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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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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심시선-02.jpg
심시선
Shim Si-seon
출생 작중 시간 1942년 8월 D일
부암동의 집
사망 작중 시간 2010년 8월 D일[1]
부암동의 집
가족 요제프 리(남편), 홍낙환(남편), 이명혜(장녀)[2], 박태호(사위), 심명은(차녀)[3], 이명준(아들)[4], 김난정(며느리), 홍경아(의붓딸)[5], 정보근(의붓사위), 박화수, 박지수, 이우윤, 정규림, 정해림(손주)
학력 대학원 졸업
종교 불교[6]
직업 화가, 작가
1. 개요2. 작중 행적
2.1. 작품 활동2.2. 기타 활동
3. 어록4. 논란 및 사건사고
4.1. 마티아스 마우어와의 스캔들
5. 문학사적 의의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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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선으로부터,의 주인공으로,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2. 작중 행적

6.25 전쟁 중에 심시선은 일찌감치 육촌 오빠 부부를 따라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 다른 가족들의 피난이 늦은 건 서울과 의주에서 내려올 형제들과 그 가족들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고발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유학했던 둘째 오빠 심시철이 공산주의자 간첩이라고 이웃이 주장했고, 그로 인해 사흘에 걸쳐 온 가족이 끌려가 총살당했다. 부역자라고 뒤집어쓴 마을 사람 수십 명[7] 중 한 명이 그의 오빠 심시철이었던 것이다. 실제 그의 정치적 성향이 정말 어땠는지는 밝혀진 적 없고 이후 행방도 알 수 없다. 고발한 이웃과 무슨 갈등이 있었는지도. 가족들의 소식이 심시선에게 전해진 것은 1.4 후퇴[8] 즈음이었다. 그 마을을 떠난 이[9][10] 가 찾아와 절대 돌아가지 말라고 했다. 불탄 집밖에 남은 게 없으며, 가면 심시선도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하지 않더라도 험한 꼴을 겪을 거라 했다고.[11]

그렇게 돌아갈 곳이 없어진 심시선을 위해 육촌 오빠의 아내 쪽이 하와이 이민을 주선하고, 심시선은 이유를 묻지 않고[12] 받아들인다. 하와이로 일찌감치 이민 간 그쪽 집안 사람의 옆집에 결핵으로 죽어가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의 사진신부[13]로 가 엄격한 이민법을 피해간 것이다. 정말 결혼 생활을 해야 하는 거면 어쩌나 망설였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말 그대로 기우였고 그 남자는 시선이 도착하기 이틀 전에 죽어버린다.[14] 당시의 사진 기술과 행정 시스템이 훗날 같지 않아 요행이었다고 회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공적으로 하와이로 이민한 심시선은 세탁소[15]에서 일했다. 운전을 곧잘 했던 덕에 운전수가 쉬는 날엔 트럭을 운전하며 빨랫감을 픽업하기도 했다고. 그리고 그 덕에 불행하게도 그 때문에 마티아스 마우어를 만나게 된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 참조.



2.1. 작품 활동

<rowcolor=#fff> 제목 년도 연재 잡지 출판사
월간 불교 XX 1978
원예와 XX 1984
잊은 것에 대해 묻지 마시오 1988
심시선이 읽어주는 하와이 신화 1989
이제는 지나온 갈림길 1991
잃은 것과 얻은 것들 1993
나의 말은 그렇게 돌아왔고 1997
나의 사랑, 나의 동료 홍낙환의 3주기를 기리며 1998
사랑은 아무 관련이 없었다 2000
여성 XX 2001
어쩌다 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 2002

2.2. 기타 활동

강연
  • 한국XXXX부모연합 초청 강연, 1984년
  • XX예술대학 특별 초청 강연, 1996년
  • 여성XX 주최 다과회 강연, 2003년

TV 및 라디오 출연
  •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의 밤> 출연, 1981년
  • TV토론 <21세기를 예상하다> 출연, 1999년
  • 라디오 <작가가 보내온 엽서> 출연, 2004년
  • <명사와 함께하는 저녁> 출연, 2005년

기타
  • <부암동, 문화지식인들의 숨은 이야기> 기념 행사 참가, 2003년, 서울역사박물관
  • <마이 스몰 퍼키 하와이안 티츠> 복원, 2009년

