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25 06:23:48

손익극

파일:손익극.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오오야마 요쿠고쿠(大山翼極)
이명 손승사(孫勝司), 손승계(孫勝啓)
출생 1919년 3월 28일
경상북도 영일군 죽남면 상옥동
(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
사망 1989년 2월 4일
일본 도쿄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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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손익극은 1919년 3월 28일 경상북도 영일군 죽남면 상옥동(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부 나카노구 미야조노통(宮園通)[1]에 거주하면서 니혼대학 제2상업학교[2]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1940년 학교 친구 김기영(金基榮) 등과 함께 한국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항일조직을 결성했다. 손익극 등이 결성한 항일조직원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허위에 기반한 것으로 간파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한 것이었다. 특히 내선일체가 한국인을 착취하고 압박하려는 기만정책일 뿐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질곡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조선 민족의 참된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그 구체적인 행동 방식으로 조직원들을 각 분야의 전문가로 양성하는 한편, 일제에 의해 군인으로 동원된 한국인들의 무력 항쟁을 돕기 위해 힘쓰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거사 직전 일본 관헌에게 탐지되었고, 1941년 10월 조직원들이 체포되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 뒤 1942년 12월 22일 도쿄형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출옥하였다.

8.15 해방 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도쿄도에 남아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1989년 2월 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손익극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1967년 히가시나카노정(東中野町), 나카노정(中野町) 등에 분리, 편입되었다.#[2] 현재의 니혼대학 제2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