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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왕국 25대 군주 საურმაგ | 사우로마케스 2세 | ||
제호 | 한국어 | 사우로마케스 2세 |
조지아어 | საურმაგ | |
라틴어 | Sauromaces II | |
생몰 년도 | 미상 ~ 미상 | |
재위 기간 | 361년 ~ 363년(단독 통치) 370년 ~ 378년(아스파쿠레스 2세와 분할 통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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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베리아 왕국 25대 군주.2. 생애
이베리아 왕국 23대 군주 미리안 3세의 아들이며 공동 왕이었던 레브 2세와 아르메니아 군주 티리다테스 3세의 딸 살로메의 장남이다. 361년 미리안 3세와 레브 2세가 사망한 뒤 단독 왕으로 즉위했다. 카르틀리 왕실 연대기는 그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지만, 4세기 로마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는 상당히 상세하게 언급했다. 그는 왕위에 오른 뒤 친로마 정책을 구사하다가 363년 사산 왕조 샤한샤 샤푸르 2세의 침공을 받자 로마로 피신했다. 샤푸르 2세는 이베리아 왕국의 군주로 아스파쿠레스 2세를 내세웠다.로마는 370년경 반격을 개시했다. 당시 발렌티니아누스 1세와 함께 로마 제국을 공동으로 다스리고 있던 발렌스 황제는 테렌티우스가 지휘하는 12개 군단을 이베리아로 파견했다. 아스파쿠레스 2세는 이베리아로 침입한 로마군에게 패배한 뒤 로마에 협상을 요청했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에 따르면, 아스파쿠레스 2세는 자신의 아들 울트라가 페르시아에 인질로 가 있어서 페르시아를 버릴 수 없다면서, 그 대신 사우로마케스와 자신이 이베리아를 양분해서 다스리겠다고 요청했다. 테렌티우스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병화 협약이 수립되었다. 사우로마케스 2세는 라지스 등 아르메니아 국경에 가까운 이베리아 서부 지역을 다스렸다. 반면 아스파쿠레스 2세는 알바니아 등 페르시아와 가까운 이베리아 동부 지역을 다스렸다.
378년, 샤푸르 2세는 발렌스에게 이베리아를 단일 왕국으로 통합하고 아스파쿠레스를 이베리아의 주권자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발렌스가 거부하자, 샤푸르 2세는 수레나 장군을 파견해 사우로마케스 2세를 지키는 로마군을 물리치게 했다. 로마군은 격파되었고, 그는 폐위되었다. 당시 발렌스는 378년 8월 9일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고트족에게 전사했기 때문에 사산 왕조의 침략에 대항할 수 없었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는 아스파쿠레스 2세가 샤푸르 2세에 의해 이베리아의 단독 군주가 되었다고 기술했지만, 현대 역사학계는 아스파쿠레스 2세의 아들 미흐르다트 3세가 샤푸르 2세에게 추대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