3. 어록

질문자 문장의 아취가 비슷한 작가 없이 독특하신 것 같아요. 그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심시선 아마도 바닥에 떨어진 그릇처럼 깨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한국어, 어릴 때 배웠던 일본어, 영어, 독일어가 머릿속에서 다 섞였는데 조화롭게 섞이지 못하고 여기저기 골이 있습니다. 골과 절벽에 제 나름대로 흔들다리 같은 것을 걸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균열에 땜질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독특하게 보일 뿐일 겁니다. 그럴 수 있지요. 사람들은 의외로 흠 없는 것만큼이나 완전히 파괴되었다 다시 이어붙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니까요.
― 작중 등장하는 책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의 밤>(1981)[16]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서의 예술은 대개 너무 늦지 않게 시작해야 하니까요. 예외적으로 뛰어난 몇 사람이 사십에, 오십에 시작하는 경우에도 진입구 자체는 훌쩍 좁아진 후입니다. 그러니 남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자기 자식이 어떤 성품인지 다 아실 테니 재능의 있고 없고를 떠나,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해칠 것 같습니까? 즐겁게 그리고 쓰고 노래하고 춤추는지,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하는지 관찰하십시오. 특히 후자라면 더더욱 인생의 경로를 대신 그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아이들을 움직이는 엔진은 다른 사람이 조작할 수 없습니다. 네, 다른 사람입니다. 부모도 결국 다른 사람입니다. 세상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걷어내주시기야 해야겠지만, 가능성이 조금 번쩍대다 마는지 오래 타는지 저가 알아서 확인하도록 두십시오.
― 작중 등장하는 가상의 한국XXXX부모연합 초청 강연(1984)[17]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헐거운 관찰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할 테지만, 지켜본바 작가들이 이십 년에 한 번씩 큰 변곡점을 그리지 않나 생각해왔습니다. 열 살 때 그리기 시작했으면 서른 살에 쉰 살에 일흔 살에, 스무 살에 그리기 시작했으면 마흔 살에 예순 살에 여든 살에…… 네, 여든 살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여든 살에도 변화는 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매일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 있어요. 고된 행운인 셈이죠. 하여튼, 일종의 도약 지점 같은 것일까요? 그런 게 얼추 이십 년마다 찾아오는 걸 봅니다. 중간에 그만둬버린 사람으로서는 신기할 따름입니다. 별다른 노력도 없이 공짜로 그 멋진 변신을, 변태를 목격하는 일은 저에게 짜릿한 기쁨이었습니다. 기쁨을 잘 느끼는 사람이어서 지금껏 살아남았는지도 모르겠네요.
― 작중 등장하는 가상의 XX미술학부 졸업 축사(1995)[18]
창작의 욕구와 자기 파괴의 욕구가 다른 이름을 가진 하나라는 것이 언제나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20세기는 끔찍한 세기였고, 끔찍한 걸 지나치게 많이 목도한 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자살률이 높다지요? 한국 예술가들의 자살률은 아마 그보다 더 높을 겁니다. 언니들, 친구들, 동생들…… 거의 격년으로 한 사람씩을 잃었습니다. 예민해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는 건 압니다. 파들파들한 신경으로만 포착해낼 수 있는 진실들도 있겠지요. 단단하게 존재하는 세상을 향해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행위는 사실 자살을 닮았을 테고요. 그래도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이 내게도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날들이.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 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 작중 등장하는 가상의 XX예술대학 특별 초청 강연(1996)[19]
심시선 셋째요……? 걔? 걔한테 무슨.[20] 나 죽고 나서 모든 대소사는 큰딸이 알아서 잘할 겁니다.
김행래 몹쓸 언행은 아주 골라서 다 하시는군요.
심시선 선생 생각이랑 내 생각이랑 어느 쪽이 더 오래갈 생각인지는 나중 사람들이 판단하겠지요.
― 작중 등장하는 가상의 프로그램 TV토론 <21세기를 예상하다>(1999)[21]
질문자 그럼 질문을 좀 바꾸겠습니다. 성공적인 결혼의 필수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심시선 폭력성이나 비틀린 구석이 없는 상대와 좋은 섹스.
(좌중 웃음과 웅성거림)
심시선 왜요? 할머니가 섹스라고 말하면 웃긴가?
질문자 선생님도 참, (웃음) 폭력성과 비틀린 구석이 없다는 건 너무 베이직 아닌가요?
