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손창준(孫昌俊) |
생몰 | ? ~ ? |
출생지 | 경상북도 울진군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독립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손창준은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이주해 봉천성 유하현 삼도구 대사탄에서 거주했다. 19119년 이탁이 만주에서 조직한 27결사대에 가입하고 박기한, 차병제, 박진태, 안경식, 박기제 등과 함께 을사오적과 정미칠적을 암살할 것을 계획했다.1919년 3월 3일 고종의 인산날에 거사하기로 결의하고 서울에 들어왔지만, 거사 당일까지 무기가 입수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해 3월 10일 이탁으로부터 권총과 탄환을 받아낸 그는 서울에서 체류하다가 무기 구입비와 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3월 31일 밤 차병제(車秉濟), 최병인과 함께 서울 효자동에 거주하는 김중환(金重煥) 집에 가서 자금을 요청하였으나 돈이 없어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해 4월 5일 차병제와 함께 무교동에 거주하는 박홍일(朴弘鎰) 집에 들어가서 5백원을 받았으며 동월 29일에는 차병제, 박기한, 이기원(李基源) 등과 함께 서울 인사동에 거주하는 한봉취(韓鳳翠)를 찾아가 120원을 받아냈다.
그러나 일제 경찰이 그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5월 5일 손창준을 전격 체포했고, 그는 1919년 9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의 생애와 사망년도 및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손창준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