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0:46:34

스티븐 제라드/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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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리버풀 FC
2.1. 2005-06 시즌2.2. 2006-07 시즌2.3. 2007-08 시즌2.4. 2008-09 시즌2.5. 2009-10 시즌2.6. 2010-11 시즌2.7. 2011-12 시즌2.8. 2012-13 시즌2.9. 2013-14 시즌2.10. 2014-15 시즌
3. 로스앤젤레스 갤럭시4. 은퇴

1. 개요

스티븐 제라드의 클럽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리버풀 FC

리버풀 근교인 하이턴[1]에서 태어나 8살의 나이에 리버풀 FC 유스 팀에 입단하였다.

1998년 18세의 나이로 리버풀 1군에 콜업되며 프로에 입문하였고, 2003년 23세의 어린 나이에 사미 히피아로부터 주장 완장을 물려받고 뛰어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데뷔 초창기에는 라이트백으로 시작하여 이런저런 땜빵으로 들어가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던 시절에는 투쟁적인 태클이 일품인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이후 점차 공격적인 롤을 소화하기 시작하였다. 특급 공격수와의 시너지가 매우 좋은 선수로, 2000년 대 초반에는 마이클 오언과의 호흡이 돋보였고 이후에는 페르난도 토레스를 보좌하는 세컨드 스트라이커와 같은 롤을 소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은 공격적인 롤을 맡는 중앙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슛도 일품인데, 종종 해결사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기로는 04-05 챔스 올림피아스코스 전과 05-06 FA컵 결승전이 있다.

제라드는 어린 시절부터 슈퍼 유망주로 유명했으나 하필 파트너가 2001년 발롱도르를 수상한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이라 본의 아니게 약간 가려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언이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04-05 시즌부터 리버풀의 진정한 에이스로 거듭나며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로 도약하게 된다. 04-05 챔피언스리그 당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올림피아코스전에서 리버풀은 16강 진출을 위해서는 2점 차 이상의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히바우두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더욱 암울한 상황이 되었지만, 제라드는 코너킥 상황에서 어시스트를 하는 등 활약하였고 희망이 사라져 가던 86분에 본인 최고의 골로 자주 꼽히는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팀의 3번째 골을 넣어 리버풀을 16강에 진출시킨다.

이후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에서 레버쿠젠, 유벤투스, 첼시를 모두 꺾는 데에 크게 공헌했다. 이 시즌 리버풀은 리그에서는 부진하며 5위에 그쳤으나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후보인 유벤투스와 첼시를 연속으로 꺾고 올라오는 저력을 보여주며 결승에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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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AC 밀란과의 결승전, 제라드는 0-3으로 뒤져 있던 상황에서 리세의 크로스를 환상적인 헤더로 연결해 만회골을 기록하며 분위기를 살려냈고 이후 2-3까지 따라붙은 상황에서 젠나로 가투소와의 경합 과정에서 넘어져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3-3 동점을 만들었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리버풀의 승리로 마감된 이 경기는 현재까지도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리며 챔피언스 리그 역사에 남을 역대급 결승전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 경기에서 제라드의 활약상은 절대적이었다. 또한 제라드는 역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주장들 중 두 번째로 어린 나이라는 기록을 달성하였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유지 중인 기록이다.[2] 이러한 활약으로 이 시즌 UEFA 올해의 클럽 선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되며 발롱도르 3위를 기록한다.[3]

하지만 이 시즌 리버풀이 리그에서는 부진하면서 이적설에 휘말렸으며, 특히 시즌 전에도 제라드에게 구애했던 주제 무리뉴의 첼시가 그를 적극적으로 원했다. 이 이적설은 시즌 내내 화제가 되었는데, 제라드는 04-05 시즌 내내 첼시 이적설을 딱히 부인하지 않는 태도로 리버풀 팬들의 질타를 받았고 해설자들도 리버풀이 첼시와 경기할 때 마다 제라드의 첼시행 가능성을 언급했다. 오죽했으면 제라드가 리그컵 결승전에서 자책골을 넣어 첼시의 동점골을 만들었을 때 "저게 아마 첼시를 위한 제라드의 첫 번째 골일 겁니다!"라는 멘트까지 쳤을까. 일부 리버풀 팬들은 이 경기 패배로 리그컵 타이틀을 첼시에 내준 이후 방송 인터뷰에서 제라드에 대해 질문하자 "그 새X는 필요 없으니 첼시로 꺼져도 됩니다"라며 그를 비난했다. 거기에 첼시와 챔피언스리그 4강 대진이 형성되자 압도적인 여론이 당시 리그를 독주하던 첼시의 결승행을 예상하는 동시에 리버풀이 패해서 결승 진출에 실패한다면 제라드가 첼시로 떠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버풀은 이 시즌 모든 예측을 뒤집고 첼시와 밀란을 차례로 꺾으며 5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 제라드의 이적설도 사그라드는 듯 했다.[4] 실제로 제라드도 우승 이후 이적설에 대해 "어떻게 이런 환상적인 밤 이후 떠날 수 있겠는가"라는 대답을 내놨다. 하지만 첼시의 계속된 구애에 우승 이후 제라드는 결국 이적 요청을 했으며 이는 팬들의 폭동에 가까운 반응을 이끌었다.

