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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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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1. 개요

아랍어 صلخد
영어 Salkhad

시리아 남부의 도시. 해발 1350m 의 자발 엘드루즈 고원에 위치하며, 인구는 약 1만 5천명이다. 12-13세기 하우란 동부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주민 대부분은 드루즈교도로, 1925-27년 시리아 대봉기를 이끈 국민 영웅 술탄 알 아트라쉬의 고향이다.[1]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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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카드 성채

구약 성경에 '살카흐'로 등장할만큼 오래된 도시로, 나바테아 왕국기부터 아랍계 주민들이 정착하여 두샤라 및 알라트 신을 숭배하였다. 로마 제국기에는 아라비아 속주의 일부였고, 6세기 마다바 지도에도 표기되었다. 이슬람 정복 후 소도시로 이어지다 13세기 초엽 아이유브 왕조기 십자군의 하우란 침투를 막기 위한 성채가 세워졌다. 살라흐 앗 딘의 장남 알 아프달이 후계 다툼에서 패배한 후 유배된 곳이었다. 다만 몽골 침공기 이후 살카드 성채의 전략적 가치는 하락했고, 여름철 목초지를 찾는 베두인들만 가끔 머물렀다.

오스만 제국기에는 사르하드로 불렸고, 하우란 산작에 속하였다. 1596년 기준 무슬림과 (가산 왕국 계열의) 정교회 기독교도 주민이 반씩 있었고, 각종 곡물 및 염소와 벌꿀 등 3만 6500 악체의 세수를 납부했다. 18세기 후반, 마을은 폐허가 되었지만 1858년 레바논 산지의 혼란을 피해 이주해 온 드루즈 및 정교회 기독교도들이 정착하며 재건되었다. 다른 하우란 지역과 마찬가지로 살카드도 알 함단, 알 아트라쉬 가문이 연달아 자치를 유지하였고 종종 오스만 당국의 간섭에 맞서 싸웠다. 후자의 술탄 알 아크라쉬는 1925-27년 프랑스의 위임통치에 맞선 시리아 대봉기를 이끌었다. 독립 후에는 시리아 최남단의 앗 수와이다 주에 편성되었다.


[1] 정확히는 서북쪽의 알 쿠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