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9 02:01:21

사마직

司馬直
(? ~ 185년)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하내군 사람.

2. 생애

청렴하다는 명성이 있었고 185년에 남궁에서 화재가 발생해 영제가 돈을 마구 거들이면서 관직에도 가격을 붙여 군사비나 궁전 수선비를 받아냈고, 큰 군의 태수가 바쳐야 할 돈은 2, 3만 전에 달하고 나머지는 각자 차등을 두었으며, 벼슬을 맡게 된 자는 값을 흥정한 뒤에 부임할 수 있었다.

이를 거부하고 핍박받아 강제로 관직에 가게 된 경우도 있었으며, 사마직은 거록태수에 임명되었지만 청렴한 명성으로 인해 영제가 3백만 전으로 깎아주도록 했다.

사마직은 조서를 받고서는 백성의 부모가 되어 이들을 배반해 가죽을 벗기고 살을 도려내어 세상의 요구에 영합하는 것은 내가 참을 수 없는 일이라며 병을 핑계로 그만두게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거록으로 가다가 맹진에 이르러 지금 그르치고 있는 것과 경계로 삼아야 할 옛날과 지금의 재화로 인한 실패를 말하며 상소한 후에 약을 삼키고 자살했다. 이 글이 상소되자 영제는 잠시 궁전 수선비를 받지 않았다.

3. 기타

이중톈은 삼국지 강의에서 지금 보면 사마직은 헛되이 죽었다며 영제 말년에 매관매직이 더욱 심해졌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군산의 구비 문학 중 하나인 세 사람의 재주자랑에서는 어느 나라의 영의정이 죽고 염라국에서 어느 노인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언급되는데, 노인이 풍도, 채경 등을 언급하며 자신에 대해 비판하자 영의정이 못된 간신에 나를 비유한다며 역정을 내자 노인이 사마직 같은 사람이냐고 반문했다.

노인이 사마직에 대해 이야기하자 영의정은 참으로 개돼지만도 못한 백성들을 위해 아까운 제 목숨을 버렸다며 정말 어리석은 자라고 했으며, 어려운 관리 시험에 합격해 태수 자리에 올랐으면서 아깝다며 위로는 황제께 불충을 했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어리석은 자의 표상이 되었다면서 백성의 평안을 떠벌이는 못난 놈들은 대개 그렇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