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쇠기둥의 사진. |
[clearfix]
1. 개요
아이제르너 만(Der Eiserne Mann)은 번역하면 '무쇠인간(the Iron man[1])'이라는 뜻으로,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라인란트 자연공원에 존재하는, 용도와 기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쇠 기둥 유물이다. 위치는 북위 50도 42분 27초, 동경 06도 57분 40초#로, 코텐포르스트(Kottenforst) 내에 위치해 있다.2. 형태
아이제르너 만은 코텐포르스트의 숲 한 가운데에 묻힌 무쇠 기둥이며, 지상으로 드러난 부분이 약 1.4m 정도 되고 총 높이가 2.18 m, 가로세로 각각 15 cm인 육면체 형상을 띄고 있다. 땅 아래에 묻힌 부분은 끝이 갈라진 T자 형태이다. 쇠기둥을 만든 방식은 땅에 구멍을 파고 거기에 쇳물을 부어 만드는 것으로, 중세시대에 일반적인 주조 방식이었다고 한다. 아이제르너 만 옆에는 유물임을 나타내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아이제르너 만 옆에 세워진 문화재 안내판. |
„Der Eiserne Mann” ist ein in einem Stück gegossener Roheisenbarren. Er hat eine Länge von 2.18 m und steckt mit seinem T-förmigen Ende etwa einen Meter in der Erde. Dieses war offenbar als Aufhängevorrichtung für Transport und Weiterverarbeitung gedacht und vereitelte als Verankerung bisher jeden Versuch, den Barren gewaltsam zu entfernen. Seine porige Oberfläche und der über die ganze Länge uneinheitliche Querschnitt sind durch den Guß. in einem Sandbett bedingt. Gußtechnik und Gußform lassen auf seine Herstellung im späten Mittelalter schließen.
'아이제르너 만(아이언 맨)'은 한 토막의 선철 주괴로 길이는 2.18미터에 달하고 끝이 T자형으로 지하 약 1미터에 박혀 고정되어 있다. 이 주괴는 운반 및 추가적인 건설 작업을 위한 지지대로 추정되지만, 그 형태로 인해 오랜 세월 강제로 제거되지 않고 남았다. 기둥의 다공성 표면과 고르지 않은 형태는 이것이 모래 주형을 통해 주물되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주물 기법과 형태로 미루어, 기둥은 후기 중세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제르너 만의 정확한 기원이나 용도는 아직 불분명하다. 여기에는 사실, 추측에 근거한 이론과 전설이 혼재되어 있다. 이 기둥은 본래 1625년 로마 수로를 따라서 알프터(Alfter)와 하이머츠하임(Heimerzheim) 사이의 경계 표식으로서 처음 기록되었으며 1717년에도 여전히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기둥의 예전 위치는 정확하지 않다. 기둥은 클레멘스 선제후 시기인 1727년경 지금의 위치로 이전되었고, 이후 브륄의 아우구스투스부르크(Augustusburg)와 헤르조그스프라우데(Herzogsfreude) 성 사이, 설원 사냥길의 확장된 경로로 이용되었다. 오늘날 이 곳은 하이커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어 있다.
부쉬호벤 향토 미화 협회
출처 K. Grewe, Der Eiserne Mann im Kottenforst, Köln 1978
'아이제르너 만(아이언 맨)'은 한 토막의 선철 주괴로 길이는 2.18미터에 달하고 끝이 T자형으로 지하 약 1미터에 박혀 고정되어 있다. 이 주괴는 운반 및 추가적인 건설 작업을 위한 지지대로 추정되지만, 그 형태로 인해 오랜 세월 강제로 제거되지 않고 남았다. 기둥의 다공성 표면과 고르지 않은 형태는 이것이 모래 주형을 통해 주물되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주물 기법과 형태로 미루어, 기둥은 후기 중세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제르너 만의 정확한 기원이나 용도는 아직 불분명하다. 여기에는 사실, 추측에 근거한 이론과 전설이 혼재되어 있다. 이 기둥은 본래 1625년 로마 수로를 따라서 알프터(Alfter)와 하이머츠하임(Heimerzheim) 사이의 경계 표식으로서 처음 기록되었으며 1717년에도 여전히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기둥의 예전 위치는 정확하지 않다. 기둥은 클레멘스 선제후 시기인 1727년경 지금의 위치로 이전되었고, 이후 브륄의 아우구스투스부르크(Augustusburg)와 헤르조그스프라우데(Herzogsfreude) 성 사이, 설원 사냥길의 확장된 경로로 이용되었다. 오늘날 이 곳은 하이커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어 있다.
부쉬호벤 향토 미화 협회
출처 K. Grewe, Der Eiserne Mann im Kottenforst, Köln 1978
3. 미스터리
- 인적이 드문 숲에서 17세기 이전에 제작한 기둥이 발견되는 것은 드문 일이며, 기둥의 용도를 전혀 알 수 없다. 과거 주조 기법에 따르면 숲 한 가운데에 누군가가 땅을 파고 쇳물을 부어 기둥을 만든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개척되지 않은 숲 한가운데서 기술자와 장비를 동원해서 뜨거운 쇠를 녹이고 쇳물을 부어가며 기둥을 만들 필요가 없으므로, 원래는 그보다 이전에 다른 용도로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
- 세월에 노출된 것에 비해 비교적 녹이 적게 슨 편이다. '녹이 슬지 않는 쇠'의 다른 예로 인도 델리의 철 기둥 등이 유명한데, 델리의 철 기둥은 인산염의 피막 덕에 기둥이 부식으로부터 보호되어 녹이 거의 슬지 않은 것으로 본다. 아이제르너 만 역시 마찬가지 원리로 겉이 산화됨으로써 피막이 형성되어 형태가 유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 근처에 고대 로마의 수로 시설이 남아 있기 때문에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기도 하지만, 주조 방식이 중세 시대의 것이기 때문에 로마 시대보다는 후대에 만든 듯하다. 원래는 현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나, 그렇다면 왜 이것을 여기에 묻었는지도 모른다. 문헌에 등장한 뒤로 몇 번 쇠기둥이 이전되었다고 추측하지만 그 이전부터 다른 곳에서 옮겨온 뒤 버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아이제르너 만은 '누가, 어디서, 왜 이런 철기둥을 만들어 인적이 드문 숲에 달랑 하나만 박아 놓았고 본래 목적이 무엇인가?'가 밝혀지지 않았기에 미스터리한 철기둥으로 남았다.
4. 여담
- 기둥의 미스터리한 역사와는 반대로, 공원의 산책로 내에 있고 근처에 쉼터가 있어서 하이킹 나온 주민들이 심심하면 와서 한 번씩 만지고 간다. 아예 기둥 주변에 감상하라고 친절하게 벤치를 설치했는데, 하도 만져대서 겉이 맨질맨질해졌고, 낙서까지 되어있다.
- 현대 미국에서도 이와 같은 쇳덩어리 기둥이 발견되었는데 정체는 누군가 인위적으로 세운 것이였다. 이런 것은 루마니아에서도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