 것은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시합에서는 마가리토가 파퀴아오에게 완전히 지배당했으며 말 그대로 인간 샌드백화되었다.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한 것은 물론, 얼굴이 망가져도 너무 망가진 마가리토를 걱정한 파퀴아오가 10라운드 이후 페이스를 늦춰 배려해주는 굴욕까지 당하게 된다.

다만 마가리토는 이 시합에서 (아무리 처맞아도) 본인이 자랑하는 맷집을 기반으로 끝까지 한방을 노리며 파퀴아오를 압박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상대가 파퀴아오였다는 것이 문제. 마가리토는 시합 후 안와 골절 진단을 받게 된다.

해당 시합 전 마가리토는 한 인터뷰에서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파퀴아오의 트레이너 프레디 로치를 모욕하는 발언을 했는데 결국 시합 직전 마가리토는 해당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한다.

2011년 12월, 마가리토는 미구엘 고토와 WBA 라이트 미들급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시합을 갖는다. 미구엘 고토에게는 타이틀과 복수를 위한 (벼르고 벼른) 시합이었으며 마가리토에게는 석고사건과 모슬리, 파퀴아오에게 당한 완패를 극복하고 복싱선수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시합이었다. 결국 마가리토는 고토에게 10라운드에 닥터 스탑에 의한 TKO 패배를 당한다. 파퀴아오에게 당한 안와 골절의 영향인지 10라운드에 마가리토의 오른쪽 눈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시합을 포기해야 했다. 라이트 미들급 세계 타이틀 전에서 당한 세번째 패배. 사실상 2체급 석권은 물론 정상급 복서로서의 생명을 유지할 가능성도 요원해졌다.

2016년 5년만에 링에 돌아온 마가리토는 멕시코의 복서들을 어렵게 잡아내며 WBO-NABO 라이트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다. 과연 그가 다시 한 번 라이트 미들급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게 될 수 있을지 주목할만하다.

5. 사생활

그는 멕시코 티후아나에 거주하며 그의 별명인 '티후아나의 토네이도' 는 여기서 유래한 별명이다. 그는 한 번의 이혼을 경험한 후 현재의 배우자 로리나 마가리토와 안토넬라 마가리토, 안토니오 마가리토 주니어를 키우고 있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파퀴아오와의 시합을 경기장에서 직접 관람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로리나가 본인과 결혼하기전 출산한 모니카 역시 자신의 친딸로 생각하며 키우고 있다고 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린나이에 복싱을 시작해 지금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는 복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