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시언 Billy Sheeh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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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출생 | 1953년 3월 19일([age(1953-03-19)]세) |
미국 뉴욕 버팔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베이시스트 |
소속 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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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 베이스 기타, 보컬 |
신체 | 188cm |
종교 | 사이언톨로지교 |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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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베이시스트.하드 록, 헤비 메탈 밴드 미스터 빅, 더 와이너리 독스의 멤버이다.
2. 활동 내역
기예에 가까운 그의 베이스 라인은 특히 괴수들만 모인 미스터 빅 안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라 할 수 있다. 고로 지금의 미스터 빅을 있게 한 미스터 빅의 주축. 빌리 시언이 폴 길버트, 에릭 마틴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미스터 빅을 결성하자고 제안했을 정도. 에릭 마틴은 빌리 시언의 전화 한 통화로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스터 빅을 결성하던 시절 팀의 주축으로서 폴 길버트, 에릭 마틴, 팻 토피까지 당시로선 이기적일 정도로 엄청난 조합의 팀을 결성하여 활동했다.미스터빅 자체는 미국 안에서 인기가 빨리 식은 면이 있지만, 현재도 일본을 기점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밴드이다. 미스터빅 이전에는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탈라스(TALAS)라는 밴드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목표로 삼았던 밴 헤일런에 베이시스트로서 오디션을 치렀다가 분루를 삼킨 적이 있었다. 이후에 밴 헤일런의 프런트맨이었던 데이비드 리 로스(David Lee Roth)가 탈퇴해서 결성한 데이비드 리 로스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약하며 2장의 앨범에 자작곡을 싣기도 했다. 로컬 밴드에서부터 전 세계를 누빈 뮤지션과의 밴드 활동으로 경험을 쌓으며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데이비 리 로스 밴드를 탈퇴하고는 슬슬 본인이 구상해오던 "이상적인 밴드"를 욕심내기 시작하여 그 구상을 현실화시킨 밴드가 바로 미스터 빅. 그리고 미스터 빅의 가공할 만큼 거대한 성공 후에 다른 스타일의 음악적인 성취를 위해 재즈, 락퓨전밴드인 '나이아신'이라는 밴드 활동을 했던 경력이 있다.[2]
빌리 시언 본인의 능력만으로도 전 세계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각종 뮤직 페스티벌, NAMM 같은 박람회에서 회사 부스 참여, 야마하가 주최하는 베이스 클리닉 등등의 활동이 바쁜 데다가 그로 인한 수입 만해도 웬만한 밴드 활동의 수입을 쌈싸먹을 정도라고 하는 썰이 있다.[3]
2014년 11월 2일 5번째 내한공연을 했다. 이때도 어김없이 자신의 녹슬지 않은 베이스 솔로를 보여주었다. 무려 6분 동안이나 폴 길버트보다 더 오래 했다.
스티브 바이 밴드의 세션으로도 활동하였으며 2004년 부산락페스티벌에 내한한 적이 있다.
현재는 미스터 빅의 전 멤버였던 리치 코젠과 전 드림시어터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와 함께 The Winery Dogs라는 밴드를 결성. 멤버 이름들만 봐도 알겠지만, 그야말로 화려한 테크닉의 절정을 보여준다.
