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1 02:15:31

선덕여왕(대왕의 꿈)

파일:대왕의 꿈 덕만아역.jpg
어린 시절 (선주아)
파일:박주미 덕만공주.jpg
덕만공주 (박주미)
파일:홍은희 선덕여왕.jpg
즉위한 뒤 선덕여왕 (홍은희)

1. 개요2. 인물 묘사3. 작중 행적

1. 개요

KBS 1TV 대하드라마 대왕의 꿈의 등장인물. 담당 배우는 박주미였다가, 박주미가 촬영 후 복귀하다가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당해 하차하면서 홍은희교체되었다. 아역은 선주아.

박주미 본인도 의욕이 있었는지 이 배역에서 하차한 것을 아쉬워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2. 인물 묘사

진평왕의 차녀이자 김춘추의 어머니인 천명공주의 여동생이다. 김유신과도 외사촌 사이이다. 그래서 작중에서 김유신을 부를 때, 공식 석상이 아닐 때는 격의 없이 "유신아"라고 이름을 부른다.[1]

항상 나라의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신중하고 사려깊은 행동으로 아버지인 진평왕으로부터 무한 신뢰를 받고 있으며, 백성들로부터도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광기를 보이는 삼촌인 국반 갈문왕과의 혼인도, 본인의 안위보다는 국가를 우선시하는 생각에서 결정했던 것. 진평왕이 덕만공주가 아들이 아님을 한탄할 정도. 또한 극중에 진평왕이 덕만공주의 자문을 구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된다.

극 초반의 모습만을 봤을 땐 청순가련형의 캐릭터 같았지만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나, 그 누구도 꼼짝하지 못했던 증조할머니 사도태후 앞에서 자기 할 말을 다하는 등 상당히 강단 있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성년 시점에서 박주미가 표현한 덕만은 덕망과 위엄을 조화롭게 갖춘 모습으로, 승만의 난 전후로 배역이 교체되어 홍은희가 연기한 덕만은 권력 싸움이 계속되면서 좀 더 냉정하고 단호한 인상을 준다.

3. 작중 행적

진평왕의 딸로, 1회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북을 치는 모습으로 첫 등장을 보이며, 이후 자신을 찾아온 진평왕이 후사 문제로 고민을 토로하자,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진평왕이 국왕으로서 위엄을 보여 사도태후의 반대를 극복하고 소신대로 김춘추를 태자를 책봉해야 한다고 주청을 올린다. 이에 진평왕은 덕만이 아들로 태어났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칭찬 겸 한탄을 내뱉는다.

하지만 춘추가 대통을 승계하는 것을 경계했던 사도태후와 서라벌 귀족들은 국반 갈문왕과 덕만의 혼인을 추진하여 후계 구도를 세우려 하고, 이에 덕만은 백제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한 가잠성에 국반이 친정하여 가잠성을 구원하는 것을 조건으로 국반과의 혼인을 수락한다. 그러나 국반은 가잠성 코앞에서 연회를 벌이며 시간을 끌다 결국 가잠성이 함락되는 것을 방기하고, 이에 덕만은 갈문왕과 혼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춘추의 목숨을 구명하기 위해 결국 갈문왕과의 혼인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혼인 날 합방하는 것은 거부.

10년 후, 김춘추가 성인이 되어 신라로 복귀할 무렵 성인 배역으로 등장. 이 때는 도성에서 행차하던 중 어떤 아녀자가 자신의 아이가 병에 들어서 한 번 공주 전하 손길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며 하소연하자 가마에서 내려 우는 아이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기도 하는 인자한 모습을 보인다. 한편으로는, 김춘추가 이끄는 사정부와 김유신의 화랑도가 서로 축국 경기 중에 김춘추와 김흠순이 시비가 붙어 싸우자, 크게 꾸짖으면서 차후 이런 불미스런 일이 재발했다가는 사정부와 화랑도를 모두 해체하겠다는 엄포를 놓는 등 위엄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복귀한 김춘추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국반 갈문왕이 죽기 전 자신이 춘추의 총명함을 경계하고 시기해서 그를 죽이려했던 것을 후회하며 자신이 죽으면 춘추를 다시 서라벌로 불러들이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춘추에게 전하며 국반에 대한 원한을 잊을 것을 부탁한다. 이후 승만왕후가 진평왕의 왕후들과 더불어 향락술 게임을 벌이고 보량궁주를 위협하자 이에 대해 항의하면서 승만왕후와도 대립한다. 승만이 진평왕의 후사를 낳지 못해 불안한 심리를 털어놓기도 하자 자신이 옆에서 도와주겠다며 훈훈한 분위기를 가끔 내기도 하지만, 승만과 정치적으로 격돌할 때 승만이 자신이 부왕 진평왕의 왕후이니 어머니라며 위신을 드러내자, 덕만은 자신은 갈문왕비이거늘 어찌 왕후의 딸이 되겠냐며 돌직구를 날리기도 한다.

