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비센테 아라야 카스트로 (Vicente Arraya Castro) |
생년월일 | 1922년 1월 25일 |
사망년월일 | 1992년 11월 21일 (향년 70세) |
국적 | 볼리비아 |
출신지 | 오루로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179cm | 72kg |
소속팀 | 더 스트롱기스트 (1940-1944) CA 아틀란타 (1944) 더 스트롱기스트 (1945-1952) |
국가대표 | 20경기 (1938-1949) |
감독 | 볼리비아 대표팀 (1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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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볼리비아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아라야는 페로비아리오 라파스(Ferroviario La Paz)의 유소년팀을 거쳐 1940년에 더 스트롱기스트에서성인팀 커리어를 시작했다.아라야는 1944년, CA 아틀란타로 이적해 8경기에 출전했는데 이는 볼리비아 선수 최초의 아르헨티나 진출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안데스의 화살(La Flecha de los Andes)이라는 별명도 얻었지만 그는 아틀란타에 오래 머물지 않고 다시 스트롱기스트로 돌아와 은퇴할 때까지 스트롱기스트 소속으로 뛰었다.
아라야는 1952년에 볼리비아 프리메라 디비시온과 라파스 지역 리그 우승을 끝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2.1.2. 국가대표
아라야는 볼리비아 대표팀으로 총 4회(1945, 1946, 1947, 1949)의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서 볼리비아 대표팀의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 4번의 대회에서 볼리비아의 순위는 6-6-7-4로 하위권에 머물렀고 아라야가 출전한 20경기에서 실점은 62점[2]에 달했다.그의 선수 생활에서 마지막 국가대항전은 12년 만에 다시 열린 월드컵이었다. 그러나 그는 우루과이와의 단판 승부에서 선발 명단에 들지 못했고 볼리비아는 우루과이에 0:8로 대패했다.
2.2. 감독
아라야는 1959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대회에 볼리비아 대표팀 감독으로 참가했다. 볼리비아는 7위로 꼴찌에 그쳤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아라야는 부상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용감한 플레이와 극적인 선방을 선보인 골키퍼였다. 기록과는 별개로 아라야는 볼리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급 골키퍼로 평가받는다.4. 수상
4.1. 클럽
- 볼리비아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1952(더 스트롱기스트)
- 라파스 지역 리그 우승 4회: 1943, 1945, 1946, 1952(더 스트롱기스트)
분류
- 1922년 출생
- 1992년 사망
- 1940년 데뷔
- 1952년 은퇴
- 오루로 주 출신 인물
- 볼리비아의 남자 축구 선수
- 골키퍼
- 더 스트롱기스트/은퇴, 이적
- CA 아틀란타/은퇴, 이적
- 볼리비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선수
- 볼리비아의 코파 아메리카 참가 선수
- 1945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칠레 참가 선수
- 1946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아르헨티나 참가 선수
- 1947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에콰도르 참가 선수
- 1949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브라질 참가 선수
- 볼리비아의 축구 감독
-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1959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아르헨티나 참가 감독