심시선 베이직을 갖춘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고 봅니다. 안쪽에 찌그러지고 뾰족한 철사가 있는 사람들, 배우자로든 비즈니스 파트너로든 아무데도 못 갖다 써요. 꼭 누군가를 해치니까.
질문자 그런데 그런 상대를 어렵게 만나…… 섹스를 한다고요? 흥미로운 대화나 서로에 대한 이해 같은 건요?
심시선 아이, 남편들이랑 무슨 대화를 해요? 그네들은 렌즈가 하나 빠졌어. 세상을 우리처럼 못 봐요. 나를 해칠까 불안하지 않은 상대화 하는 안전한 섹스, 점점 좋아지는 섹스 정도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 렌즈요?
심시선 아무리 똑똑해서 날고 긴다 해도, 다정하고 사려 깊은 성품을 타고났다 해도 우리가 보는 것을 못 봐요. 대화는 친구들이랑 합니다. 이해도 친구들이랑 합니다.
질문자 그렇지만 그건…… 그럼 육체적인 것만이……
심시선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그리고 규칙적인 근사한 섹스의 가치를 너무 박하게 평가하지 마세요. 스트레스 핸들링에 그만큼 도움되는 것도 잘 없습니다. 제법 괜찮은 섹스는 감은 눈에 존재하지 않는 색깔이 떠오르게 하니, 그림일기를 쓰고 싶어질지 몰라요.
질문자 육체적 관계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은요?
심시선 사흘에 한 번씩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들 말고는 결혼을 안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작중 행사 여성XX 주최 다과회(2003)[22]
진행자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 댁에 운동가들을 숨겨주셨다고 최근에야 알려졌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좀 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심시선 저 혼자 한 것은 아니고, 홍낙환씨와 함께 몇 명을 잠시 지내게 해주었던 것뿐입니다. 그 시절이야 다 그랬지요.
진행자 비밀통로까지 만드셨다고 들었는데요?
심시선 그것도 낙환씨 솜씨였어요. 마침 대각선으로 뒷집이 세 준다고 나왔기에 낙환씨가 그 집을 직원 기숙사로 만들었거든요. 직원들 젊으니 그 틈에 숨기기 얼마나 좋아요. 담장에 작게 나 있던 구멍을 좀 넓히고, 아, 물론 나중에 원래대로 고쳐줬는데 안 보이게 싸리 같은 거 심었어요. 비밀통로처럼 대단한 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두 집 다 차고가 있어서 참 용이했고…… 사람을 막 트렁크로 옮겼는데, 지금 생각하면 미안해요. 위험했던 것 같아서.
진행자 주로 어떤 분들이 거쳐갔습니까?
심시선 시위하고 야학 가르치던 학생들, 노조 만들던 노동자들이었지요. 특히 1983년 야학연합회가 사회주의 혁명을 하려 한다며 조작해가지고는 수백 명을 잡아들이던 때, 그 집에 자주들 왔어요. 야학 좀 하고 노조 좀 한다고 사람을 잡아다 고문까지 시키다니, 말도 안 되는 날들이었어요. 나는 속으로 노동 야학이라는 게 구한말에도 있었고 일제 때도 있었는데 정부가 눈이 뒤집힐 게 뭐 있나 싶었거든요. 1987년을 맞고서야 아, 그게 정말 힘있는 운동이어서 탄압을 받은 거였구나 깨달았지요, 어떤 시대는 지나고 난 다음에야 똑바로 보이는 듯합니다.
진행자 훗날 다시 만난 사람도 있습니까? 선생님께 인사라도 드리러 오지 않던가요?
심시선 음, 한 사람 우연히 마주치긴 했는데…… 실망스러운 정치인이 됐지 뭐예요.
진행자 네?
심시선 어떻게 노동운동 하던 사람이 그렇게 실망스러운 정치인이 됐을까요? 처음엔 머릿속에 뭐가 돋았나 싶었는데 아직 입원했단 소리는 없는 것 보니 그것도 아닌가봐요. 세상은 참 이해할 수 없어요. 여전히 모르겠어요. 조금 알겠다 싶으면 얼굴을 철썩 때리는 것 같아요. 네 녀석은 하나도 모른다고.
― 작중 행사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시 <부암동, 문화지식인들의 숨은 이야기> 기념 행사(2003)[23]
여전히 깨닫지 못한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날은 바람 한 줄기만 불어도 태어나길 잘했다 싶고, 어떤 날은 묵은 괴로움 때문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싶습니다. 그러나 인간만이 그런 고민을 하겠지요. 철쭉은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을 겁니다. 오로지 빛에만 집중하는 상태에 있지 않을까,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철쭉의 마음을 짐작해봅니다. 바깥의 빛이 있고 안의 빛이 있을 터입니다.
― 작중 라디오 XXX라디오 짧은 코너 <작가가 보내온 엽서>(2004)[24]
어쨌든 나는 이제 그만 말해야겠습니다. 내게 오는 말할 기회를 이제 젊은 사람에게 주십시오. 어차피 세상에 대해 할말은 다 했고, 앞으로의 세상은 내가 살아갈 세상이 아닐 테니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 다음 사람이 또 나처럼 화살을 맞고 싸움에 휘말리고 끝없이 오해받을 걸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신경줄이 너무 가늘지만 않으면 할 수 있어요. 맞는 말도 제법 했고 틀린 말도 적잖이 한 것 같은데 내가 멈추면 다음 사람이 또 맞는 말과 틀린 말을 섞어 하겠지요.
― 작중 <명사와 함께하는 저녁>(2005)[25]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마티아스 마우어와의 스캔들