이후 김춘추의 제안에 따라 국경에서 백제 태자 의자를 만나 고구려 낭비성 공격에 협조해주면 당항성 뱃길을 열어준다는 거래를 제시하며 백제와의 화합을 주도하지만, 승만이 공작을 부려 백제 무왕과 거래하는 바람에 백제 태자 의자의 본의 아닌 뒤통수에 맞아 전장에서 죽을 위기에 처하고, 탈출하기 위해 춘추, 유신의 알선으로 귀문단 수장 비형량의 도움을 받아 뱃길로 탈출하여 서라벌로 복귀한다. 이후 비형랑이 단순히 반역 도당의 수괴가 아님을 밝히며 그에게 골품을 내려 사면을 주청하겠다는 뜻도 밝힌다. 서라벌로 복귀한 뒤, 낭비성 전투에 나가 있는 춘추와 유신을 구명하기 위한 구원병을 청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승만과 귀족 세력에게 맞서기도 한다.

19화부터 담당 배우가 홍은희로 변경되었다. 백제 무왕과 승만의 뒷거래를 알아내어 왕후를 쫓아내는 것에 대해 춘추가 자신과 상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을 표하기도 한다. 이후 승만이 난을 일으켜 진평왕을 유폐시키고 약으로 혼미하게 만들자, 춘추와 함께 목숨을 걸고 왕궁에 잠입하여 진평왕으로부터 자신을 섭정으로 삼는다는 혈서를 받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승만에게 항거할 명분을 다진다. 전황이 불리하자 춘추에게 대야성주 비담을 상경시켜 반란을 진압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비담의 참가로 전세가 역전되자, 궁지에 몰린 승만에게 찾아가는데, 이 때 원자가 진평왕의 친자가 아니라는 의혹이 공론화된지라 승만은 원자의 생존을 담보하려 하지만, 덕만은 "원자가 왕실의 적통이 아니라면 살고, 왕실의 적통이라면 죽어야 한다"는 폭탄발언으로 승만을 충격에 빠뜨린다. 이미 진평왕이 후계 포석을 해두긴 했지만, 승만의 난 전후를 기점으로 자신이 차기 대통을 잇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고 이를 천명한 것. 난을 진압한 후, 승만은 반역죄를 물어 죽임이 마땅하지만 원자의 생모임을 감안하여 살려서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짓는다.

진평왕 사후 드디어 신라 27대 국왕으로 등극한다. 덕업일신 망라사방의 대업을 이루겠다는 벅찬 포부와는 달리 신흥 공신인 비담에게 사사건건 휘둘리며 이에 맞서는 김춘추와 김유신을 케어하는 것조차 버거워한다. 김춘추나 김유신을 궁지에 몰려고 비담이 조정에 소환했다가 춘추나 유신이 돌직구로 비담의 말문을 막아버리면 그 때서야 왕의 포스로 비담을 데꿀멍시키는 전개가 반복된다.

덕만의 즉위 후, 백제 측에서는 즉위 후 당항성을 주기로 했던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당연히 조정에서는 반발했지만 선덕여왕은 당항성 뱃길을 열어주겠다고 천명하며 백제 사신을 돌려보내는 데, 비담에 의해 백제 사신 계루가 참살당하고, 이에 분노한 의자 태자가 결사대를 조직해 신라 영토로 공격해 들어온다. 위기에 처한 백제 결사대와 의자를 살려보내고 일을 적당히 수습하려고 숙흘종을 사신으로 보내는데, 이것조차 비담에 의해 수포로 돌아가 옥문곡에서 백제 결사대가 전멸하고 의자만 간신히 생환하면서, 결국 백제와 철천지원수가 되고 만다.

