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06:14:21

숀 고터

버뮤다의 前 축구 선수
파일:672ㅇ6ㅇ60.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숀 고터
Shaun Goater
본명 레오나르드 숀 고터
Leonard Shaun Goater
출생 1970년 2월 25일 ([age(1970-02-05)]세)
버뮤다 해밀턴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틀:국기|]][[틀:국기|]][[버뮤다|]])
신체 182cm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코치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유스 노스 빌리지 (1978~1985)
불러발드 (1986~1987)
노스 빌리지 (1986~198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8~1989)
선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9)
로더럼 유나이티드 FC (1989~1996)
노츠 카운티 FC (1993 / 임대)
브리스톨 시티 FC (1996~1998)
맨체스터 시티 FC (1998~2003)
레딩 FC (2003~2005)
코번트리 시티 FC (2005 / 임대)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FC (2005~2006)
버뮤다 호그스 (2007~2008)
노스 빌리지 램스 (2007~2008)
지도자 노스 빌리지 램스 (2008~2013)
뉴 밀스 AFC (2015 / 대행)
일케스톤 (2017)
맨체스터 시티 FC 아카데미 (2021~ )
국가대표 22경기 20골 (버뮤다 / 1987~2004)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지도자 경력
5.1. 버뮤다 호그스 (Bermuda Hogges)5.2. 노스 빌리지 램스 (North Village Rams)5.3. 뉴 밀스5.4. 일케스턴5.5. 매클스필드 타운5.6. 맨체스터 시티
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6.1.2. 개인 수상
6.2. 감독
6.2.1. 대회 기록
7. 여담

[clearfix]

1. 개요

버뮤다 국적의 전 축구 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

90년대 말 00년대 초반 맨체스터 시티의 암흑기에서 가장 빛이 났던 맨체스터 시티의 레전드이다. 특히 1998년부터 2003년까지 100골 이상을 득점하면서 4시즌 연속 클럽 득점왕에 올랐다.

현재는 맨체스터 시티 아카데미에 코칭 스태프로 있다.

2. 클럽 경력

2.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유스를 했지만 1군에 들지 못하여 1989년 로더럼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2.2. 로더럼 유나이티드 FC

파일:숀 고터 프로필 3.jpg
통산 262경기 86골

로더럼 유나이티드에서 중간에 임대를 가기도 했지만 1989년부터 1996년까지 7시즌 동안 262경기 86골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중간에 노츠 카운티로 임대를 떠났으나 돌아와서 1995-96 시즌 당시 하부리그였던 풋볼 리그에서 우승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즌이 끝나고 당시 로더럼 유나이티드 감독이었던 아치 젬밀과 갈등으로 이적을 결심한다.

스페인의 오사수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이적 제안이 있었으나 결혼한지 얼마 안된 숀 고터는 영국에 머물기로 하고 이후 브리스톨 시티에 175,000 파운드로 이적한다.

2.2.1. 노츠 카운티 FC (임대)

1993년 노츠 카운티로 임대되었으나 취업 비자 문제로 딱 한번의 출전에 그친다.

2.3. 브리스톨 시티 FC

파일:shaun-goㄱ6ater.jpg
통산 81경기 45골

2년이 조금 안되는 기간동안 81경기 45골을 넣으며 미친 활약을 보여준다. 당시 3부 리그였던 팀을 1996-97 시즌에 2부 리그인 퍼스트 디비전으로 승격을 시키고 그 활약으로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된다.

이러한 활약으로 1998년 3월 26일 이적시장 마감일에 400,000파운드로 당시 2부 리그였던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다.

2.4. 맨체스터 시티 FC

파일:650542130.jpg.jpg
통산 212경기 103골

2.4.1. 1997-98 시즌

당시 맨체스터 시티구단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잉글랜드 1부 리그 붙박이 팀이었던 맨시티가 강등과 승격을 거듭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적된 1997-98 시즌 조 로일 감독이 소방수로서 선임되었고 3부 리그로 강등되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이 시즌 남은 7경기에서 3골을 득점했으나 팀은 3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이는 맨체스터 시티 클럽 역사상 최초로 3부로 강등이 된 것이다.

