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김초엽 작가가 2019년 발표한 SF 단편소설.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되어 있는 첫번째 작품이다. 주인공 '데이지'는 순례자들에 대한 질문[1]의 대답을 얻기 위해 순례자들의 기록을 찾고 그들의 길을 따라가려고 한다. 귀환자의 눈물의 의미와 마을의 시스템을 밝히고 마침내 순례길에 떠나는 이야기.2. 등장인물
- 데이지
편지를 쓰고있는, 즉 이 이야기의 화자. 소피에게 편지를 남겨두고 떠나려고 한다. 제목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데이지가 하는 질문이다. 울고 있던 귀환자[2]를 보고난 후 데이지는 지구로 떠난 순례자들 중 일부가 돌아오지 않는 점에 대해 의문을 품고 학교 뒤뜰의 도서관[3]에 가서문지기를 살살 구슬려금서 구역으로 들어간다. 정보를 얻은 데이지는 지구에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이며 편지는 소피에게 언젠가 소피가 순례자가 되었을 때 만나자고 말한다.
- 소피
데이지가 쓴 편지를 받게 될 사람. 데이지와 가장 친한 친구로 추정된다.[4]
- 뒤뜰을 지키는 문지기
뒤뜰을 지키고 있다고는 말하지만 데이지의 예상대로 뒤뜰에 있는 금서 구역을 지키는 것이 실제 임무였다. 도서관에 오려는 사람들을 모두 막았지만 데이지의 행동을 보고는 '자신이 알던 한 아이'[5]가 떠오른다며 문을 열어준다.[6]
- 순례자들
순례는 성년식의 일종으로서 순례자들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면 '귀환자'가 되며 어른의 취급을 받게 된다. 순례자가 되는 나이는 18살이라고 한다.[7] 시초지의 방식으로 옷을 차려 입어야 하며 이동선을 타고 떠나게 된다.
- 오스카
선생님께 "왜 역사가 없나요"라며 질문한 남자아이.[10]오스카의 질문으로 데이지는 '행복의 근원'을 찾기 위해 금서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한마디로 데이지의 행동에 대한 동기를 제공한 캐릭터인 셈.
- 올리브
데이지가 금서 구역에서 찾은 설립자들의 기록에서 보게 된 여자 설립자. 얼굴에 큰 흉터가 있으며 시초지의 기술로 전자 책을 만들어 금서 구역에 보관했다. 전자 책은 올리브의 어릴 적 모습과 한 문장을 보여준다.2170. 10. 2. 우리는 왜 이곳에 왔는가
지구로 가서 자신의 대한 기록을 남긴 것. 올리브는 자신처럼 얼굴에 큰 흉터를 지닌 마을의 설립자, 릴리 다우드나의 흔적을 찾아서 그녀의 고향인 지구에 오게 된다.
- 델피[11]
올리브에게 호의적인 여자. 바이오해킹으로 개조된 사람이지만 스스로를 실패한 개조인이라고 칭한다. 자신을 통제하고 억압하던 부모를 피해 유전자 지문을 바꾸었고 그 과정에서 한 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된다. 올리브가 다른 남자들에게 모욕을 당하자 쫓아내었고 올리브가 찾는 릴리의 진실을 같이 도와 찾는다.
- 릴리 다우드나
마을의 여자 설립자. 2035년에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난 후 7살에 보스턴으로 이주했다. 생명공학자로서 명성을 떨치며 엘리트 과학자로 성장하다가 어느 날 자취를 감추었다.
- 디엔
바이오해커 집단 중 가장 인기가 많고 기술이 뛰어났던 해커. 인간배아 디자인의 첫 성공자였으며 나타난 후 5년만에 인간 배아 시술은 유행하게 된다. 문제는 기술을 모른 채로 흉내만 낸 다른 바이오해커들은 시술에 실패하였으며 기형아들, 일명 '결함'이 있게 태어나게 되었다. 디엔은 결과적으로 연구 결과들을 온라인으로 공개했으며 그로 인해 설계된 아이들이 한 세대를 이루게 되며 '신인류'가 되었다. 수명도 길고 유능한 완벽한 존재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이로 인해 설계되지 못한, 혹은 돌팔이에 의해 실패한 인간으로 지칭되는 '비개조인'들은 결국 밀려났으며 이로 인해 일종의 무법지대가 만들어졌다.[12]
3. 줄거리
사실 바이오해커 디엔은 릴리 다우드나가 맞았다.