2018년 10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 나온 제라드의 다큐멘터리 "Make Us Dream"에 따르면 제라드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이후 방황했다고 한다. 과연 자신이 이 팀에 더 기여할 수 있을까, 더 나은 클럽에서 리그 우승과 개인 수상을 노려도 좋지 않을까, 자신을 좋아하고 원하는 감독 밑에서 뛰어도 되지 않을까[5], 리버풀에서의 엄청난 기대와 사랑이 결국 자신에게는 독이 되지 않을까[6] 하는 생각과 함께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특히나 아버지 폴 제라드의 말에 따르면 팬들이 제라드의 유니폼을 불태우는 장면을 TV에서 목격하자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당시 방황하던 제라드를 도와준 것은 그의 아버지였는데, "선택은 맡기겠지만 다른 팀으로 떠난다면 그곳에선 여기 팬들만큼 너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조언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아마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 10명 중 9명이 내 상황이었다면 첼시로 떠났겠지. 하지만 나는 그 선택을 했다면 지금쯤 매우 후회했을 것이다. 나는 10명 중에 9명이 아니라 10명 중 1명이니까"라며 내레이션하는 장면은 간지폭풍. 결국 제라드는 4년 재계약을 맺고 리버풀에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2.1. 2005-06 시즌

05-06 시즌 FA컵에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와의 결승전에서 3-2로 뒤져 있는 상황에서 후반 45분이 경과하자마자 엄청난 중거리 슛으로[7] 경기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고 리버풀은 우승했다. 제라드는 이 경기에서 환상적인 로빙 패스로 지브릴 시세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강력한 발리 슈팅으로 2번째 골을 터뜨렸으며 위의 중거리 슛으로 3번째 골까지 넣으며 리버풀의 3골을 모두 만들어 내는 맹활약을 했다. 결승전 임팩트가 크긴 했으나 해당 시즌 PFA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쥘 정도로 시즌 내내 우수한 활약을 펼쳤고 리버풀도 리그 3위를 거머쥐며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확보했다.

2005-06 시즌: 53경기(선발 49경기) 23골 1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2 32 0 10 5
챔피언스 리그 7 5 2 0 1
FA컵 6 6 0 4 6
EFL컵 1 1 0 1 0
클럽 월드컵 2 2 0 1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5 3 2 7 3
합계 53 49 4 23 15

2.2. 2006-07 시즌

이어지는 06-07 시즌에도 PFA 올해의 팀에 4년 연속으로 선정되고 2007 FIFA FIFPro 월드 XI에 선정되는 등 리그와 유럽 대항전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고 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행을 다시 한 번 견인하는 등 계속해서 에이스이자 주장으로서 맹활약했다.

2006-07 시즌: 48경기(선발 43경기) 7골 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6 35 1 7 2
챔피언스 리그 7 5 2 0 1
FA컵 1 1 0 0 0
EFL컵 1 1 0 1 0
커뮤니티 실드 1 0 1 0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1 1 0 0
합계 48 43 5 7 3

2.3. 2007-08 시즌

07-08 시즌에도 제라드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알론소, 마스체라노와 중원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들이 3선에서 굳건히 자리를 잡으면서 제라드는 2선에서 공격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스트라이커 자리에는 페르난도 토레스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부터 이적, 그 유명한 제토라인을 형성하면서 팀의 리그 4위와 챔피언스리그 4강행을 이끌었다. 이 시즌 활약으로 PFA 올해의 팀에 5회 연속으로, FIFA FIFPro 월드 XI에 2년 연속으로 선정되며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로서 인정을 받았다. FA컵, 챔피언스리그, 리그컵, UEFA컵, UEFA 슈퍼컵을 모두 우승해본 스티븐 제라드에겐 이제 리버풀의 오랜 숙원이기도 한 리그 우승만 남았다.

