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7-10 02:07:52

안성섭

파일:안성섭.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성집(性集) / 초강(草岡)
본관 순흥 안씨[1]
출생 1880년 10월 17일
전라도 남원도호부 지사방 영천리
(현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2][3]
사망 1944년 3월 13일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258호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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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80년 10월 17일 전라도 남원도호부 지사방 영천리(현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서 아버지 안병호(安秉浩, 1848 ~ 1894. 1. 5)와 어머니 청주 한씨[4] 사이의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장수군 산서면 동화리 장날에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유생 박정주(朴政柱) 등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긴급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박정주가 강제로 연행되자, 그를 구출하기 위해 동화리 헌병 주재소를 습격하고 그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며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8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이에 공소하여 5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위 혐의에 대해 원심 판결이 취소되었으나, 형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에 상고했으나 6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위 혐의에 대해 상고가 기각되어 결국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44년 3월 13일 별세했다.

198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고,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안장되었다가 2006년 5월 25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이장되었다.

[1] 참찬공파(參贊公派) 27세 섭(燮) 항렬.[2] 순흥 안씨 집성촌이다.[3] 출생지인 영천리 203번지에는 현재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영천서원(寧川書院)이 있다. 영천서원에는 기묘사화에 연루돼 파직되었던 안처순(安處順, 1492 ~ 1534. 11. 17)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안성섭은 안처순의 14대손이다. 한편, 1915년 지적원도에 따르면, 영천리 203번지는 1915년 당시 안성섭의 맏형 안태섭(安泰燮, 1869. 6. 7 ~ ?)의 소유였다.[4] 한규병(韓圭炳)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