릴리 다우드나는 얼굴의 큰 흉터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으며 '완벽한 아이들'을 만들어 더 이상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가거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돈을 벌다가 갑자기 온라인으로 자신의 작업 방식을 알려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올리브의 서술에 따르면, 릴리가 40세 쯤 되었을 때에 자식을 갖고 싶었다고 한다. 그녀가 배양을 시작하던 중 결함을 발견하게 되고는 서슴없이 폐기하려고 했을 때, 릴리는 깨달음을 얻었다.
완벽해서 차별이 없는 세상보다, 불완전해서 서로를 의지하는 세상이 더 낫지 않을까?
결함이 있어서 사라져야 하는 세상은 옳지 못한 세상이라고 생각한 릴리 다우드나는 자신의 기술들을 모두 쏟아부었고 '마을'이라는 장소를 만들어 결함이 있는 아이들이 태어나게 했다. 실제로 릴리의 바람대로 마을 사람들 간에 차별은 없었으니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봐도 괜찮을 듯하다.
시초지로 갔다가 돌아오는 순례라는 의식은, 올리브가 릴리를 찾아 떠났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 남게 된다. 제목과 동일하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바로 지구에서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데이지가 편지에 서술한 것을 보면 이상하게도 마을의 사람들끼리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13]
올리브 역시 다시 마을에 돌아오는 일은 없었고 같이 결함이 있던 델피와 함께 양극화, 분리주의에 대한 저항을 하다가 삶을 끝냈다.
이렇게 데이지도 자신의 친구 소피에게만 편지를 남긴 채 올리브의 흔적을 따라 순례를 하려고 한다. 편지가 끝나면서 이야기도 끝나게 된다.
4. 명대사
사람들은 디자인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답고 유능하고 질병이 없고 수명이 긴 새로운 인류를 '신인류' 라고 통칭했다.
마을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릴리의 얼룩이 특별한 정보값을 갖지 않는 하나의 특성일 뿐이었지만 지구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릴리를 마음껏 멸시하고 혐오할 수 있는 하나의 낙인이었다.
그녀는 얼굴에 흉측한 얼룩을 가지고 태어나도, 질병이 있어도, 팔 하나가 없어도 불행하지 않은 세계를 찾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세계를 나에게, 그녀 자신의 분신에게 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름답고 뛰어난 지성을 가진 신인류가 아니라,서로를 밟고 그 위에 서지 않는 신인류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마을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결점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그래서 때로 어떤 결점들은 결점으로도 여겨지지 않았다.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거야.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5. 여담
- 릴리 다우드나의 성 '다우드나'는 202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제니퍼 다우드나에게서 따 왔을 것으로 보인다. 제니퍼 다우드나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법의 개척자로 손꼽히는 인물로, 작중 뛰어난 유전자 편집 기술을 지닌 바이오해커로 묘사되는 릴리 다우드나의 선조격 되는 인물이다. 화학계 동향을 어느 정도 아는 독자라면 작품 극초반부터 릴리 다우드나가 어떤 사람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생화학 석사[14]다운 네이밍 센스라고 할 수 있다.
[1]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2] 귀환자가 사랑한 사람이 시초지에서 죽어서 결국 돌아오게 되었다. 어린 화동(花童)이었던 데이지는 왜 울고 있는지 알 수 없었을 따름이다.[3] 금서들이 모인 도서관이라고 한다. 뒤뜰을 지키는 문지기가 지키고 있는 구역이기도 하다.[4] 데이지의 증언에 따르면 말투가 신랄하다고(...)[5] 올리브[6] 이후 올리브의 회상을 보았을 때 올리브가 떠나겠다고 하자 무모한 행동이라며 만류한 듯하다.[7] 릴리 다우드나가 살았던 곳이 미국인 것을 보아서 만 나이를 기준으로 삼아 18세부터 어른으로 칭한 듯 하다.[8] 시초지, 즉 지구에 남을 것인지 돌아올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9] 사실 선생님도 귀환자들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자신도 '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10] 사실 이후 오스카가 선생님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오스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왜 '마을의 역사'는 '시초지의 역사'보다 짧고 굴곡이 없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데이지의 과대해석 다만, 역사에 굴곡이 없었던 것 역시 릴리가 바라는 점이었기 때문에 오스카가 데이지에게 동기부여를 해 주었다는 것을 변함이 없다.[11] 이름은 델포이(Delphi)에서 따 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어와 영어 모두 델피라고 발음되기 때문이다.[12] 올리브를 공격하려던 남자들을 향한 델피의 대사가 "여긴 비개조인들의 구역인데 경찰이 올 것 같아?"라는 걸 보았을 때 이미 양극화는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 듯하다.[13] 아마 마을의 구성원들은 서로가 같은 근원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성애를 느낀다 해도 대부분 형제애를 느끼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14] 김초엽 작가는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