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0-27 20:43:22

안드레아스 그라프 하디크 폰 푸타크

파일:xam70767.jpg
1710.10.16.~1790.3.12.
헝가리어: 푸터키 백작 허디크 언드라시 (gróf futaki Hadik András)
독일어: 안드레아스 하디크 폰 푸타크 백작 (Andreas Graf Hadik von Futak)
슬로바키아어: 안드레이 하디크 (Andrej Hadík)

1. 개요2. 일생
2.1. 초기 경력2.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2.3. 7년 전쟁2.4. 말년

[clearfix]

1. 개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헝가리계 군인.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7년 전쟁에서 기병대 지휘관으로서 활약했다.

2. 일생

2.1. 초기 경력

하디크는 1710년 10월 16일 쾨세그에서 헝가리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다. 그는 젊었을 때 성직자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의향에 따라 군대에 입대했다. 1731년, 하디크는 길라니 후사르 연대에 입대했고 1732년 장교 게급이 부여되어 오스트리아군의 데스위피 후사르 연대 기수가 되었다. 이후 하디크는 1733년부터 1738년까지 진행된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과 1735년부터 1739년까지 진행된 러시아-오스만 제국 전쟁에 참가해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고 1738년에 대위로 승진했다.

2.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한 후, 하디크는 후사르 기병대를 이끌고 기습전의 달인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특히 나이세 시에 대한 성공적인 기습 공격은 그의 명성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러한 공로에 힘입어 1742년 마리아 테레지아에 의해 중좌로 승진했다.(드라마상에선 둘이 하룻밤을 보낸다) 1744년, 하디크는 벨즈나이 후사르 연대의 대령이 되었고 1748년에는 소장의 직위에 올라 기병 여단 지휘를 맡았으며 1753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하디크 후사르' 연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2.3. 7년 전쟁

1757년 10월, 하디크는 슐레지엔과 작센에서 각각 오스트리아군, 프랑스군과 맞서 싸우느라 정신 없는 프로이센군의 눈을 피해 베를린을 급습했다. 그는 약 5,000명의 후사르 기병대를 이끌고 하루 동안 베를린을 점령한 뒤 20만 탈러 상당의 몸값을 얻어낸 뒤 도시를 떠났다. 그는 이 공적으로 중장으로 승진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 대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1758년 대장으로 승진한 그는 전쟁 기간 내내 후사르 지휘관으로서 프로이센군과 맞서 싸웠다. 1763년 7년 전쟁이 끝난 후, 하디크는 오펜 요새의 백작이자 총독으로 발탁되었다.

2.4. 말년

1764년, 하디크는 시벤뷔르겐의 주지사가 되었고 카를로이츠 의회 의장이 되었다. 그는 후에 푸타크 영지를 수여받고 푸타크 백작이 되었다. 1772년 폴란드 분할이 진행된 후, 하디크는 오스트리아에 귀속된 폴란드 영토의 총독으로서 1774년 6월까지 다스렸다. 1774년 제국군 원수가 된 하디크는 1778년 바이에른 계승 전쟁에 참가했고 1789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는 총사령관을 맡았으나 베오그라드 공방전을 이끌던 중 라우돈 남작 에른스트 기데온에게 총사령관을 맡기고 싶어하던 요제프 2세의 의향에 따라 지휘관을 라우돈 남작에게 양도했다. 그후 하디크는 1790년 2월 12일에 병사했다. 향년 8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