2007-08 시즌: 52경기(선발 47경기) 21골 17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4 32 2 11 8
챔피언스 리그 12 12 0 6 5
FA컵 3 1 2 3 2
EFL컵 2 1 1 1 2
챔피언스 리그 예선 1 1 0 0 0
합계 52 47 5 21 17

2.4. 2008-09 시즌

08-09 시즌에는 제라드가 리버풀에서 뛴 이후로 최고의 스쿼드에서 뛰게 되었다. 이 스쿼드가 얼마나 강했냐면 아무리 쇠약한 상태였다지만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무려 챔피언스리그 16강 1-2차전 합계 5-0을 기록한 팀이었고, 맨유를 상대로도 리그에서 더블을 기록, 특히 OT에서 1-4로 맨유를 파괴시켜 버린 그 유명한 OT 대첩을 달성한 팀이다. 제라드는 이 팀의 중심으로서 커리어 최다 골(리그 16골, 시즌 24골 13어시스트)을 기록하고, 리그 우승까지 노렸으나 맨유에 승점 4점이 뒤져 리그 우승에 아쉽게 실패하고 만다. 첼시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에 나왔지만 1:3으로 졌고, 2차전엔 명단제외였다.[8]

이 때의 제라드-토레스 라인은 막강한 파괴력으로 유명했지만, 정작 토레스가 부상 등의 이유로 리그에서 24경기밖에 뛰지 못하면서 은고그 등의 선수가 토레스를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웨인 루니가 30경기, 카를로스 테베즈가 29경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33경기,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31경기를 뛴 점을 감안하면 특히나 제-토 라인에 공격력이 집중된 리버풀에서 토레스의 부재는 타격이 매우 컸다. 리버풀은 단 2패밖에 하지 않은 반면 11회나 무승부를 거두었으며, 이 중 2번만 승리했다면 리버풀은 리그 우승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해 제라드의 발롱도르 순위는 9위. PFA 올해의 팀에 6회 연속, FIFA FIFPro 월드 XI에 3년 연속으로 선정되며 여전히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 자리를 지켰다. 이때 제라드의 실력이 어느정도였냐면, 19-20 시즌 커리어 하이를 찍은 케빈 더 브라위너의 주요 스탯 대부분을 뛰어넘는 퍼포먼스였다.[9] 출처2 90분당 득점 : 제라드(0.5회) > 데브라이너(0.4회) / 90분당 스루패스 : 제라드(2.1회) > 데브라이너(1.0회) / 90분당 롱패스 성공 : 제라드(4.3회) > 데브라이너(3.9회) / 태클 성공률 : 제라드(69%) > 데브라이너(53%) / 볼 경합 성공률 : 제라드(52%) > 데브라이너(47%) / 90분당 어시스트 : 제라드(0.4회) < 데브라이너(0.6회)] 또한, 득점 기록 때문에 제라드의 최전성기라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단 가장 공격적인 위치에서 뛴 시즌이고 이 시기 제라드의 패스, 중거리 슛[10] 등 기술적인 부분과 주력, 민첩성, 판단력이나 반응력 등 30세를 코 앞에 둔 시점에 모두 이미 이전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 편이었고, 세컨드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본격적으로 뛴 것도 첫 시즌이었는데 그럼에도 저 정도로 한 걸 생각하면 대단하다. 여러 추문에도 불구하고 케니 달글리시이안 러쉬 등 레전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리버풀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프랜차이즈 선수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이 정도 선수임에도 만 30세가 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리그 우승이 없어 이러다가 은퇴할 때까지 리그 우승도 못 해 보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고 이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베니테스 & 제라드, 토레스라는 막강한 척추와 함께 매우 강력한 시즌을 보낸 리버풀이었고 고질적인 스쿼드 뎁스 문제만 이적 시장에서 해결한다면 리그 우승은 계속 재도전할 수 있는 팀이지 않나 하는 여론이 대다수였다.