독일의 화가 마티아스 마우어와의 스캔들로, 마티아스 마우어의 자살 원인이 심시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한국은 특히 유명인의 스캔들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경향이 있고, 그건 예나 지금이나 유지되고 있다. 이후 흔히 심시선 누드화 사건[26]이라고 불리우는 일로 재조명 된 바 있다. 남자 예술가들의 왜인지 모르게 기분 나쁜 느낌을 주는 작업들 또한 예나 지금이나 유지되고 있다.

마티아스 마우어는 독일의 화가로, 그 유명세가 꽤 대단했다. 예술가 친구가 많았을 뿐 아니라,[27] 본인 스스로도 오만함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28] 마티아스 마우어와 심시선은 하와이의 99번 국도에서 우연히 첫 만남을 갖는다. 세탁소에서 일하며 빨랫감을 픽업해 다니던 심시선이 퍼져 있는 차의 트렁크 위에 앉아 스케치를 하고 있는 마티아스를 발견한 것. 마티아스는 그 오만한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가 자신에게 암시를 준다고, 지침과 방향과 영감을 준다고 믿는 사람이었기에, 시선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한다.[29] 심시선이 세탁물을 직접 픽업하는 날은 트럭 운전수가 쉬는 날뿐이었는데, 그날 심시선이 지나다니는 국도에 우연히 마티아스의 차가 퍼져 있었고, 마티아스가 얻어 탄 심시선의 트럭에는 그녀가 심심풀이로 그려 놓은 그림이 있었으며, 시선이 교육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 이 모든 우연이 겹친 것은 신기할 만한 일이긴 하다.

그렇게 심시선은 마티아스 마우어를 따라 프랑크푸르트로 가게 된다. 심시선은 독일어를 차차 배우게 되는데, 독일어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어떻게든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마티아스와 자신을 휘감은 소문을 듣고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 여기서 소문은, 마티아스가 지구 곳곳에서 수집하여 뒤셀도르프로 데려왔던 여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누군가는 울면서 왔던 곳으로 돌아갔고, 누군가는 술과 약물에 중독되어 비참한 꼴이 되었고, 누군가는 더 유명한 다른 남자를 만났고, 누군가는 자살을 했고, 누군가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30] 심시선은 '운좋게 잘 독립했대'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순종적인 아시아 여자라는 역할에 순응한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런 와중에도 마티아스는 예측하기 어렵게 사나워질 때가 많았고, 그리던 그림을 찢고 작업실을 부술 때 절대 근처에 있으면 안 되었다고. 그러나 너무 멀리 가서 더 화를 돋우는 것도 안 되었다고 한다. 시선은 이를 회상하며, 마티아스는 자신을 가두거나 강간하지 않았지만 다른 방식으로 폭력적이었다고 말했다.[31][32]

시선은 마티아스의 장식품으로서 그의 활동들을 함께 했다. 그 중 하나가 마티아스의 전시 모임에 참여하는 것. 마티아스와 그 친구들은 젊고 이국적인 갤러리 오너를 그들의 모임에 종종 끼워주었는데, 그 오너 중 한 명이 심시선의 첫 번째 남편인 요제프 리이다.[33] 요제프 리도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세계시민처럼 보이기 위한 장식품이었기에,[34] 두 사람은 대화만으로도 서로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었다.[35] 그러나 요제프 리가 전시[36]에 심시선을 더한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한 마티아스의 본격적인 공격은 시작된다. 두 사람이 아무리 숨기려 애를 썼다고 한들...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는 법.

