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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5E9436><colcolor=#ffffff> 작센 선제후 아우구스트 August, Kurfürst von Sachsen | |
| | |
| 출생 | <colbgcolor=#fff>1526년 7월 31일 |
| 신성 로마 제국 작센 선제후국 프라이베르크 | |
| 사망 | 1586년 2월 11일 (향년 59세) |
| 신성 로마 제국 작센 선제후국 드레스덴 | |
| 재위 | 작센의 선제후 |
| 1553년 7월 9일 ~ 1586년 2월 11일 | |
| 배우자 | 덴마크의 아나[1] (1548년 결혼 / 1585년 사망) |
| 안할트의 아그네스 헤트비히 (1586년 결혼) | |
| 자녀 | 엘리자베트, 알렉산더, 크리스티안 1세, 도로테아, 아나 |
| 아버지 | 작센 공작 하인리히 4세 |
| 어머니 |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카타리나 |
| 형제 | 지빌레, 에밀리아, 지도니, 모리츠, 제베린 |
| 종교 | 루터교회 |
| 서명 | |
1. 개요
베틴 가문의 알브레히트계 2대 작센 선제후. 형 모리츠가 확보한 선제후 작위를 안전하게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2. 생애
에른스트의 동생 알브레히트와 보헤미아 왕국 국왕 이르지 스 포데브라트의 딸 즈덴카(Zdeňka z Poděbrad 1449~1510) 손자로 작센 공작 하인리히 4세의 차남이다. 1545년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국왕 크리스티안 3세의 딸 아나(Anna af Danmark 1532~1585)와 결혼하였다. 형 모리츠가 지버스하우젠 전투에서 전사하자 전임 작센 선제후인 에른스트계의 요한 프리드리히 1세와 협상하여 나움부르크 조약으로 알브레히트계의 작센 선제후 작위를 인정받는 대신 알텐부르크 등 일부 영토를 넘겨주었다. 이후 친합스부르크 가문 정책을 추진하여 아우크스부르크 화의가 체결되는데 기여하였다.독일어권 영방국가 중 최선임 개신교 제후라는 자부심이 강하여 루터교회와 칼뱅교회의 통합을 시도하였으나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존재로 인하여 좌절되었다.
1586년, 환갑의 나이에 14세의 안할트 출신 아그네스 헤드비히(Agnes Hedwig von Anhalt 1573~1616)와 재혼했으나 재혼한지 1달 만에 사망하여 프라이베르크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맏아들이 크리스티안 1세로 작센 선제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