The Winery Dogs가 리치 코젠의 솔로 활동으로 잠적하면서, 잉베이 말름스틴 밴드에서 활약한 보컬리스트 제프 스캇 소토(Jeff Scott Soto), 건스 앤 로지스의 Chinese Democracy에도 참여한 기타리스트 론 "범블풋" 탈, 그리고 드림 시어터의 전 드러머인 마이크 포트노이[4]와 전 키보디스트 데렉 셰레니언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Sons of Apollo를 결성했다.[5]
3. 음악성
3.1. 실력 및 음악 특징
락 베이시스트로서 최고의 베이시스트에 거론되는 인물 중 한 명이며, 독특한 톤과 상상 이상을 보여주는 초절정 연주가 특징이다.가장 큰 특징이라면 기타보다 줄이 굵고 장력이 센 베이스 기타를 웬만한 속주 기타리스트들에 맞먹는 속도로 연주하는 속주 능력, 그리고 중음역이 강조되고 드라이브가 살짝 걸린 으르렁대는 베이스 음색, 베이스보다는 기타에서 주로 사용하는 태핑, 벤딩 등의 테크닉을 베이스에 너무나 쉽게 적용하는 연주력 등이다. 소위 기타에서 하는 걸 베이스에서 써먹는 베이스 기법의 창시자쯤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현존하는 락 베이시스트의 이름을 언급하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인물이며 수많은 베이시스트들의 존경의 대상이다. [6]
드림 시어터의 존 명이 박식한 이론과 해당 곡에 어울리는 연주법을 구사한다면, 빌리 시언은 밴드에 기타가 한 대만 필요할 정도의 빵빵한 멜로디와 속주를 구사한다. 또 존 명은 빌리 시언과 달리 무대에서 조명 받는 것을 좀 꺼리는 성향도 있고 빌리 시언과 달리 솔로 무대를 보기 힘들다. 지향하는 음악 장르도 다르다. 결정적으로 음대 교수급으로 이론이 박식한 존 명과 달리[7] 이쪽은 음악이론을 하나도 모른다고 한다.[8] 이건 이것대로 대단하다.
세 손가락을 사용하는 쓰리 핑거 주법을 이용한 속주 테크닉으로도 유명하다[9] 쓰리 핑거 피킹을 할 때 자신의 검지, 중지, 약지를 구부려 손가락 끝을 일직선으로 맞추기 때문에 피킹 밸런스가 잘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 영상
그 외에도 상당히 폭넓은 테크닉을 구사하는데, 예를 들자면 태핑, 드릴 피킹[10], 과감한 벤딩과 악기를 부러뜨릴듯한 넥 벤딩까지도 심심찮게 보여준다.
빌리 시언의 베이스 연주법 자체 때문에 빌리 시언이 속해있던 밴드의 기타리스트들은 2명일 필요가 없었다. 리듬 기타가 할 역할을 빌리 시언이 베이스를 하면서 다 커버를 해줬기 때문이다.[11] 오히려 빌리 시언의 톤과 연주력을 생각해보면 2기타 체제는 사운드만 난잡해지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주로 4현 베이스를 다루지만 6현도 가지고 있다. 물론 본인은 6현을 4현만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해서 대외 활동에는 가지고 올라오지 않는다고 한다. 6현 베이스 연주 영상
화려한 베이스 테크닉에 묻히는 감이 있지만 보컬도 상당히 좋다.[12]
3.2. 사용 장비
탈라스 시절에는 펜더 프리시전 베이스[13]를 개조에 개조를 거듭하며 사용했는데, 80년대에는 야마하 베이스를 마찬가지로 개조해가며 사용하다가 그렇게 확립한 독특한 요소들[14]을 담은 시그니처 악기를 야마하와 함께 개발하여 90년대부터 애용해오고 있다. 픽업의 경우 디마지오와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최근엔 Relentless라는 이름의 픽업 시리즈를 디마지오와 같이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그의 팔에 Relentless라는 문신이 있는데 거기서 이름을 따온듯.앰프쪽은 프리앰프로 Pearce BC-1 프리앰프를 주로 사용하고 파워앰프와 캐비넷은 Hartke사의 제품들을 애용중. 참고로 라이브 투어시에는 Pearce 프리앰프가 워낙에 오래된 물건이라 운반과 안정성, 사용상의 편의를 위해 야마하 계열사인 Line6의 협조를 얻어 Pearce의 소리를 모델링해 Helix에 넣어서 갖고 다닌다.
사용하는 스트링은 로토사운드의 시그니쳐 스트링으로 일반적인 게이지와 조금 다르게 나온다. 4번 현은 더 두꺼운 게이지를 사용함으로서(105=>110) 더 묵직한 사운드를 지향하고 1번 현은 일반적인 게이지보다 더 얇게 만들어서(45=>43) 태핑이나 벤딩을 용이하게 할 수 있게 한다. 실제로 이 스트링을 야마하 빌리시언 시그니쳐 베이스에 걸어서 연주해보면 일반 45게이지 스트링에 비해 한음 벤딩이 훨씬 쉽고 정확하게 된다는걸 알 수 있다.