2008-09 시즌: 44경기(선발 41경기) 24골 1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1 30 1 16 9
챔피언스 리그 8 7 1 7 1
FA컵 3 3 0 1 1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1 1 0 0
합계 44 41 3 24 11

2.5. 2009-10 시즌

하지만 09-10 시즌부터 사비 알론소를 팔고 알베르토 아퀼라니를 영입한 리버풀은 충격적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구단주였던 질 & 힉이 그동안 빚을 감추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팀은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고, 안팎에서 어수선했던 리버풀은 08-09 시즌 리그 우승에 대한 가능성만을 본 채 암흑기로 잠겨야 했다. 30대에 제라드의 리그 우승에 대한 꿈도 그렇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또한 그는 여전히 월드클래스였지만, 알론소가 빠지고 토레스가 데뷔 시즌 만큼의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부하가 걸려 부상을 자주 당하기 시작했다. 커리어 말년 내내 그를 괴롭힌 만성적 사타구니 부상도 이 시즌부터 발생. 챔피언스리그 트로피와 리그 트로피에서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개인 수상과도 멀어졌다. 그리고 2010년 5월 2일,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디디에 드록바에게 패스 미스를 범해 팀의 패배에 기여했다.[11]

2009-10 시즌: 49경기(선발 47경기) 12골 1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3 32 1 9 7
챔피언스 리그 5 5 0 0 1
유로파 리그 8 8 0 2 4
FA컵 2 2 0 1 1
EFL컵 1 0 1 0 0
합계 49 47 2 12 13

2.6. 2010-11 시즌

이렇게 리버풀이 암흑기에 빠져들면서 2010년 여름 첼시와 인테르에서 제라드에게 구애했던 주제 무리뉴가 부임한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 터졌고 한때 기정 사실이 되는 분위기까지 갔으나 결국 잔류를 선언, 2010-2011 시즌도 리버풀에서 뛰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즌에도 호지슨 감독의 전술에서 제라드가 짊어지는 부담이 커진 데다 토레스의 부진, 제라드의 부상까지 겹치면서 리버풀은 나락까지 떨어졌다. 케니 달글리시 부임 이후 제라드도 살아나고 토레스도 부활하나 싶었지만, 토레스가 첼시 FC로 이적하고 말았다. 안타까운 것은 이적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과의 인터뷰에서 제라드는 "토레스가 드록바보다 훨씬 더 잘하지"라며 끈끈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래도 새로 들어온 하울 메이렐레스가 좋은 모습을 보이며 제라드를 도왔다. 팀이 망하는 와중에도 리그 전반기 맨유 원정에서 토레스가 얻어낸 PK와 FK을 모두 득점으로 연결했지만 베르바토프의 헤트트릭에 패했다. 토레스가 나가고 앤디 캐롤이 들어온 후,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캐롤이 멀티골을 기록하며 반전하나 싶었지만 일시적 상승이었고 결국 6위로 리그를 마무리했다.

2010-11 시즌: 24경기(선발 22경기) 8골 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1 20 1 4 5
유로파 리그 1 0 1 3 0
FA컵 1 1 0 0 0
유로파 리그 예선 1 1 0 1 0
합계 24 22 2 8 5

2.7. 2011-12 시즌

2011-12 시즌에는 리버풀이 폭망 상태라 큰 주목도 못 받고 부상으로 리그를 17경기만 출전해서 그냥저냥 괜찮게 플레이했다. 그래도 워낙 수준 높은 선수라 맨유와의 홈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 2012년 3월 13일 안필드에서 펼쳐진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을 3:0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 시즌부터 리버풀의 에이스 자리는 제라드가 아닌 지난 시즌 후반기에 들어온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옮겨갔다.

09-10 시즌부터 시작된 팀의 암흑기와 계속되는 부상에 제라드는 다시 정신적으로 지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은 큰 힘이 되었고, "Make Us Dream"에서도 당시 축구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술회했다. 유로 2012 이후 유프 하인케스FC 바이에른 뮌헨에게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12-13 바이에른 뮌헨이 트레블 팀임을 감안했을 때 제라드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11-12 시즌: 28경기(선발 21경기) 6골 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8 12 6 5 2
FA컵 6 6 0 1 3
EFL컵 4 3 1 2 0
합계 28 21 7 6 5

2.8. 2012-13 시즌

2012-13 시즌, 로저스 감독 체제에서 대대적인 전술 개편에 들어간 팀에 녹아들지 못하며 제라드 없는 리버풀을 생각해야 한다는 여론이 늘어났으나 리그 절반이 지난 2013년 1월 3일 기준 리그에서만 5골 10도움으로 클래스를 보여주는 중. 특히 중원에서 처진 자리로 내려간 후 얼리 크로스나 쭉쭉 뻗는 롱패스를 기가 막히게 선보이며 내가 제라드고 내가 곧 뻥글랜드니 이게 진짜 뻥축구라 말하고 계신다. 공미 자리에서는 부족해 보이던 창조성이 중원 아래로 내려가니 살아났다. 짧은 패스를 바탕으로 한 점유율 축구를 추구하던 로저스 감독 체제에서도 초반에 홀로 이질적인 뻥패스를 구사하며 삐그덕거리는 탓에 세월에 뒤처졌나 싶더니 어느새 점유율도 적당히 지키고 롱볼도 적당히 차는 축구 도사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27라운드 기준 카를로스 테베스와 도움 공동 1위를 기록 중이다.

