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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왕국 7대 군주 ფარნავაზი | 파르나바즈 2세 | ||
제호 | 한국어 | 파르나바즈 2세 |
조지아어 | ფარნავაზი | |
라틴어 | Pharnavaz II | |
생몰 년도 | 미상 ~ 기원전 30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63년 ~ 기원전 3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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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베리아 왕국 7대 군주.2. 생애
이베리아 왕국 6대 군주 아르토케스의 아들이다. 기원전 63년 아버지가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압력으로 퇴위한 뒤 왕위에 올랐다. 이후 로마의 봉신으로 지내다가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 이후 로마가 혼란해지자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기원전 36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부관인 푸블리우스 카니디우스 크라수스가 군대를 이끌고 그에게 압력을 행사하자, 어쩔 수 없이 도로 로마의 봉신이 되었고, 안토니우스의 파르티아 원정에 지원군을 보냈다.안토니우스의 파르티아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파르티아와 손잡기로 하고 파르티아인 카르탐을 양자로 들이고 자신의 딸과 결혼시켰다. 그러나 기원전 30년 파르나좀의 아들이었던 미리안이 이베리아 귀족들을 끌여들어 반란을 일으켰고, 그는 카르탐과 함께 피살당했다. 이후 미리안이 미리안 2세로서 왕위에 올랐다. 한편 카르탐의 임신한 아내는 아르메니아로 도피하여 아드레키를 낳았다. 아드레키는 서기 1년 아르메니아에서 모은 병력을 이끌고 이베리아로 돌아가 미리안 2세의 아들 아르탁시아스 2세를 전사시키고 파라스마네스 1세로서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