왕권이 진평왕 대에 비해 크게 나아진 점이 없어서, 당나라로부터 향이 없는 난이 그려진 병풍을 받는 수모를 겪기도 하고, 조정이 반대하면 일도 제대로 추진이 안 되고, 대야성이 백제에게 공격당할 때도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다가, 대야성 함락 이후 조정 신료들에게 "한 때는 대야성주가 용맹하고 충성심이 강한 자니까 걱정 말라더니, 이제 와서야 불충하고 무능한 자로 몰아세우는 거냐?"[2]며 화를 내기도 한다.

한편 김춘추가 알천과 독대하여 차기 대통에 대해 논했다는 비담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이간질에 넘어가 김춘추를 순간 의심하게 되고, 이 때문에 김춘추가 비담의 핍박을 피해 왜국으로 망명하자, 자신이 그를 의심했던 것을 후회하고는, 그에 대한 반역 혐의를 모두 불문에 부치고 사면한 뒤 신라 사신으로 임명하여 김춘추의 신변을 보장해준다. 이후 나라를 단결시키기 위해 황룡사 목탑 건축을 추진하는 데, 이 과정에서 비담과 귀족 세력들의 비협조로 난항에 부딪히다가 병을 얻는다. 김유신과 김춘추 모두 서라벌에 없는지라 결국 비담에게 그의 대의는 무엇이냐고 하문한 뒤, 그에게도 우국충정은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그를 상대등에 임명한다. 그러나 비담은 상대등이 되자마자 화백회의를 소집해 스스로를 섭정에 추대하려 한다. 비담의 기녀로 있던 연화의 도움으로 변방에 있던 김유신을 소환한다는 왕명을 그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 화백회의장에 김유신과 함께 나타나 스스로 섭정에 오르려는 비담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고, 이후 춘추의 조언대로 국반 갈문왕의 딸인 승만공주를 차기 대통으로 선언한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는 비담이 결국 귀족 세력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고 만다. 병석에서 일어나 비담과 그에게 동조하는 귀족 세력들에게 일침을 놓아 국왕으로서의 위신을 세우려 하지만, 오히려 비담에게 조롱만 듣고 비담 휘하의 군사들로부터 여주불능선리를 열창하는 것을 듣고 멘탈이 깨지고 만다. 자신이 병석에 누워있는 와중에 하늘에서 유성이 서라벌에 떨어져 화재가 발생하는 등 악재가 터지자, 자신의 치세가 다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마지막에 한 번 더 몸을 일으켜 이후 유성의 추락을 여왕의 죽음으로 해석한 비담군이 자신만만하게 왕궁으로 들이닥쳤다가 아직 몸이 성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비담이 데꿀멍하게 만든다. 이후 승만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 다음 대통은 춘추를 세울 것을 유언으로 남기며 사망한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으로 기록된 신라의 선덕여왕이 647년 1월, 16년 동안의 치세를 마치고 눈을 감았다. 어려서부터 용공의 자태와 태왕의 위엄을 지녔다고 기록됐을만큼 총명함과 성군의 자질을 갖춘 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의 뒤를 이어 신라 27대 국왕으로 등극했다. 즉위 초, 백성들 구제에 힘을 쏟았고, 백제와 고구려와 전란 속에서 신라 영토를 지켜냈던 선덕여왕은 말년에 국토 수호와 백성 구제를 명분으로 국운이 걸린 황룡사 9층 탑 건립을 완수했지만 막대한 불사는 민심을 동요시켰고, 후사를 얻지 못해 승만공주에게 대통을 계승시키려던 일은 당시 조정 영수였던 비담반란을 불러일으켜 결국 반란의 와중에 임종을 맞이했다. 시호는 선덕이고, 경주 낭산에 장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선덕여왕의 서거


[1] 진평왕과 만명 부인은 아버지가 다른 남매(이부형제) 사이다. 진평왕은 만호 부인과 진흥왕의 장남인 동륜 태자 사이에서 낳았고, 만명 부인은 진흥왕의 남동생인 김숙흘종 사이에서 낳았다.[2] 물론 역사상 대야성주 김품석은 무능하고 방탕한 자인 것이 사실이었다. 극중에서는 주인공인 김춘추의 사위다보니 상당히 미화되었다. 김품석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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