맨시티전에서 오랜만에 중거리 하프 발리 슛으로 골을 넣었다.



몸 상태가 회춘한 것인지 12-13 시즌 전 경기를 출장하고 있었으나, 결국 시즌 막바지 어깨 수술 때문에 아쉽게도 전 경기 출장을 기록하진 못했다. 하지만 팀 내 어시스트 1위를 기록하고 어깨 수술 전까지 리그 경기를 모조리 출전한 것으로 보아 포지션을 후방으로 옮긴 것이 상당히 유효했던 모양이다.

2012-13 시즌: 46경기(선발 42경기) 10골 1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6 36 0 9 9
유로파 리그 6 4 2 0 1
FA컵 1 0 1 0 0
EFL컵 1 0 1 0 1
유로파 리그 예선 2 2 0 1 0
합계 46 42 4 10 11

2.9. 2013-14 시즌

13-14 시즌 새로 영입된 콜로 투레가 리버풀에 오자마자 “제라드로부터 리버풀 정신을 봤다”라는 인터뷰를 했고 수아레스와 로저스의 화해 자리를 주선하는 등의 모습을 볼 때 주장으로서의 역할 이상을 해 주고 있다.

2013년 10월 19일 EPL 8라운드 뉴캐슬전에서 루이스 수아레스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프리미어리그 통산 100호 골을 달성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24번째로 100골을 돌파한 선수가 되었으며 디디에 드록바와 같은 기록이라고 한다.

또한 12-13 시즌부터 롱패스 성공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제라드 밑으로는 죄다 골키퍼들이 순위권이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 기록. 국대에서도 롱패스로 뻥글랜드를 먹여 살렸고, 나이가 들면서 시야도 더 넓어졌기 때문인 듯. 사실 예전부터 롱패스는 기가 막혔는데 포지션을 밑으로 옮기면서 더욱 횟수가 늘어나서 눈에 띄는 것.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자리에서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고 중추 역할을 하며 팀의 에이스라는 타이틀은 2011년에 들어온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넘겨 줬지만 주장이자 팀의 척추로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13-14 시즌 리버풀은 후반기에 역대급 페이스를 보이며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첫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원래 목표는 챔피언스리그 진출이었고 실제로 12월 막판에는 3~5위를 웃돌고 있었지만 후반기에 막강한 공격력을 앞세워 연전연승을 거두며 어느새 선두권에 위치했고, 그렇게 사그라들었던 제라드의 열망도 마지막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34라운드 경기에서 힐스보로 참사 25주년을 맞이한 안필드의 엄청난 분위기 속에 우승 경쟁 최대의 라이벌인 맨시티를 홈에서 극적으로 3:2로 꺾었을 때 제라드가 흘린 기쁨의 눈물은 거의 모든 축구 팬들의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This does not f****** slip now. Listen, listen. This is gone. We go to Norwich. Exactly the same. We go again. Come on!
이제 *발 미끄러져선 안돼. 들어, 들으라고. 이 경기는 끝났어. 그리고 이제 우리는 노리치로 간다. 거기서도 우리는 똑같이 하는 거야. 가자!플래그 세우면 위험한데

그리고 35라운드 노리치 시티 FC전까지 11연승을 달리며 남은 3경기에서 2승 1무만 해도 자력 우승이 가능한 상황이라 리버풀 팬들의 리그 우승을 향한 기대치는 최고조에 달했고, 그랬기에 다음 라운드 첼시와의 홈 경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그러던 36라운드, 첼시전에서 0:0으로 팽팽한 균형을 맞추고 있던 전반 종료 직전, 사건이 터지고 만다.


SBS 중계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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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현: (제라드가 넘어지자) 자!! 이건 뭔가요!!
배성재: 자 끊어내고 올라갑니다! 뎀바 바, 골키퍼와 1:1 기회!! 뎀바 바!! 뎀바 바!!
장지현: 들어가요~!! 뎀바 바~!!!
배성재: 뎀바 바~!! 첼시가 선제골을 뽑아냅니다!!
일명 훔기도문. 2013-14 시즌 프리미어 리그 36라운드 리버풀 vs 첼시 경기 중.

