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사윤(士允) |
본관 | 진주 소씨[1] |
출생 | 1882년 10월 28일 |
전라도 남원도호부 적과방 만적동 (現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덕과면 만도리)[2] | |
사망 | 1968년 4월 5일 |
전라북도 남원시 (現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191호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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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소팔백은 1882년 10월 28일 전라도 남원도호부 적과방 만적동(현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만도리)에서 아버지 소수택(蘇秀澤, 1828. 9. 26 ~ 1901. 3. 20)과 어머니 풍천 노씨(豊川 盧氏, 1854. 10. 9 ~ 1926. 12. 9)[3] 사이의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4] 이후 벽진 이씨(? ~ 1960. 11. 1)와 결혼하였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어 형 소한영(蘇翰永, 1875. 2. 10 ~ 1945. 2. 5)의 차남인 소병은(蘇秉殷, 1916. 1. 25 ~ 1993. 6. 1)을 양자로 들였다.그는 1907년 음력 9월 이석용[5] 의진인 호남의병창의동맹단에 참여하여 그해 11월 5일까지 전라북도 남원군 및 임실군 등지에서 이석용을 수행하며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1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소위 폭동 혐의로 태(笞) 100도에 처해졌다.
이후 은거하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68년 4월 5일 전라북도 남원군에서 사망하였다.
200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본래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용산리 분토동마을에 안장되었다가 2017년 7월 17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에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