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2 18:09:38

샌 버너디노 철도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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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샌 버너디노 철도 참사.jpg

1. 개요2. 화물 열차 탈선3. 가스 폭발4. 사고 이후

1. 개요

San Bernadino Train Disaster

1989년 5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 버너디노에서 일어난 열차 탈선 사고.

2. 화물 열차 탈선

사고 당일 아침, 사우던 퍼시픽 철도회사 소속 화물열차가 샌 버너디노로 향할 준비를 했다. 열차는 기관차 1대에 100톤짜리 차량 69량으로 이어진 마일 트레인이었다. 열차에는 트로나[1]가 실려 있었다. 그런데 열차 서류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큰 실수가 있었다. 야적장에서 열차를 관리하던 레이크 미네랄에선 열차에 실린 트로나의 중량을 계산하는데, 트로나가 석탄과 같은 무게일거라 생각해 한 량에 약 54톤의 트로나, 총 5,500톤의 트로나가 실려있다 계산했다. 실제 무게보다 2,500톤 가량 적게 계산했다.

열차에 기관사 프랭크 홀랜드(Frank Holland), 승무원 에버랫 크라운(Everett Crown), 브레이크맨 앨런 리스(Allan Riess)이 탑승했다. 이들은 합해 무려 50년의 경력을 자랑했다. 홀랜드는 산맥을 오르내리는 동안 열차의 힘이 부족할거라 생각해 기관차 2대를 더 부탁했다. 열차가 경사면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기관차 2대를 더 연결해 기관사 로렌스 힐(Lawrence Hill)과 브레이크맨 로버트 워터버리(Robert Waterbury)가 탑승했다.

열차는 순조롭게 움직이는 듯 했다. 그런데 카혼 패스(Cajon Path)의 산맥을 내려갈 때, 열차가 시속 48.2km로 달리기 시작했다. 시속 40km로 가야하는 구간에서 속도가 필요 이상으로 빨랐다. 얼마 안가 속도는 시속 72km로 늘었다. 로렌스 힐은 비상제동을 걸었으나 열차는 속도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다시 붙었다. 열차 속도는 아까보다 더 빨라져 열차 속도계가 표시 불가능할 정도로 속도가 올랐다. 속도는 금세 시속 160km를 넘어섰다. 기관사는 긴급 제동을 했으나, 마찰열로 공압 브레이크가 녹아내리는 바람에 속도가 더 미친 속도로 빨라졌다.

7시 36분, 열차는 샌 버너디노의 더피스트리트 마을 인근 곡선구간에서 탈선했다. 열차가 탈선하면서 더피스트리트 마을을 그대로 덮쳤다. 사고를 본 경찰이 바로 지원요청을 해 구조작업이 진행됐다. 한 부상자는 10시간 가까이 잔해에 갇혀있다가 간신히 구조됐다. 마지막 희생자는 12시간이 지나고서야 열차 잔해에서 구조할 수 있었다. 에버랫 크라운과 앨런 리스가 사망, 사고 현장에서 주민 2명이 사망하면서 총 4명이 사망했다. 집 7대가 사고로 무너졌고, 4명이 부상 입었다.

3. 가스 폭발

사고 바로 다음 날 부터 현장 처리를 시작했고, 사고 4일만에 현장은 복구됐다. 철도도 복구되어 열차가 다시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복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 열차를 치우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열차에서 쏟아진 트로나를 치우는 과정에서 지하 1.8m 밑에 있던 가스관에 큰 손상이 있었다. 거기다 복구 하면서 가스를 차단해야 했으나 가스 회사는 이를 처리하지 않았다.



5월 25일, 가스관이 파열되어 가스가 새어나와 폭발했다. 불기둥이 90m 높이로 치솟았다. 소화전이 작동하는데 실패해 초동 진화를 못했다. 가스가 계속 새어나오면서 불른 미친듯이 타올랐다. 인근 신호등이 열기를 못 이기고 녹아내릴 정도였다. 가스 회사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7시간이 지나서야 불이 꺼졌다. 당시 새어나온 가스 양은 무려 200만 리터에 달했다. 폭발로 2명이 사망했다. 주택 11채와 차량 20대가 전소되었다.

재산 피해는 1430만 달러 가량이었다.

4. 사고 이후

사고 원인은 앞서 말한 계산 실수였다. 혹시 몰라 기관차 2대를 더 추가하긴 했으나, 그 기관차로도 버티기엔 무게가 너무 나갔다. 사고 이후 사우던 퍼시픽 철도는 화물 무게를 계산 안하더라도 무조건 최고 중량으로 판단해 기관차를 더 추가하는 식으로 사고를 예방했다.

사우스 퍼시픽 철도 회사는 사고 7년 후 유니언 퍼시픽에 인수됐다.

프랭크 홀랜드는 사고 이후에도 기관사로 일했다. 하지만 같은 구간을 운전하는 일은 없었다.

항공 사고 수사대의 스핀오프 '충돌 사고 수사대(Crash Scene Investigation)' 에서 사고를 다루었다.

사고 현장 인근엔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1] 천연으로 나는 탄산 나트륨. 비료 재료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