마티아스는 그의 친구들을 조종해 요제프 리를 그룹에서 고립시켰다. 그의 여자, 심시선을 건드렸다는 명목. 마티아스는 또 하나 의외의 수를 뒀는데, 첫 번째 부인과 이혼 후 내내 연애만 했었는데 이제 제대로 정착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심시선에게 프로포즈를 한다.[37] 프로포즈에 대해 시선은 당신을 존경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요제프 리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대학원을 졸업하면 뒤셀도르프를 떠나고 싶다고 완곡한 거절을 했다.[38] 이를 계기로 시선은 마티아스에게서 벗어나 이사를 했다. 이사 후 개인전을 진행하며 요제프 리와의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했다고 한다.[39]

심시선이 뒤셀도르프를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하여 살고 있던 중에, 마티아스 마우어는 자살했다. 여성을 정서적, 성적으로 착취했다는 추궁을 받는 남성의 자살이 가해로 기능하는 것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데, 2020년 전 서울시장 박원순 성폭력 사건과 2018년 배우 조민기 성범죄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40][41]시선에게 바치는 극진한, 그러나 디테일을 따지자면 실제로 일어난 일은 하나도 담지 않은 연서 겸 유서를 쓰고 사층에서 거리 쪽으로 뛰어내려 죽었다.

아래는 마티아스 마우어의 유서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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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와이안 걸.
사랑하는 그녀의 배신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나를 따라 낯선 곳에서 살아내 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그녀에게 남깁니다.[42]

[1] 책 시선으로부터, p.26[2] 심시선과 요제프 리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자녀.[3] 심시선과 요제프 리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자녀.[4] 심시선과 요제프 리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자녀.[5] 심시선의 두 번째 남편 홍낙환과 그의 첫 번째 아내 조말희의 딸.[6] 작중 등장인물인 차녀 명은의 대사에 따르면, 불교 신자라기보단 오래된 텍스트를 좋아해서 불경을 특히 많이 읽었다고 한다.[7] 그때 묻힌 게 서른 명이란 말도 있었고 일흔 명이란 말도 있었는데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책 시선으로부터, p.66[8]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1월 4일.[9] 이 사람은 상황이 안정되고도 한참 뒤에 시선에게 자주 보험을, 다단계 회사의 치약을, 온갖 쓸모없는 물건들을 팔았다. 늘, 심지어는 한겨울에도 하와이안셔츠를 입고 다니던 이 사람은 시선의 사위 태호가 끼어들어 시선을 말리려고 할 정도로 뻔한 홍보 문구를 읊어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은 그이가 좋은 물건을 챙겨준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고려해 매번 계약을 진행했다. 책 시선으로부터, p.230[10] 시선의 자녀 자매들 사이에서 그는 인천 삼촌이라고 불린다. 책 시선으로부터, p.230[11] 책 시선으로부터, p.66[12] 어쩌면 어려운 시절에 입을 하나 줄이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고, 친척 아가씨를 식모로 부리는 게 그저 불편했던 건지도 모르지만. 사실 어려운 시절에 입을 하나 줄일 수도 있을 뿐더러, 심시선이 하와이에서 돈을 벌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책 시선으로부터, p.66[13] 심시선은 거의 마지막 사진 신부이다.[14] 당시의 이민법상 남편이 데리러 오지 않으면 입국할 수 없는데, 죽은 가짜 남편이 환생해 돌아올 수는 없으므로 그 남자와 최대한 비슷하게 생긴 다른 이가 항구로 데리러 와야 했다. 이런 걸 보면 심시선은 결국 잘될 운명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될놈될.[15] 그녀의 책 『어쩌다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에서 '말이 세탁소지 세탁 공장이나 다름없었다.'라고 서술했다.[16] 책 시선으로부터, p.143[17] 책 시선으로부터, p.188[18] 책 시선으로부터, p.195[19] 책 시선으로부터, p.25[20] 셋째 아들 이명준은 이 '걔?'라는 말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고 한다. 틈만 나면 누나들, 여동생에게 놀림을 받았기 때문. 심지어는 아내에게까지도. 책 시선으로부터 p.8,22[21] 책 시선으로부터, p.7[22] 책 시선으로부터, p.18[23] 책 시선으로부터, p.216[24] 책 시선으로부터, p. 238[25] 책 시선으로부터, p.277[26] 마티아스 마우어의 미공개작 여덟 점이 독일 뒤셀도르프 코넬리우스 슈트라세의 한 건물 증축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화가가 미주 여행시에 작업한 걸로 보이는 스케치 작품과 미완성 유화 풍경화들이 다수다. 완성작으로는 뒷면에 제목이 적혀 있던 <마이 스몰 퍼키 하와이안 티츠> 가 있었다. 미주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여정중에 만나 동행하였던 심시선을 그린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작품들과 함께 복원 과정을 거쳐 K20에 특별 전시될 예정이다. - <미술XX>, 책 시선으로부터, p.48[27] 1991년 심시선이 출간한 책 이제는 지나온 갈림길. 책 시선으로부터, p.58[28] 책 시선으로부터, p.90[29] 2002년 심시선이 출간한 책 어쩌다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에 서술되어 있는 내용이다. 책 시선으로부터, p.39[30] 책 시선으로부터, p.89[31] 그녀의 손녀 우윤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은 마티아스를 만난 것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고. 괴로운 방식으로 강렬했지만, 가지 못할 세계에 가게 된 것이 그 이유. 책 시선으로부터, p.54[32] 책 시선으로부터, p.89[33] 요제프 리는 미리 당겨받은 유산으로 쾨니히스알레 근처에 작은 갤러리를 가지고 있었다. 책 시선으로부터, p.97[34]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시선보다는 지위가 나았다. 책 시선으로부터, p.97[35] 책 시선으로부터, p.99[36] 마티아스와 그 친구들이 추천한 5인의 신인전. 책 시선으로부터, p.101[37] 마티아스의 자살에 책임이 있다는 오해를 내내 받아온 시선은 사람들이 정말 사랑이었다고 할까 봐 프로포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38] 책 시선으로부터, p.103[39] 책 시선으로부터, p.104[40] 그 유명한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책 시선으로부터, p.151[41] 박원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두 개의 기사 참고.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59361
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00727_0001108890
[42] 책을 기반으로 하지만 가상의 유서. 책 시선으로부터, p.40, 151 참고.

