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성하식(成夏植) |
이명 | 성세영(成世永) |
별호 | 만취(晩翠) |
도호 | 대형(大兄) |
본관 | 창녕 성씨 |
생몰 | 1878년 2월 3일 ~ 1958년 6월 29일 |
출생지 |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유전리 |
사망지 | 경상북도 상주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대종교 신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성하식은 1878년 2월 3일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유전리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 상주군으로 이주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사숙에서 한학을 수학했고, 1908년 김천의 계산측량학교(稽山測量學校)를 졸업한 뒤 측량업에 종사했다. 이후 1911년 광신학숙(廣新學塾)에서 2년간 교육에 진력하다가 1913년에 만주 지린성으로 이주했다. 1914년 몽강현에서 신창소학교(新昌小學校)를 세웠고, 1916년에는 화전현에서 길창소학교(吉昌小學校)를 세웠으며, 1919년 무송현에서 윤세복 등과 함께 흥업단(興業團)을 조직, 초대 재무부장으로서 독립군의 군자금 마련에 진력했다.1921년 대종교에 입교했고 1924년 참교(參敎), 1931년 지교(知校), 1947년 정교(正敎)로 임명됨과 동시에 대형(大兄)의 호를 받았다. 또한 그는 1922년 부여현에 삼성시교당(三成施敎堂)과 삼흥학교(三興學校)를 세웠고 1926년 빈현에 신흥소학교(新興小學校)를 세웠으며, 1929년 유수현에 유성시교당(裕成施敎堂)과 부속소학교를 각각 설립하여 직접 시무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총본사 전범(典範), 밀산구 순교원(巡敎員), 총본사 전강(典講), 경의원(經議院) 참의 등을 역임했다. 8.15 광복 후 국내로 돌아와 원로원 부원장, 총본사 전범 등을 역임했고, 1957년 상주지사 전무(典務)가 되어 대종교 포교 활동을 전개하다 1958년 6월 29일에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성하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