제라드가 사코의 패스를 받다가 퍼스트 터치에서 실수한 후 예상치 못하게 근처에 있던 뎀바 바에 당황해 급하게 볼을 점유하려던 도중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고, 뎀바 바가 볼을 낚아채 그대로 선제골을 득점했다.[12] 다급해진 리버풀은 후반전에 10백 형태로 나오는 첼시에게 맹공을 퍼부었으나 좀처럼 첼시의 방패는 뚫리지 않았고, 끝내 경기 종료 직전 페르난도 토레스의 패스를 받은 윌리안에게 추가골을 허용하면서 무너져 내렸다. 이 패배로 자력 우승의 기회는 맨시티에게로 넘어갔다. 일정상으로 맨시티가 너무나도 유리한지라 만약 이대로 맨시티가 2연승으로 우승을 확정 짓게 된다면 이 실수는 리버풀 팬들에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제라드 본인에게 평생 잊혀지지 않을 뼈아픈 기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콥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그 누구보다도 리버풀의 리그 우승을 갈망했던 게 바로 제라드였고 13-14 시즌 그의 주장이자 핵심 미드필더로서의 공헌이 리버풀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라는걸 알기에 차마 그 실수로 그를 비난하지 못했다. 이 때 그는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정신적인 슬럼프에 빠졌다고 한다. 물론 첼시팬들은 바로 제라드를 까는 노래를 불렀고 이에 나온 게 바로 '제라드를 비웃어?'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실 이때 몸 상태가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고 한다. 13-14 시즌에 보여줬던 우수한 퍼포먼스와는 달리 제라드의 몸 상태는 시즌 내내 진통제와 같은 약물에 의존하면서 버텼을 정도로 매우 안 좋았다. 몇 년 전 발생한 사타구니 부상과 서른 즈음 해서 급격하게 늘은 여러가지 잔부상, 그리고 어쨌든 나이가 서른이 훌쩍 넘어간 시점이었기 때문에 체력적인 한계가 분명해진 관계로 당시의 제라드는 본인도 자기 자신을 잘 돌보고 팀 차원에서도 출전 시간을 조절 해줬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의 자리를 메워 줄 자원이 팀에 마땅히 없었고[13] 마침 드디어 찾아온 리그 우승 기회에 본인도 주장으로서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무리를 해왔던 것.[14] 첼시전 역시 경기 이틀 전 차를 타고 내리기 힘들 정도로 등쪽에 심한 통증을 느꼈고 결국 등에 마취 주사와 엄청난 양의 진통제를 맞고 출전을 강행했다. 그리고 결과는... 몇 년이 지나 제라드는 이때를 회고하며 첼시전을 뛰었으면 안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37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 FC전에서 3골 차 리드에도 부족한 골득실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하게 공격 일변도로 나가다가 3:3 무승부를 기록하며 사실상 리그 우승은 좌절, 결국 맨시티에게 리그 우승을 내주게 되면서 새드엔딩으로 시즌이 끝나고 말았다. 단지 축구적인 결과 뿐만 아니라 제라드의 커리어와 인생에 있어서도 이 시즌 첼시전의 그 실수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축구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마음에 리버풀 축구 구단과 도시를 떠나게 됐으니 정말 안타까운 시즌이 아닐 수 없다.

2013-14 시즌: 39경기(선발 38경기) 14골 14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4 33 1 13 13
FA컵 3 3 0 1 0
EFL컵 2 2 0 0 1
합계 39 38 1 14 14

2.10. 2014-15 시즌

14-15 시즌에는 폼이 매우 떨어져 좋지 못한 경기력으로 비판을 받았다. 압박을 쉽게 풀어 나가지 못하고 나이에 따른 기동력 저하로 수비 가담에서도 한 발 늦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제라드를 빼자니 최근 상황이 상황인지라 팬들은 전문 수미를 배치하여 제라드의 수비 부담을 덜어 주고 제라드를 공격적인 역할에 치중하게 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실제로 수비적인 부담이 적은 역할을 맡았을 때 기존보다 향상된 경기력을 보여 줬다.