2.4.2. 1998-99 시즌

한 시즌 21골을 넣으며 시즌 클럽 최고 득점자가 되었으며 특히 승격 플레이오프 준결승전에서 위건 애슬레틱을 상대로 골을 넣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맨체스터 시티는 플레이오프 결승전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승부차기 끝에 한시즌 만에 2부 리그로 승격한다.

2.4.3. 1999-00 시즌

탄력을 받은 숀 고터는 한 시즌 29골을 터트리는 기염을 토한다.

맨체스터 시티는 숀 고터의 활약에 힘입어 95-96 시즌 2부 리그로 강등된 이후 긴 암흑기를 끊어내고 다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한다. 이러한 활약으로 1999-00 맨체스터 시티 FC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버뮤다에서 'freedom of Bermuda'를 수상하고 6월 21일이 "숀 고터의 날"로 지정이 되었다.

2.4.4. 2000-01 시즌

30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프리미어 리그에 뛸 기회를 얻게 되었으나 부상과 파울로 완초페조지 웨아의 영입으로 3개월 간 경기를 뛰지 못하였다. 이후 케빈 키건으로 감독이 교체되고 숀 고터는 11골을 넣으며 분전하였으나 맨체스터 시티가 다시 강등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

2.4.5. 2001-02 시즌

01-02 시즌에 30골 이상 넣으면서 다시 팀을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시키고 4년 연속 클럽 득점왕, 2부 리그 득점왕, 그리고 1972년 프란시스 리 이후 처음으로 30골 이상 넣은 맨체스터 시티 선수가 되었다.

2.4.6. 2002-03 시즌

시즌에 넘어오면서 맨체스터 시티는 존 메켄과 니콜라스 아넬카를 영입하며 숀 고터의 출장수는 제한되어 14경기에 그친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클럽 100번째 골을 포함[1], 7골이라는 출장수 대비 준수한 활약을 펼친다. 또 2003년 2월 교체로 출전하여 9초만에 득점하면서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교체선수가 넣은 가장 빠른 골 기록을 갱신한다.

시즌이 끝나기 전 클럽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2003년 8월 1일 레딩 FC로 이적한다.[2]

2.5. 레딩 FC

당시 레딩 회장인 존 마데이스키가 "레딩 풋볼 클럽 역사상 가장 큰 이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기대가 컸으나 이적 이후 앨런 파듀 감독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떠났고 스티브 코펠이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눈에 들지못했고 04-05 시즌엔 경기수 4경기에 그치면서 코번트리 시티로 임대되었다. 이후 은퇴를 고려하였으나 3부 리그인 리그1의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로 FA로 이적한다.

2.5.1. 코번트리 시티 FC (임대)

6경기에 출장하여 득점하지 못하고 다시 레딩 FC로 돌아온다.

2.6.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FC

2005년 8월 3일 자유계약으로 합류하여 11골을 넣으며 2부 리그 승격에 기여한다. 그리고 2006년 5월 6일 브리스톨 시티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3. 국가대표 경력

37경기 32골을 기록했다. 워낙 팀이 약체이고 낮은 FIFA 순위로 국제 토너먼트 대회에 참여한 적은 없다.

17세에 캐나다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고 1992-93 시즌엔 월드컵 예선에 참가하였으나 엘살바도르, 캐나다, 자메이카와 같이 포함된 조에서 최하위를 기록한다.

2004년, 엘살바도르와의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를 은퇴한다.

4. 플레이 스타일


캡션


클래식한 전형적인 9번 스트라이커 스타일이다. 182cm에 키가 강점일 정도로 크진 않으나 타고난 센스로 골을 매우 잘 넣었다. 특히 헤딩골이 많다.

5. 지도자 경력

5.1. 버뮤다 호그스 (Bermuda Hogges)

2006년 9월 14일 미국 축구 리그인 USL와 같이 버뮤다에 프로 축구팀을 만들고 USL second divison으로 편입할 것을 밝혔다.
그렇게 버뮤다 호그스(Bermuda Hogges)가 창단되었고 숀 고터는 선수 겸 감독직을 맡았다.