3.3. 주요 영상
▲ 베이스 솔로 | ▲ 폴 길버트와 함께 | ▲ 베이스 기타 항목에도 있는 유명한 속주영상 |
4. 기타
- 1953년생으로 미스터빅 내에서 나이가 가장 많음은 물론 헤비메탈계의 큰할머니 오지 오스본과도 5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미스터 빅이 데뷔하던 해에는 36세였으며,[15] 2013년 환갑을 보냈다. 같은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폴 길버트가 존 페트루치와 자주 비교되는 것처럼 존 명과 이름이 자주 붙어 나오는 편이다. 비교되는 이유는 드림시어터와 미스터 빅, 화려한 테크닉이 주무기인 두 밴드의 베이시스트라는 점 때문인 듯하다.[16]
- 팀의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내에서 활동하다 보니 상당히 애착이 생긴듯하다. 실제로 미스터빅을 가장 쳐주는 곳이 일본이기도 하고, 미스터빅 자체가 동양인들의 사랑을 받기 좋은 스타일이기도 했다.
- 놀랍게도 재즈 펑크 트리오를 한 적이 있었는데, 팀 이름은 나이아신(Niacin)이다. 키보디스트에는 존 노벨로(John Novello, 하몬드올갠 연주의 고수라는 소리에 빌리 시언이 모셔왔다는 '소문'이 있다), 드럼은 생뚱맞게도 재즈 드러머 '데니스 챔버스'였다. 유튜브에 검색해서 보면 알겠지만, 생각보다 평범한 팀이다.는 페이크고 전형적인 재즈 펑크 사운드에 빌리 시언이 베이스와 기타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그런 사운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듯하다. 공화당 지지자이다.
- 검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레슨 비디오에도 등장한 적이 있는 'Spooky'라는 검은 고양이가 유명했으나 2019년 11월 말 천수를 다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18] 그 후 가슴에 흰 반점이 있는 'Rebel'이라는 검은 고양이와 함께 지내다가 그 고양이도 병에 걸려 2023년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빌리 시언과 그의 와이프는 몸에 Rebel이란 문신을 새겨 고양이를 추억했다.
- 한때는 미스터 빅의 다른 멤버들의 부인들이 속칭 '빌리 시언 장가보내기'가 꽤나 진지하게 진행되었었다고 하던데, 역시나 하늘이 점지해 주는 때와 임자는 따로 있는 법. 빌리 시언의 시그니처 모델인 '야마하'의 이탈리아 지점에 회사 일로 왕래하던 중, 이탈리아 미녀 직원에게 화살이 꽂혀 전격 결혼을 하고는 동네방네 부부동반으로 출몰하고 있다는 후문.[19][20]
[1] 현재는 리 로스가 일 중독이라서 같이 일하기 힘들다고 탈퇴했다.[2] 사실 나이아신은 프로젝트 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빌리 시언의 활동 내역이 크게 화려하진 않았다.[3] 어떤 뮤지션이 NAMM을 비롯한 음악산업 박람회에 특정 회사의 부스에서 연주하거나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면 이미 그 아티스트는 산업계의 큰 손이다.[4] 2023년 10월에 드림시어터로 복귀를 해서 현재 기준으로는 드림시어터의 현 드러머지만, 결성 당시에는 전 드러머였다.[5] 여태껏 헤비메탈이 쪽 속주 베이시스트로 활약해왔지만 의외로 프로그레시브 메탈에서 빛을 보고 있다. 극도로 단련된 실력과 음악적 지식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레시브 메탈 특성상 이쪽이 본인의 실력을 더 뽐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012년 토니 매칼파인, 마이크 포트노이, 데릭 셰리니언과 함께 프로젝트 밴드로 활동했었는데, 드림 시어터의 Hell's Kitchen과 Liquid Tension Experiment의 Acid Rain를 연주했다. 