5. 문학사적 의의

마티아스 마우어의 제자로도 그가 아무리 그녀에게 가학적이었다고 할지라도, 화가로서 여전히 칭송받고 있으므로, 한국의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준 인물로도 심시선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심시선은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낸 사람이자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며,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으로 역할하고 있다.[43]

[43] 책 시선으로부터, p.282

6. 여담

  • 작중 나이를 가리지 않고 동료 예술가들과 고루 교류하며, 어려움에 처한 이들은 적극 지원했다. 부암동 경사 끄트머리의 집에는 심시선의 친구 화가, 조각가, 사진가, 클래식 연주자, 심지어는 판소리 고수까지도 어울려 드나들었다. 전시회 팸플릿이나 도록에 실릴 평을 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작가와 꾸준히 교류하며 성실히 작성해 주었다고 한다. 책 <화가 황민하가 기억하는 심시선>에서 볼 수 있다.
화가로서 경력이 끊길 뻔하다가 팔 년? 아니, 구 년만에 개인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다시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심시선 선생에게 팸플릿과 도록에 실릴 평을 부탁했고, 선생은 전시회 전에 몇 번이나 작업 진척을 보러 오셨습니다. 완성되어가는 과정 자체를 보고 싶으셨던 걸까요? 두번째인가 세번째 오셨을 때 망설이더니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아름다워요. 무언가 엎드려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름다워요. 그런데...... 이것과 똑같은 것을 한 네 배 크기로 그려볼 생각은 없어요?"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크기만 키워도 느낌이 또 다를 것 같아서."
그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 제 안쪽의 어딘가를 건드렸습니다.
(중략)
"여자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보고 비키라지. 공간을 크게 크게 쓰고 누가 뭐라든 해결하는 건 남들한테 맡겨버려요. 문제 해결이 직업인 사람들이 따로 있잖습니까?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아주 좋다, 좋아. 좋을 줄 알았어요."
전시회에서 그렇게 흡족해하시던 심시선 선생이 가끔 뵙고 싶습니다.
― 작중 등장하는 책 그때 나를 구한 한마디, <화가 황민하가 기억하는 심시선> [44]


[44] 책 시선으로부터, p.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