BBC에서 14-15 시즌이 끝나고 리버풀을 떠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BBC의 공신력을 생각해 보면 시즌이 끝난 후 제라드가 이적할 것은 기정 사실로 보인다. 결국 리버풀 공식 홈페이지에 제라드가 떠난다는 내용의 기사가 올라오면서 유스 시절 포함 27년의 리버풀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2015년 1월 4일 ESPN 보도에 따르면 MLS LA 갤럭시와 연봉 66억에 1년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본인의 마지막 노스웨스트 더비였던 30라운드 경기에서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로 나왔는데, 경기장에 들어간 지 불과 38초 만에 안데르 에레라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밟아 퇴장당하고 말았다. 이 38초 퇴장 사건으로 제라드는 훔바훔바 + 관운장 = 관훔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도 언급되면서 훔바훔바 사건과 함께 흑역사 양대산맥으로 취급받고 있다. 또한 이는 PL 역사상 최단 시간 퇴장이기도 하다.[15]

FA컵 4강, 아스톤 빌라 FC와의 경기에서는 별다른 활약 없이 팀의 1:2 패배를 바라봐야 했으며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시즌도 결국 무관으로 마감하게 되었다.

프리미어리그 35라운드 QPR전에서 PK를 실축하면서 역적이 되는가 싶었지만 필리페 쿠티뉴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받아 역전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2:1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파일:19379FCC-9463-436B-A9E1-57879928A0C0.jpg
파일:external/i.dailymail.co.uk/28C2198200000578-3085000-image-a-30_1431847630090.jpg

2015년 5월 17일, 37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 FC와의 안필드 고별전에서 풀타임을 뛰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뛰어 다녔다. 하지만 팀은 1:3으로 패배했다.

그리고 38라운드에서 스토크 시티 FC 원정을 떠나며 제라드는 리그 최종전이자 리버풀/EPL 고별전을 치르게 되었는데...팀이 전반에만 무려 5골을 처먹는 결과를 봐야했다.이 막장 사태의 원인 중 하나는 로저스 감독이 제라드가 EPL 고별전에서 골을 넣게 해준답시고 제라드를 원톱에 넣는 기행을 저지른 것도 한몫했다. 이 때문에 뻥 뚫린 중원과 기동력이 떨어진 최전방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으니. 뭐 로저스 감독이 원한대로(?) 제라드는 팀이 처참하게 두들겨 맞은 후반에 1골을 만회하며 고별전에서 골을 넣긴 했지만, 팀은 최종적으로 1:6으로 탈탈 털렸으니 고별전에서 한 골 넣었다고 좋아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덤으로 이 패배로 리버풀은 리그 5위 자리를 토트넘에게 빼앗겼다. 추가로 같은 날, 리그 우승을 차지한 첼시의 디디에 드록바가 마지막 선덜랜드전에서 찬사를 받으며 EPL 고별전을 끝낸 것과 더욱 대조되었다.[16] 대부분의 기사에서도 <두 레전드의 극과 극인 EPL 은퇴 경기>라는 제목을 달았다.

축구 인생의 전성기에 다른 팀으로 이적해서 더 많은 명성과 우승컵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는 끝내 리버풀을 지켰고, 이제 그 리버풀을 떠난다.

2014-15 시즌: 41경기(선발 36경기) 13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9 25 4 9 1
챔피언스 리그 6 5 1 2 0
FA컵 3 3 0 2 0
EFL컵 3 3 0 0 0
합계 41 36 5 13 1

3.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파일:external/i3.mirror.co.uk/Englands-Steven-Gerrard-and-Frank-Lampard.jpg

제라드는 LA 갤럭시로 가서도 등번호 8번을 달았다. 잉글랜드와 EPL의 레전드 미드필더 램파드와 제라드를 이제는 EPL이 아닌 MLS에서 볼 수 있다.

2015년 7월 12일, 멕시코 리그 소속 클럽 아메리카와의 기네스컵 경기에서 비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7월 14일 US 오픈컵 8강전에서 레알 솔트레이크를 상대로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46분 출장에 팀은 0:1로 패배.

7월 18일 산 호세 어스퀘이크전에서 MLS 데뷔전을 치뤘고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고작 1경기만 뛰고 2015 MLS 올스타에 선정되어 7월 29일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다. 1경기만으로 올스타에 선정된 것에 대하여 기존 선수들의 불만이 있었다.

2015 시즌 기록은 19경기 3골 4도움. 괜찮은 활약이었지만 투자한 만큼 좋은 활약을 기대했었던 팬들은 먹튀라고 욕하고 있다.

10월 8일 미러에서 위르겐 클롭이 제라드의 은퇴 후 코치진을 보장한 복귀를 추진한다는 기사가 났다.