5.2. 노스 빌리지 램스 (North Village Rams)

2008년 버뮤다 호그스를 떠난 후 고향팀인 노스 빌리지 램스에서 유스팀 감독직을 맡게되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리그, 세개의 Friendship 타이틀, Charity 컵과 Dudley Eve 우승을 포함하여 7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5.3. 뉴 밀스

2015년 8월 8일 앤디펀 감독 아래 부감독으로 노던 프리미어리그 디비전 1 노스에 뉴 밀스에 합류했으나 그 해 9월 9경기 9패를 한 후 사임한다.

5.4. 일케스턴

2017년 2월 17일 노던 프리미어리그 디비전 1 노스의 일케스턴의 감독직을 맡는다

5.5. 매클스필드 타운

2019년 2월 5일 매클스필드 타운 U-18의 코치로 고용된다.

5.6. 맨체스터 시티

2021년 10월 8일 아카데미 코치로 맨체스터 시티에 돌아온다. 이후 클럽의 모든 아카데미 연령에서 코치역을 수행중이다.

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

6.1.2. 개인 수상

6.2. 감독

6.2.1. 대회 기록

7. 여담

  • 유년기는 어머니인 Lynette[3], 할머니, 두 명의 숙모와 같이 살았다.
  • 영국 축구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버뮤다의 살투스 그래머 학교의 축구, 농구 여행에 초대되면서 인데 그때 레스터 시티 유스팀을 포함한 영국 고교 축구부와 같이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 17세에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때 뉴저지 주 컬럼비아 고등학교에서 축구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기 추수감사절 휴가 기간에 버뮤다에 머물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카우터에게 띄어 영국으로 향하게 된다.
  • 유스 시절엔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고 한다.
  • 처음 맨체스터 시티에 왔을 때 팬들의 시선은 회의적이었으나 나중엔 180도 변한다.[4]
  • 버뮤다 소재의 회사, East End Group Limited와 2007년 11월 9일 Telecommunications Networks Limited(현재 East End Telecom으로 이름 변경)을 합병하고 East End Asphalt와 East End Aviation 그룹에 추가시켰다. 현재 이 그룹의 비즈니스 개발 관리자로 활동 중이다.
  • 영국에 거주할 때 맨체스터 지역 언론에 정기적으로 출연했으며, 맨체스터 시티에 "Read the Goat" 칼럼과 BBC 라디오 맨체스터의 Blue Tuesday 고정 게스트였다.
  • 버뮤다 국가대표에 대해 식단을 '팀이 좋아하는 것만 먹었다, 자신은 2~3년 동안 전문적인 식단을 유지했는데 대표팀을 갔다가 돌아오면 다시 몸상태를 끌어올리기 까지 3주 가량이 소모됐다.'라며 불만을 털어 놓았다.
  • 은퇴 후 버뮤다로 돌아와서 당시 버뮤다 총리 알렉스 스콧으로부터 공식적을 환영을 받았다. 이후 사우스엔드와 버뮤다 국가대표 간의 친선전이 있기도 했다. 꽤나 버뮤다에서 영향력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유스 시절엔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고 2003년부터 은퇴 후 코치가 되기 전까지 'Shaun Goater Grass-roots Soccer Festival'라는 이름으로 버뮤다에서 아이들을 코칭해주는 행사를 매년 해왔다.
  • 어린 시절 연인인 Anite와 결혼하여 Amaya와 Anais, 두 딸을 맨체스터에서 출산했다.
  • 버뮤다의 스포츠 및 청소년에 대한 봉사활동으로 2003년에 MBE를 수여받았다.
  • 2006년 9월에 자서전인 'Feed the Goat: The Shaun Goater Story'을 썼다


[1] https://www.youtube.com/watch?v=LIFig0NeWKk[2] 은퇴 이후 당시 감독인 케빈 키건니콜라스 아넬카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https://www.bbc.co.uk/manchester/content/articles/2006/09/20/200906_goater_interview_feature.shtml[3] 축구선수 출신[4] 고터를 위한 응원가도 만들 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