이후 마이크 포트노이와의 인연으로 와이너리 독스까지 활동을 확장할 수 있었다.[6] 국내의 경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70년대생 헤비메탈 베이스 키드들의 우상은 아이언 메이든의 스티브 해리스, 80년대생 헤비메탈 베이스 키드들의 우상은 빌리 시언인 경우가 많다. 특이한 점은 스티브 해리스가 빌리 시언보다 3살 어리다는 사실인데, 이는 1975년에 아이언 메이든 결성 당시부터 원년멤버로 활발히 활동한 스티브 해리스의 이력때문이다. 빌리 시언의 소속된 밴드 중 국내에 잘 알려진 미스터 빅의 경우는 1989년이 데뷔이다.[7] 애초에 드림시어터 멤버들이 고졸인 보컬 라브리에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음대 출신이다. 전임 드러머 마이크 맨지니는 버클리 음대 정교수 출신. 키보디스트 조던 루데스는 줄리어드 음대, 탈퇴했다 복귀한 드러머 포트노이 포함 나머지는 버클리 음대 출신이다.[8] 1:07 참조[9] 베이스 기타항목에도 링크되어 있는 영상이 있다.[10] 미스터 빅의 곡 'daddy, brother lover, little boy'의 솔로를 드릴에 피크를 달고 연주한다[11]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곡 중 하나인 Addicted to That Rush는 인트로 자체가 시언의 눈돌아갈 정도로 빠른 베이스 솔로로 시작해 폴 길버트의 기타가 합류, 둘이 유니슨으로 연주하면서 본격적으로 곡에 도입한다. 시언은 내내 더블 기타 수준의 화려한 솔로와 충실한 배팅을 능숙하게 오가는데, 그가 참여한 곡을 보면 정신 없이 솔로를 하면서도 사운드가 비지 않게 하는 베이스 본연의 임무에도 능숙하단 걸 알 수 있다. 참고로 라이브 버전에서는 보통 시언과 길버트의 기타-베이스 배틀이 더 길며, 그 전에 시언의 베이스 솔로가 덧붙혀지는 경우도 있다. 속주로 유명한 길버트를 베이스로 그대로 따라가는 경이적인 속주는 덤.[12] 미스터 빅 문서에 있는 Daddy, Brother, Lover, Little boy 라이브 영상을 잘 들어보면 백 보컬이 계속 샤우팅을 하는 게 들리는데 그게 빌리 시언의 샤우팅이다.[13] The Wife라는 애칭이 있음[14] 각 픽업을 따로 출력하는 듀얼 아웃풋, 힙샷 D 튜너 등[15] 폴 길버트와는 13살이나 차이가 난다.[16] 재밌게도 폴 길버트와 존 페트루치는 자주 협연하는 사이. 반면, 빌리 시언과 존 명은 야마하를 엔도서로 뒀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존 명은 2007년부터 페트루치를 따라 뮤직맨으로 인도스먼트를 옮겼다.) 연주 스타일 면에서는 접점이 거의 없다. 존 명은 철저히 밴드 지향적인 연주를 하고 빌리 시언은 멜로디 메이킹을 할 사람이 기타 한 명밖에 없어서 본인이 멜로디 라인을 어느 정도 감당하기 때문에 밴드 지향적인 성향보다는 독립적인 성향을 지녔다. 참고로 기타 하나, 베이스 하나인 밴드들은 대부분 베이스 사운드가 아닌 밴드들보다 강력한 경우가 많다.[17] 팬들은 주로 존 엔트위슬의 영향을 받은걸로 생각하기도 한다.[18] 3살로 추정되는 길냥이를 보호소에서 데려와 무려 18년간 함께 살았다. 추정 나이 21살까지 살았으니 엄청나게 장수한 셈이다.[19] 부인이 야마하 직원이다 보니 악기에 대한 이해도 깊고 무엇보다 빌리와 막힘없이 대화가 가능한 재색겸비의 미녀인지라 빌리 아재가 아주 홀딱 반했다고 하더라.[20] 아내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따르면 현재는 부부가 거주하는 내쉬빌 지역에서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