하지만 본인은 아직 현역 생활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LA와 계약이 만료되는 2016년 12월 31일 현역 은퇴 후 리버풀의 코치로 돌아온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게 사실이라면 일단 MLS에서 최소 한 시즌 더 뛰는 건 확정인 듯.

결국 2016년 11월 15일 LA 갤럭시를 떠난다는 오피셜이 떴다.

4. 은퇴

LA 갤럭시에서 2시즌을 뛰고 계약이 만료된 후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1] 영국 내에서 손꼽을 정도로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한 막장 지역으로, 하이턴 출신인 축구선수 조이 바튼은 하이턴에서 살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공격성을 지녀야 한다고 회고하기도 했다.[2] 1위는 1993년 UCL 우승 팀인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의 주장이었던 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디디에 데샹.[3] 이 때 제라드의 점수는 142점으로 2위 램파드의 148점과 근소한 차이였다. 1, 2위 표에서는 제라드가 더 많았으나 3, 4위에서 램파드의 표가 더 많았다고 한다.[4] 심지어 밀란 전 킥오프 직전에도 해설진이 제라드의 리버풀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했다.[5] 라파와 제라드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라파의 차가운 성격은 제라드가 당시 가진 성공에 대한 부담감과 어린 나이에 리버풀의 주장을 역임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덜어 주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고, 제라드의 이적설에도 라파는 그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스탠스였기 때문. 축구에 만약이란 없지만 라파와는 정 반대의 성향을 지닌 현 감독인 위르겐 클롭 하의 제라드는 어땠을까하는 콥들의 아쉬움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6] 실제로 제라드는 이 시즌 내내 엄청난 부담감에 잠겨 있었다. 마이클 오언이 떠나자 팀의 유일한 월드클래스 선수가 되었으며, 시즌 내내 팀은 부진했고 아스날, 맨유와의 경쟁도 힘든 마당에 첼시까지 비상해 리그에서는 더더욱 리버풀이 뒷전으로 밀렸고, 본인은 24세라는 어린 나이에 리버풀의 주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7] 제라드가 체력이 다 떨어진 상황에서 마지막 힘을 쏟아 부었다고 말한 이 골은 BBC 선정 05-06 시즌 최고의 골이 되었다.[8] 2차전은 챔피언스리그 역사에 남을 난타전 끝에 4:4 무승부로 끝났다.[9] [[https://www.premierleague.com/players/1575/Steven-Gerrard/stats?co=1&se=17]|출처1][10] 포지션도 포지션이지만 중거리 슛 시도 자체를 이전보다도 더 안 하고 시도해도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07-08 시즌만 하더라도 중거리 슛을 7개나 터뜨렸기에 팬들마저 제라드의 중거리 슛이 어디 갔냐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 했다. 이 때 이미 사타구니의 내구성이 많이 떨어져 있기도 했다. 시도 자체를 적게 하게 됐고, 슛을 하더라도 풀 스윙으로는 못 하는 상황이다.[11] 첼시가 맨유에게 승점 1점차로 우승경쟁에서 앞서 있는 상황이어서 만약 리버풀이 첼시에게 이기거나 비긴다면 맨유의 우승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맨유가 09-10 시즌에서 우승을 한다면 잉글랜드 최초로 리그 4연패+총 우승 횟수에서 리버풀을 넘어서게 되는 상황인지라 경기 전부터도 리버풀이 맨유 우승하는 꼴 못봐주니 첼시에게 일부러 져 줄 수도 있다라는 농담까지 나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12] 이 실수를 할때 하필이면 절묘하게 포착된 넘어지는 모습이 개처럼 엎드리려 하는 모습같아보였고, 누군가가 그 순간을 개처럼 기어다니는 것처럼 편집하고 뎀바바가 기어다니는 제라드를 끌고 다니는것처럼 합성한 짤방이 흥해서 제라드는 뎀바 바의 개라는 멸칭을 얻었다.[13] 당장 바로 직전 시즌에도 제라드는 리그에서만 3222분을 출전하는 혹사를 당했다.[14] 이 시즌 제라드는 결국 리그에서만 2900분의 출전 시간을 기록하게 된다.[15] 당시 펠레는 노스웨스트 더비를 두고 웨인 루니와 스티븐 제라드를 키플레이어로 뽑았는데, 루니는 PK를 실축하고 제라드 광속퇴장을 당하면서 펠레의 능력이 다시금 입증되었다.[16] 드록바는 0:1로 뒤져있던 전반전에 교체되었지만 첼시는 3:1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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